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7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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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은 수의사인 주인공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에세이와 소설 그 중간쯤에 있다. 영국사람인 저자는 수의대를 졸업한 후 대러비라는 시골마을에서 평생 수의사로 살았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50세부터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시리즈를 내기 시작했는데 저자 타계 후에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며 엮은 게 이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이라고 한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각종 애완동물을 키워봤기 때문에 저자인 수의사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지금도 18살이 된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노령묘라 동물병원에 2년째 다니고 있어서 수의사와 아픈 동물의 생활에 비교적 빠삭하다. 병원 의자에 앉아서 10분만 있어도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오래된 털실 인형같은 강아지들을 안고 들이닥치는데 한 눈에 봐도 많이 늙었고 백내장 등으로 눈동자가 하얗거나 절뚝이며 걷는 등 가여운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재밌는 건 아무리 볼품없어도 주인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고, 개나 고양이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들은 부모나 다름없는 주인의 둘도 없는 귀동아이라는 것을, 병원은 가기 싫지만 왠만큼 익숙하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애들이라 아무리 봐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각자의 주인과 그 반려동물은 다 하나의 스토리가 있다.

헤리엇이 활동하던 시절은 1930~40년대이다. 변변한 약은커녕 페니실린도 아직 안 나온 때라고 하니 그 열악함은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시골에서 일하는 수의사이다. 주로 암양이나 말, 소 등을 돌본다. 지금의 수의사들이 개와 고양이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것과 전혀 다른 환경이다. 동물이 덩치가 크고 시골이다보니 대개는 왕진이다. 밤이고 낮이고 없이 전화가 울리면 왕진을 가서 어떻게든 고쳐놔야한다. 예전에 내 과외 선생님이 수의학과라서 큰 동물을 검진했던 경험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 말해준 방법이 헤리엇이 하는 방식과 똑같아서 흥미롭게 읽었다. 새끼를 낳아야하는 어미소나, 말, 양 등은 주로 출산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는데 헤리엇처럼 내 옛날 선생님도 팔을 동물의 몸안으로 쑥 밀어넣어서 촉진으로 알아봤다고 한다. 들을 때는 끔찍했는데 책에서 헤리엇이 하는 방식을 보니 역시 그 방법이 사실이었구나 싶었다. 또한 수의사의 섬세한 감각으로 자리를 잘못 잡은 새끼들을 어미 자궁 안에서 엉키지 않게 머리와 다리 가지런하게 해서 빼내고, 오랜 시간 추운데서 웃통을 벗고 진찰과 치료를 하는 바람에 팔에 감각조차 사라진다는 글을 읽을 때면 정말 극한직업이구나 싶었다.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에는 그가 특별히 기억하는 10마리의 동물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책은 헤리엇 시리즈 7권 중 별책의 제일 마지막권이라고 한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생명과 관계되어있고 경험에서 우러난 글이라 극적이고 생생하다. 마치 시트콤이나 일일 드라마 보는 느낌도 드는데 영국 BBC에서 TV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과연 그랬겠구나 싶다. 이 책에는 이야기만 실린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삽화가 매 챕터마다 함께 한다. 레슬리 홈즈라는 삽화가의 그림인데 사실 세련되고 아름답다기보다 푸근하고 클래식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소설 자체가 1930년대 배경이니 당연히 요즘의 그림풍보다 이야기에는 훨씬 잘 어울린다.

