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톈 미학강의
이중텐 지음, 곽수경 옮김 / 김영사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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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12/2

 

 이 책은 정말 필연적이나 너무 우연적으로 내 곁에 왔다. 평소에 서점에서 가판대말고 서가에 꽂혀있는 책은 건드리지 않는데, 우연히 빼서 보게 된 책이 하나의 보물을 길에서 주운 심정으로 발견되었으니까. 어렵던 미학을 그나마 정제하여 마치 미학을 모르는 사람에게 하나하나 처음부터 가르쳐 주듯이 교양적인 눈높이로 책은 서술된다.


 미가 존재하는지는 우리 모두 안다. 하지만, 어떤 것이 미라고 부를 수 있는지 확실하게 정의는 모른다. 이 책을 올해만 3번 읽었다, 문제는 읽기 쉽게 설명을 했으나, 리뷰를 쓰기위해 어떻게 시작을 해야할지는 상당히 어려워서 3번을 읽었는데, 다가오는 내용이 각각 다르다. 그러면 이 후에 4번째 읽을 때의 와닿는 것도 다르지 않을까?


 이 책에서는 미학이란 무엇인가? 의 문제 제기로 시작하지 않고, 우리가 왜 미학을 배워야 하는지에 대해서 설명을 시작하고 있다. 미학을 배우면 우리 삶에 도움이 되는지에 대한 답은 예상했다시피 '아니오'이다. 미학 그 자체로는 내가 사는데 하등 쓸모가 없다. 미학을 배워서 돈을 벌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음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인간 자체가 태어날 때 부터 심미를 즐길 수 있는 존재이고 '미'의 유무를 알고 있으며, 나아가서는 '미'를 사랑하는 존재기 때문에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름다운 여자와, 멋진 건축물, 웅장한 산맥과 평원을 보면 뭔가 느끼는 그런건 없는가? 아름다운 음악에 내가 춤을 추고 있다면, 보는 사람도 미를 느끼고 실질적인 행위자 스스로도 황홀경에 빠진다.) 이런 미를 파악할 수 있는 것은 단순한 지식으로써가 아닌 인간이란 존재가 사랑할 수 밖에 없는 지혜를 얻을 수 있다는 것에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이 지혜를 얻는 것은 왜 좋은가 하면, 내가 사는 삶에 만족을 줄 수 있으며, 편안함을 주기 때문이다. 돈을 벌면 왜 좋은가? 편안한 삶과 여유를 누리기 위해서. 따지고 보면 같은 인생의 목적으로 귀결이다. 


 미학을 우리는 여러가지로 얘기 할 수 있다. '미'란 무엇인가?, 나아가서는 미를 느끼는 현상인 '심미란 무엇인가' 여기서 더 나아가서 '미학'이 속해있는 '예술이란 무엇인가' 의 질문에 나름대로의 답을 하고 있고 있고, 이것은 서로 각각의 정의가 있는 것이 아니고, 미학 하나로 귀결이 된다는 것으로 마무리 되고 있다.

 이중텐 교수는 미학을 미학사로 미학사는 미학으로, 역사의 순서대로 많은 미학자들이 미에 대한 정의를 내놓은 것을 설명하는 방식으로 미학을 파악하게 하게끔 도와준다.


 "각각의 철학적 관점은 모두 합리적이었고 어떤 역사 시기나 역사단계에서는  필연적으로 출현해야 했던 것이었습니다. 그 관점이 출현했을 때, 그 관점은 이미 이전 역사단계를 포함하는 동시에 다음 역사단계를 위해 준비를 합니다. 철학은 바로 이렇게 하나하나의 역사 단계와 고리로 이루어 지며 이 역사 단계와 고리의 총화입니다." p44


 미에 대해 각기 다른 생각과 의견이 있는 철학자들이 역사가 흘러감에 따라 존재했지만, 미학은 그 어느 한명의 정의가 곧 모법답안이라고 얘기하지 않는 하지만, 그 한명한명의 철학자의 전체의 합은 곧 미학을 얘기한다. 이는 철학사를 철학이라고 얘기하는 것과 동일하다. 미학은 곧 예술에 속하며, 예술은 철학의 한 부분이기 때문이다.


 "역사적으로 진정한 미학가는 위대한 문제 제기자였습니다. 그들은 부단히 문제를 제기하고 부단히 그 문제들을 해결했습니다. 왜냐하면 '미란 무엇인가'와 같은 문제는 사실 '최종 답안'이 없기 때문입니다. p41


그러면서 이중텐 교수는 강의를 하듯이 미학을 서술해나가기 시작한다. 피타고라스의 만물의 미를 수로 규정짓는 객관적 측면에서 소크라테스의 약간은 애매모호한 미의 합목적성을 거쳐서, 플라톤은 객관 미학을 내세웠고, 절대적인 미를 설명하였으나, 이는 곧 주관 미학으로써 귀결되며, 미란 무엇인가에서, 심미란 무엇인가의 문제로 들어간다.


 심미에 관련된 선구자는 단연 칸트라고 말한다. 칸트 이전에 객관미학에서 주관미학으로 넘어가는 과정은 영국의 경험론파와, 대륙의 합리론파의 서로 다른 견해가 자리잡았었다. 하지만, 칸트는 미의 정의가 주가 아닌, '취미' 그 자체에 의미를 두었다.


