-
-
사랑이라니, 선영아
김연수 지음 / 문학동네 / 2015년 10월
평점 :
소설에는 세 남녀가 등장한다. 정확히는 두남자와 한 여자이다. 광수,진우, 선영.
이것만으로도 우리는 그 내용이 예측가능하다. 한 여자를 둘러싼 두남자의 사랑이야기라면 뻔하지 않은가? 책에서든 드라마에서든 비슷한 내용일 것이다.
그런데 뻔할 뻔한 이 사랑이야기는 묘하게 뻔하지가 않다. 완전 공감이 되는 것도, 그렇다고 어떤 느낌도 없는 것 같지 않은..
소설의 시작은 광수와 선영의 결혼식날이다.
선영의 부케인 을 본 광수는 자신의 사랑에 대한 믿음에 조금씩 균열이 일어난다. 그는 결혼식에 온 진우가 '얄미운 사랑' 이라는 노래를 불렀던 것을 기억에서 끄집어내기 시작한다.
선영은 진우의 옛사랑이었다.
광수는 선영이 진우와 사귀기 전부터 13년 동안 그녀만을 짝사랑해오다 마침내 그녀와 결혼하게 된 것이다.
결혼식날 부케의 팔레노프시스 꽃대 하나가 꺾인 것을 시작으로, 결혼 후에도 선영과 진우의 관계에 질투하고 의심을 하게 된다.
한편 진우는 결혼한 선영의 곁을 맴돌고..,
“사랑해”라고 말한다는 건 자신을 먼저 사랑하기 시작했다는 뜻이다.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만 ‘진실로 연애다운 사랑’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뜻이다. (중간 생략) 삼차방정식 그래프를 그리는 일이나 주기율표를 작성하는 일은 곧 까먹겠지만, “사랑해”라고 말한 경험은 영영 잊혀지지 않는다. 그때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 수 있었기 때문이다. (67-68쪽)
"사랑이 어떻게 변하니?”라는 문장이 딱맞는 광수의 사랑. 변함없는 사랑 , 낭만적 사랑 즉 나를 먼저 알고 나를 먼저 내보이고 상대를 속속들이 이해하는 사랑을 믿는다.
반면, ‘아니, 사랑이라니’ 라는 대사가 딱 맞는 진우.
그에게 낭만적 사랑이란 없다. 그에게 과거 사랑했던 여자란 단지 'Y염색체가 결여된 인간'일 뿐이다.
그런 그 앞에 오랜 연인 선영과 친구 광수의 결혼으로 그는 '사랑' 이라는 말을 떠올리는 생경한 자신의 모습을 보이게 된다.
이렇게 가치관이 다른 두 인물의 사랑. 그러나 소설은 어느 한쪽의 이야기에 힘을 실어주지는 않는다.
이 소설은 소설적 허구에 사랑에 관한 에세이가 결합된 것 같다. 작가는 각각의 인물들의 상황에 직접 개입하여 해설하며 세 인물의 사랑을 보여준다.
"왜 우리는 사랑을 '맺거나' 사랑을 '이루지' 않고 사랑에 '빠지는' 것일까?
그건 사랑이란 두 사람이 채워넣을 수 있는 가장 깊은 관계이기 때문이다.
자신이 가진 것을 모두
집어넣어도 그 관계는 채워지지 않는다
정열, 갈망,초조, 망설임, 투정, 침착,
냉정, 이기심, 헌신, 질투, 광기, 웃음,
상실, 환희,눈물, 어둠, 빛, 몸, 마음,
영혼 등 그 어떤 것이든
이 깊은 관계는
삼켜버린다." - 45쪽
또, 현학적인 부분들이 에세이처럼 드러나는 부분이 많은데 예컨대 주인공 광수의 생각에 레비스트로스, 울리히 벡, 벡-게른스하임 부부의 논리 등이 등장한다.
그러나 늘 그렇듯 작가는 김연수스럽게(?) 그 어려운 듯한 이야기도 '소설적' 으로 한다. 그래서 해학적인 면도 지니고 있다.
소설에는 사전을 떠올릴 수 있을 정도로 예를 들면 ‘쫀쫀하다' '얼망얼망하다' 고자누룩하다’ ‘아령칙하다’ ‘찌물쿠다’ 등 신선한 어휘들이 등장한다.
그리고 조금은 어울리지 않은 듯한 낯선 비유들도 곳곳에서 많이 등장하는데
"미혼남에서 유부남으로 바뀌는 과정은 달에서 지구로 귀환하는 일과 비슷하다."
"미혼녀에서 유부녀로 바뀌는 건 뭐랄까 호두를 깨무는 일과 비슷하다."
등의 문장이 그 예다.
소설 속 곳곳에 등장하는 이런 비유들은 뻔한 사랑이야기를 신선하게 느끼게 한다.
다만 이 비유들은 문어체인데다 길기도 해서 읽는 독자는 바로바로 이해하기 힘든 것들도 있어 잠시 생각을 하게 하는 면도 있다.
진지하면서도 유쾌고, 익숙한 듯 하면서 생소한 김연수식 지적인 사랑론을 한 편의 소설로 잘 읽어보았다.
'사랑 따위는 하지 않고 살면 얼마나 좋을까?
그런 마음이 없다면
소주를 살 일도,
노래를 부를 일도,
춤을 출 일도 없을 텐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