끌림 - Travel Notes, 개정판
이병률 지음 / 달 / 2010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그거 아는가? 이 책은 페이지가 없다. 책장을 아무리 넘겨도 페이지는 적혀 있지 않다. 그렇다고 목차가 있지도 않다. 그냥 어디까지 읽어야겠다는 생각조차도 없다. 그냥 글을 읽는 대로 마음을 적실뿐이다. 나에게 너무 먼 얘기도 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 나의 심장에 콕콕 박히는 화살도 있다. 진지하게, 때로는 허무하게 인생을 사는 한 사람에게 따뜻한 도움이 될 만한 글귀는 아니지만, 그것이야말로 나에게 진정으로 하는 조언일 수도 있다.

 

 나는 여행 경험이 많지 않다. 지독하게 혼자 하는 여행을 두려워한다. 그냥 아무 연고도 없는 그런 곳에 홀로 발자국을 남겨놓는 것조차 너무 외로워서 생각만 하곤 한다. 너무 힘들 때는 생각도 해보지만 진정 행동으로 옮긴 적은 없다. 남들은 쉽게 하는 혼자 하는 여행이 난 그렇게 힘든 것인지. 그렇다고 둘이서 하는 여행도 낯설긴 마찬가지다. 내 무게만큼이 당신의 무게도 여행에서 크게 차지 할 텐데, 나만 집어넣는 것도 그렇다고 당신의 무게를 짊어지는 것도 사실 두려울 뿐이다.

 

 언제고 두려워 할 순 없다. 이미 혼자 하는 여행은 했다. 많이 두렵고 외로웠지만 기억에도 남지 않았지만 돌아올 때는 꽉 채우고 왔다. 이제는 둘이 하는 여행을 할 차례인데, 이건 진짜 하기 힘들 수도 있다.

 

“울 일도 많을 것이다. 어쩌면 넘어지는 일도, 억울한 일도 많을 것이다. 청춘이라는 이유로 금세 딛고 일어설 수 있기 때문이다. 차라리 그것이 힘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니 문 앞에 서서 이 문 안에 무엇이 있을지, 무슨 일이 생길 것인지를 고민하면서 시간을 써버리면 안 된다. 그냥 설렘의 기운으로 힘껏 문을 열면 된다. 그때 쏟아지는 봄빛과 봄기운과 봄 햇살을 양팔 벌려 힘껏 껴안을 수 있다면 그것이 청춘이다.

그래서 청춘을 봄이라고 한다. “ -이야기 일곱, 당신에게-

 

 혼자 갔지만, 가서 여러 사람을 만날 수 있었고, 낯선 이에게 말도 붙이는 것조차 어려워함에도 잠깐의 인연에 따뜻했었다. 좋은 사람도 있었다.

이제는 둘이 하는 여행을 할 차례인데, 이건 진짜 하기 힘들 수도 있다. 서로에게 집중하는 것이 어렵지만 우리가 아닌 다른 사람에게 집중하는 것은 더 어려운 법이니까.

 

‘내일과 다음 생 중에 어느 것이 먼저 찾아올지 우리는 결코 알 수가 없다!’ -티베트 속담-

 

 누군가를 만나서 정을 붙이면, 정을 떼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특히 여행에서 만난 인연이라면 더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차라리 인사를 할 기회가 없는 것이 좋을 수 있을 만큼 그 순간을 견디는 것이 힘겹다, 그녀를 그냥 보내는 것도 그렇다. 그 자리에 그녀가 없을 것을 알기에, 그러나 나중에 그녀의 흔적이나마 찾고 싶어서 거기로 돌아가는 것을 간절히 원하는 나를 보고 있으면.

 

“한번 사람을 의심하기 시작하면 여행은 끝이다. 그만큼 자유롭지도 못할뿐더러 기회도 적기 마련. 세상에 하나뿐이라고 생각한 친구를 믿은 적 있으나 그는 나를 믿어주지 않았고, 한 사람을 믿은 적 있으나 그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믿음이 아닌 듯하였다. 그 울림은 더 장황해져서 다른 사람에 믿음을 옮겨가면 그뿐이었다. 내가 사람에게 함부로 대했던 시절이 분명 있었기에 당함으로써 배우는 것이라 자위하면 되는 것.” -이야기 마흔일곱 페루에서-

이병률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