동물을 사랑한 수의사 헤리엇과 그가 겪은 다양한 농부들, 주민들의 생활상은 지금과 너무 달라서 영국 시골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도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농부들 중에는 너무 거칠고 무신경해서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 싶은 부류도 있지만 오래 키운 늙은 암소가 필요없어져서 팔았다가도 그 암소가 다시 집으로 도망쳐 돌아오자 도로 받아주고 키우기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농부들은 생계를 책임지는 일로 동물을 키우지만 역시 생명인지라 키우다보면 정이 들고 마는 것이다. 도로시라는 염소가 주인 할아버지의 고무줄 팬티를 삼킨 이야기도 웃기고 경마 도박 중독인 할아버지가 뻑하면 멀쩡한 개를 아프다고 주인공을 호출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일일히 이름을 붙여서 양이나 소를 키우고, 그 동물들이 아프면 크리스마스도 없이 득달같이 달려가는 수의사가 있는 마을. 책 속에 펼쳐진 요크셔 대러비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는 것도 덤으로 얻은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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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짝꿍 북극곰 무지개 그림책 50
브라이언 콜리어 지음, 이순영 옮김, 모 윌렘스 기획 / 북극곰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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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상의 짝꿍은 모 윌렘스의 '코끼리와 꿀꿀이는 책을 좋아해' 시리즈 중 4권째에 해당한다. 처음부터 읽었으면 바로 이해가 갔겠지만 나는 이 시리즈의 가장 최신작을 제일 먼저 보게 되었으니 모 윌렘스가 누구인지 잠깐 찾아보았다. 아, 모 윌렘스도 무척 유명한 동화책 작가로 칼데콧 아너상과 에미상을 여러번 수상했다고 한다. 이 사람이 기획자가 되어서 다른 동화책 작가들과 책을 낸 것이 이 '코끼리와 꿀꿀이는 책을 좋아해' 시리즈였다. 북인북 형태로 책장을 열면 화자로 코끼리와 꿀꿀이 캐릭터가 등장한다. 둘이서 '환상의 짝꿍' 책을 펼치고 독자와 함께 책을 읽는 식이다. 어린이책인데 액자식 구성이라니 신선하다! 물론 코끼리와 꿀꿀이는 모 윌렘스 작가의 대표 캐릭터이다.

 

 

'환상의 짝꿍'은 신발을 고르는 내용이다. 신발을 의인화해서 서로 자기를 신어달라고 난리다. 주인공 어린이로 흑인이 등장하는 것도 새롭다. 배경이나 컬러링 색감도 다소 어두운 편인데 이런 색감의 동화책은 흔치 않다. 아이가 4살만 되어도 자의식이 생겨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 싫어하는 것이 뚜렷해진다. 우리 조카도 만4살인데 유치원 갈 때마다 자기가 신고 싶은 신발을 고른다고 한다. 주인공 여자 어린이도 심혈을 기울여 오늘의 신발을 고르고 있다. 바로 아빠와 데이트하는 날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왠걸 짝짝이 신발을 골라서 신고 나가네? 갑자기 이 여자아이의 남겨진 신발들은 난리가 난다. 주인이 짝짝인 줄도 모르고 신고 가는 줄 알고 말리려고 총출동이다.

주인공 여자아이는 오른쪽 하나, 왼쪽 하나 골랐으니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신발 입장에서는 짝꿍이 아닌 걸 집었으니 용납할 수 없나보다. 빨리 막아야 한다고 난리법썩이다. 이 동화책의 클라이막스다. 신발의 생각은 일반적인 상식을 대변한다. 짝이 있는 물건은 맞춰서 입거나 신어야 한다는 것. 그러나 어린이의 생각은 다르다. 아이는 알면서도 일부러 짝짝이로 신고 나간 것 뿐이다. 그 이유는? 이건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비밀로 남겨둔다. 남들을 따라가는 것, 상식적인 것은 편하지만 자라나는 아이의 창의력을 꺾을 수도 있다. 이 동화책은 꼭 남을 따라할 필요가 없이 자기의 논리대로 사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얘기하는 것 같다. 물론 딸과 아빠의 사랑스러운 하루를 엿볼 수 있는 것도 재미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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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 - 아무리 열심히 살아도 불안한 이들을 위한 나답게 사는 법
박진희 지음 / 앤의서재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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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급을 받는 안정적인 직장을 놓칠 수 없지만 지금 하는 일은 계속 하기가 괴롭고 서울살이가 지겹지만 사는 곳을 쉽게 옮길 수도 없다. 이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 나 하나만이 아니기에 요즘 하고 싶은 일과 해야 하는 일에 관한 에세이가 많이 나오는 것 같다. 다만 이 책은 그 소재가 '제주'로 한정되어 있다. 총 9명의 인터뷰가 실린 '누구의 삶도 틀리지 않았다'는 서울 혹은 타지역에 살다가 여러 이유로 제주도로 거처를 옮긴 사람들의 사연에 집중한다. 저자 역시 10년 넘게 서울에서 에디터를 하고 잡지사 기자를 하다가 스페인 카미노 순례길에서 만난 남자와 결혼, 제주도에 정착한 케이스이다.