 "칸트는 취미는 미를 판단하는 일종의 능력으로, 어떤 대상이 아름다운가 아닌가를 판단할 때, 우리는 그것이 우리에게 지식을 줄 수 있는가 아닌가를 보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유쾌함을 줄 수 있는가 아닌가를 본다고 말했습니다.." p103 


 그리고 미감 판단에 있어서, '하나의 판단에 대한 모든 사람들의 동의 필요성'을 강조하였고, '공통감이란 '개념'으로써 설명하였다. 다소 넓은 미학이라는 덩어리를 바라본 이 책의 흐름은 객관적인 미가 주관 미학으로 나가는 필연적인 부분, 따라서 객관론에서 주관론, 모방론에서 표현론, 미의 철학에서 심미심리학으로 이동하였고, 최후의 객관론자의 헤겔이 미의 철학과 .미란 무엇인가라는 문제를 답하는 것에 포기하고 예술철학과 '예술이란 무엇인가' 로 주제를 옮겼다. 이 중심에는 단연 칸트의 미학 이론의 정수이다.


 또다른 위대한 미학의 대가인 헤겔이 등장하기 전까지, 크로체 미학을 미롯한 심미철학, 심미심리학 등 미학을 바라보는 여러가지 이론이 나왔다. 하지만, 헤겔은 미학의 범주를 넘어 아닌 예술에 대한 이론 자체에 한 획을 긋는다. 그는 예술 자체를 필연적인 것으로 규정짓고, 미와 예술은 절대 이념의 감성적 현현이라고 결론을 도출하게 된다.


이 부분은 아직 내 모자란 이해로는 약간 매끄럽게 설명하기 부족한 부분이다. 하지만 저자의 그나마 매끄러운 설명에 의하면, 헤겔은 이를 규정하기 위해 예술을 정의하는 단계로 넘어가게 되고 예술을 상징형, 고전형을 거쳐 낭만형 예술로 나아가게 하고, 이는 "처음에는 쫒아가고, 그다음에는 실현하고 마지막에는 뛰어넘는다."로 해석한다.


 그러나, 저자가 하고자 하는 말은, 이러한 헤겔미학마저 반박할 만한 약점이 자리잡고 있고, 이것을 극복하는 것이 앞으로의 미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이라고 주장한다. 헤겔철학은 연구에 깊이가 있고 논리가 빈틈이 없지만, 뿌리가 없이 허공에서 펄럭였으며 튼튼한 기초가 부족하다고 말한다. 너무나 사변적이기에 우리의 역할은 이것을 인간사회에 밀접하고 실제적인 미학으로 자리잡게 하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그런 막막한 명제들에 잡혀 있어서는 안되고, 아주 실제적인 작업을 해야 하며, 특히 인간의 심미 경험과 예술 실천에 눈을 돌려야 한다고 갈 길을 제시해준다.


 그러면서 책의 주제는 일반예술학으로 넘어간다. 예술을 말하는 학설은 모방설, 표현설 그리고 유희설에 대한 예술을 설명하는 관점에는 딱 정답을 가지고 말할 수는 없지만 나름대로의 논리는 충분히 있다. 이 부분은 앞의 미학에 관련된 부분은 빼 놓더래도, 따로 읽어볼만 한 가치가 이다.
 이렇게 깊게 들어가면 한도 끝도 없는, 미/심미/예술에 대해 묻고 나름대로의 답해보는 이 책은 마무리가 된다. 그럼으로써 다시 예술의 정의와 결론에 대해서 짚는다.


 "예술은 정감을 대상화 하는 형식이고 미감은 대상화된 정감이며, 예술은 정감의 전달이고, 심미는 대상을 빌려 정감을 전달하는 활동과 과정이라고 하는 미와 예술 사이의 깊은 연계를 보았으리라고 생각합니다. 미와 예술이 이렇게 깊은 내적 연계를 가지고 있는 이상, 예술은 인간의 확증이고 미는 인간이 인감임을 확증해 줄 수 있는 것이라는 결론 또한 이치에 맞습니다." p291


 재미있는 것은 미와 추의 기준, 또는 심미와 비심미에 대한 설명도 마무리 부분에 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비심미와 추는 서로 다른 개념이라는 것이다. 미추를 구분하는 것은 미학의 판단이지만, 비심미 자체는 아예 미추를 구분하고자 하는 의도조차 없기에 제외가 되는 것으도 이해했다. 다만, 이러한 기준은 상황과 시대와 입장에 따라 변할 수 있는 것이다.


 "실제로 무엇이 미고 무엇이 추이며, 무엇이 심미고 무엇이 비심미인가하는 문제들에 결론은 변화하고 있습니다. 비심미는 심미로 변하고 심미는 다시 비심미로 변하며, 미는 추로 변화하고 추는 다시 다시로 바뀝니다." p293


추한 미술품이나, 추한 예술이라 말이 없듯이, 예술이라는 것은 미추 구분에 있어서 미에 해당되는 부분이고, 예술에 있어서 미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은 지금 이 글을 쓰고 있는 나조차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처음으로 돌아가게 되는 말일 지는 모르겠지만, 미학이 예술에 속하는 부분일 수도 있어도, 따라서는 미와 예술은 동의어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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