 

 

 

제주 한달살기 열풍이 불 때도 그랬지만 한풀 꺾인 지금도 제주도는 내 로망의 장소이다. 제주도에 한 번도 안 가본 사람은 있어도 딱 한 번만 가고 만족한 사람은 없을 것 같다. 생각보다 넓은 섬 제주는 한 번 여행으로 샅샅이 볼 수가 없다. 제주에서 정착을 못할 지라도 좀 길게 여행하고 싶은 사람은 너무나 많을 것이다. 이 책의 인터뷰이들은 여행에서 한 발짝 더 나아가서 아예 제주도에서 직장도 구하고, 프리랜서라면 일거리를 구해서 정착한 사람들이다. 당연히 서울에서 일하던 직업은 전직이 되고 대부분은 새로운 일, 새로운 경력을 시작했다. 그 점이 흥미롭다. 지금하는 일 그만두면 앞이 다 막막하고 앞으로 뭐해서 먹고 사나 걱정이 끝이 없는데 이 9명의 용기있는 사람들은 일단 저질렀다. 퇴로를 차단했다고 봐야한다. 남의 일이니까 그렇지 다 버리고 가는 그 결단에 식은땀이 난다.

저자는 이들을 '나다움을 지키기 위해 편하고 안락한 것들을 포기한 사람들, 조금 다른 길을 가고 있어도 괜찮다고 스스로를 도닥이는 사람들, 하지만 절대 게으르지 않고 정직한 노동을 하는 사람들'로 소개하고 있다. 이분들이 뭐해서 먹고 사나 좀 더 직업을 살펴보면 놀랄만큼 다양하다. 제주도에서 3년째 일용직 날일을 하며 지낸다는 태호씨, 무명서점이라고 아예 자기가 서점을 차려서 주인이 된 정원경씨, 운동선수와 트레이너로 살다가 제주의 한 호텔 룸메이드로 전직한 은경씨, 여전히 직장에 다니는 로사씨 등 삶의 이력이 다른 만큼 직업도 다 다르다. 막연히 제주도 가면 카페나 빵집, 게스트하우스를 하면서 살아야 하나 생각했는데 의외로 다양한 일이 있었고 나름의 벌이가 되었다. 하지만 인터뷰이들이 다들 하는 말이 서울에서 월급받는 만큼은 절대 안된다는 것, 제주도에서도 직장을 다닐 수 있지만 서울에서 다닐 때처럼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는 게 싫다면 프리랜서로 혹은 스스로 사장으로 살 수도 있다는 것이었다. 다만 공통점이 있다면 다들 예전에 하던 일에는 학을 떼고 있었고 더 이상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면서 인생을 소모하기는 싫어했다. 그들은 경제적인 어려움을 견뎌가며 새로운 일에 적응을 하고, 아마도 서울에서처럼 편하지는 않을 집에 연세로 살면서 제주에 적응하고, 다소 무뚝뚝한 제주 사람들에게도 적응하면서 제주도의 아름다운 자연과 퇴근후와 주말에는 완벽한 여가를 즐기는 생활로 변화된 삶을 살고 있었다.

 

 

어떤 삶을 선택해도 후회가 없을 수는 없다. 프리랜서가 되면 직장 다닐 때 일정하게 들어오는 월급이 그리울 것이고, 서울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제주로 직장을 옮기면 대개 반쯤으로 줄어든 벌이에 우울할 수 있다. 그래도 저녁과 주말이 있는 삶을 살고 평소 배우고 싶었던 취미를 마음껏 즐길 수 있다면 그만한 가치가 있지 않을까? 책장을 넘기며 나는 주인공들이 참 부러웠고 '아, 이렇게도 살아지는구나', '인연을 이렇게 만날 수도 있구나' 신기하기까지 했다. 책의 마지막 챕터에는 저자가 소개한 제주살이 정착 tip도 나와있다. 집 구하는 법, 일자리 구하는 법, 주민과 친해지는 법, 음악이나 미술같은 예술로 먹고 사는 법 등이 깨알같이 나와있다. 모든 정보가 실제로 그렇게 해 본 사람들에게서 나온 것이라 바로 써먹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저자도 그렇게 얘기했지만 나도 제주도에서 사는 것만이 현재의 삶을 바꿀 방법이라 생각되지는 않는다. 장소는 어쩌면 이들에게 일종의 계기에 불과할 것이다. 주인공들도 지금 제주도에서 이런 저런 일을 하면서 살지만 그게 60, 70대까지 이어지리라고 장담하는 사람도 없다. 다만 이처럼 다양한 사람들과 이처럼 다양한 선택지를 보면서 열심히만 산다면 삶에 정해진 답은 없다는 것, 먹고사는 문제 역시 하려고만 한다면 어떻게든 헤쳐나갈 수 있다는 것에 용기를 얻었다. 결국 자신의 행복은 스스로 챙기는 수밖에 없는 것인데 하기 싫은 일을 평생 하며 건강과 정신을 갉아먹는 것에는 분명 한계가 있으니 다들 빨리 방법을 찾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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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고 정확한 노자 도덕경
김준곤 지음 / 아우룸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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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렵게만 생각해서 정작 읽어본 적이 없는 책이 공자의 논어, 노자의 도덕경이었는데 여름이 되고 보니 한문으로 시처럼 써진 우아한 글이 읽고 싶어졌다. 심지어 처음에는 도덕경이라는 뜻을 몰라서 도덕적인 이야기를 묶어놨나보다 생각했는데 중간쯤 읽고나서야 1~81장까지 이뤄진 도덕경은 1~37장까지는 도경, 38~81장까지는 덕경이라고 부르고 그걸 합쳐서 도덕경이 된다는 것이었다. 경(經)이란 용어도 빼어난 현인들이 남긴 어록이나 저서를 높이는 말이라니 정말 도덕경에 대해 번짓수를 잘못 알고 있어도 한참 잘못 알고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또한 노자의 도덕경이라고 부르고는 있으나 정확히 말하자면 전국시대에 걸쳐 많은 노자 그룹의 사람들이 내용을 보완해서 만든게 오늘날의 도덕경이 되었다고 하니 노자 한 사람만의 저술이라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 같다. 노자란 인물 자체에 대해서도 언제 태어나서 활동했는가에 설이 분분해서 막상 책을 읽으니 '쉽고 정확한 노자 도덕경'이라고 쉽게 나왔다고 강조하긴 하나 역시 쉽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웃어버렸다. 다만 한문에 익숙하지 않은 다수의 독자들을 위해 한글 번역을 먼저 싣고 한문을 나중에 실었다는 점, 한문 역시 해석이 가능하도록 주요 한자에 음과 훈을 달아서 원하는 독자들은 스스로 그 뜻을 읽고 헤아리게 할 수 있었다는 점은 이 책을 장점이라 할 만하다.

나는 한자를 많이 알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아예 모르는 것도 아니어서 내가 아는 문구는 읽으려고 노력하며 봤는데 중간중간 홍콩영화가 연상되는 사자성어가 나와서 재밌었다. 예를 들어 7장의 천장지구는 하늘과 땅은 영원하다는 의미이다. 노자는 하늘과 땅이 영원하다는 이유로 그것들이 자신의 이득이나 삶을 도모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보았다. 그러나 다들 들어봤듯이 홍콩영화 제목으로 쓰인 '천장지구'는 영원히 변치않는 남녀간의 사랑을 의미한다. 마찬가지로 9장 지이영지에서도 '금옥만당'이라고 홍콩영화 제목과 똑같은 구절이 나오는데 금과 옥이 가득하다는 뜻이다. 뒤이어 나오는 막지능수가 포인트로 금과 옥이 집안에 가득해도 이를 지킬 수 없다는 뜻이다. 설명이 이치에 맞고 재미있다. 바야흐로 노자가 살던 시대는 중국의 전국시대, 헐벗고 굶주린 백성이 널렸는데 집안에 재물을 가득채워 지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도 아니고 불가능한다는 뜻이다. 이런 말은 다 도의 특성을 표현한 것으로 모든 부자연스러운 상태는 도가 아니므로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원래의 자연스러운 상태, 즉 도로 돌아간다고 했다. 그저 계속 한자로 된 시구를 읽으면 지루하지만 간간히 아는 사자성어가 나와서 연상작용을 일으키니 본 뜻이 어떻게 쓰인 것인지 아는 재미도 있고 이어서 나온 설명이 납득이 간다.

노자의 도덕경은 무려 2000년도 전에 쓰인 글이다. 저자의 말처럼 도덕경이 위대한 글이라고는 하나 무조건 숭상하기에는 현실에 다 맞지 않기에 적절한 해석이 필요하다. 저자는 노자의 도덕경을 제왕이 될 사람이 읽어야 할 책이라는 뜻의 제왕학이 아니라 오히려 백성들을 위해서 제왕의 무분별한 권력이나 힘을 억제하고, 백성들의 권익을 보장하기 위해 쓰여진 제왕학이라고 주장한다. 노자의 도는 무위를 강조하니 당연한 결말이다. 그는 자연스러움, 억지나 지나침이 없이 순수하게 천지 자연의 이치-도에 맞게 살기를 강조하는 사람이다. 그런 점에서 저자는 노자의 도를 들어 지금 전범국인 일본의 반성할 줄 모르는 행태나 미국의 미국 우선주의, 중국의 영토 분쟁에 대해 그 이기주의를 비판하고 있다. 도덕경이 2천년도 전에 쓰였다고는 하나 크게 볼 때는 상황은 그닥 나아지지 않았다. 노자가 살던 전국시대의 어지러움과 지금 한국을 둘러싼 주변상황의 어지러움이 어떻게 크게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 노자는 위정자와 성인을 동일시했는데 그 이유는 그 사람 자체가 어떠하건 간에 권력을 잡은 위정자가 된 이상 그 사람 자체가 성인이 되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맞는 말이다. 국가의 운명을 좌우하는 왕이나 대통령, 고위 관리가 되었다면 그 권력자의 결정이 백성, 국민 등 불리는 이름은 다를지라도 나라를 이루는 개개인 모두에게 엄청난 영향을 미친다. 도를 중요시하고 전쟁을 필요악으로 본 노자의 지혜가 절실한 요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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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동 블루스 동네앨범 1
이문맵스 지음 / 리프레시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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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집 같은 에세이를 만났다. 보통 에세이라고 하면 어떤 한 사람의 생각이나 삶을 그린게 대부분인데 이 책은 이문동이 에세이의 주제이다. 사람이 아닌 동네, 어떤 동네이길래? 문득 궁금증이 인다.

 

사진이 많아서 읽기가 즐겁다. 게다가 펼쳐진 풍경은 무척 낯이 익다. 이문동은 외대에 가기 위해 한 두번 들린 게 다였는데 그 뒤로 저런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었구나 싶다. 나는 어릴 적 수유리에 살았다. 지금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와서 산지 오래되었지만 내 어린시절 기억에 수유리는 지금의 수유동과는 많이 다르다. 이문동도 이제는 이문로, 휘경로라고 불린다고 한다. 신주소의 방식은 무슨 신작로마냥 세련된 어감을 갖게 하지만 맞지 않는 곳까지 확 바꿔버리기에 일견 폭력적이다. 이문동 블루스의 주제도 단연 재개발이다. 오래된 구도시를 신도시로 도시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재개발을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책 제목이 이문동 블루스인 걸 봐도 알 수 있듯이 저자들(외대 문화콘텐츠 학생들)은 없어지는 이문동의 소박하고 오래된 문화를 아쉬워하는 쪽이다. 이문동 골목에 '응답하라 1988'의 등장하는 오래된 단독주택과 동네수퍼, 분식집, 구제옷가게 등이 있다고 하니 동네 풍경이 어떠할지는 사진을 안 봐도 짐작이 가는 바다.

 

 

개인적으로는 재개발에 찬성하는 쪽이지만 이렇게 책으로나마 옛모습을 간직하는 것 또한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이라도 생각한다. 개발이 한 번 이뤄지면 옛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기에 사진과 글로 동네 주민들의 인터뷰도 따고 어떤 동네였는지 기록물을 남긴다는 것은 후대를 위해서도 가치가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에세이에는 고서점과 카페, 구제 옷가게, 미용실 등 이문동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상점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가장 마음을 울린 글을 이문동 골목에서 간판없는 슈퍼를 35년 운영한 어느 할머니 이야기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우여곡절 끝에 이문동에 슈퍼를 운영하게 되고 그것도 간판할 돈도 없어서 '가정슈퍼'라는 이름을 두고도 끝내 간판없는 집으로 남은 곳. 딸이 대학에 붙은 소식을 듣고 석유 팔던 바가지를 던지며 울었다는 할머니. 등록금이 없어서 내심 떨어지길 바랬는데 덜컥 붙어버리니 돈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재개발은 멀쩡히 잘 살던 집을 두고 어디로 가라는 야멸찬 명령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보상이라고 돈을 주지만 자기네가 남의 집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잖아'라는 말씀에서 정든 곳을 두고 떠나야하는 원망과 서운함이 묻어난다. 그래도 할머니는 순응한다. 지금껏 직업을 가지고 아이들 다 키우고 열심히 살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하신다. 할머니가 서운한 건 보상금이 적어서가 아니다. 젊은이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에너지로 살지만 늙은이는 살던 곳을 떠나면 그만큼 생명이 단축된다고 한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다. 50년을 산 이문동은 단순한 동네나 집의 개념이 아니라 할머니의 고향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향을 떠나야 하는 슬픔이 전염되어 상관없는 이방인 독자까지도 슬퍼지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나온 가정슈퍼 약력에 2019년 3월 18일까지만 운영한다고 써있다. 이런.. 가정슈퍼는 이제 이 지구상에 없는 것이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가정수퍼. 꽃을 참 좋아하는 할머니가 계신 곳이 더 이상 없다고 하니 마구 아쉽다.

 

이문동에 대한 에세이를 다 읽고나면 풍경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딱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나의 아저씨'. 정작 그 드라마는 가상의 동네 '후계동'를 배경으로 그려졌는데 그 가상의 후계동이 현실의 이문동 같다. 서울에 하나 있다는 딸랑딸랑 철도 건널목도 그렇고 겹치는 풍경이 많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서울에 한 군데는 아직 이런 곳이 남아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실제로 사는 분들 중에는 오래되고 낡아서 불편한 분들, 재개발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재개발에 대한 찬반보다는 '이문동이 이런 곳이었구나, 이런 분들이 오랜시간 이문동에 살면서 이렇게 다정한 마을을 만들어왔구나'하고 기억하기로 했다. 사람에 관한 에세이는 많이 읽었지만 동네에 관한 에세이는 처음이라 남의 앨범을 보듯 신선하고 재밌게 읽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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