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7
제임스 헤리엇 지음, 김석희 옮김 / 도서출판 아시아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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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은 수의사인 주인공이 실제 경험을 바탕으로 소설화한 이야기이기 때문에 에세이와 소설 그 중간쯤에 있다. 영국사람인 저자는 수의대를 졸업한 후 대러비라는 시골마을에서 평생 수의사로 살았다. 그 경험을 바탕으로 50세부터 '수의사 헤리엇의 이야기' 시리즈를 내기 시작했는데 저자 타계 후에 아들이 돌아가신 아버지를 추모하며 엮은 게 이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이라고 한다.

 

 

나는 아주 어릴 때부터 각종 애완동물을 키워봤기 때문에 저자인 수의사의 마음을 십분 이해할 수 있다. 지금도 18살이 된 고양이를 키우고 있고 노령묘라 동물병원에 2년째 다니고 있어서 수의사와 아픈 동물의 생활에 비교적 빠삭하다. 병원 의자에 앉아서 10분만 있어도 아주머니, 할머니들이 오래된 털실 인형같은 강아지들을 안고 들이닥치는데 한 눈에 봐도 많이 늙었고 백내장 등으로 눈동자가 하얗거나 절뚝이며 걷는 등 가여운 아이들이 많다. 하지만 재밌는 건 아무리 볼품없어도 주인에게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한 존재라는 것이고, 개나 고양이들도 그런 사실을 알고 있다. 자신들은 부모나 다름없는 주인의 둘도 없는 귀동아이라는 것을, 병원은 가기 싫지만 왠만큼 익숙하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는 애들이라 아무리 봐도 시간가는 줄 모른다. 각자의 주인과 그 반려동물은 다 하나의 스토리가 있다.

헤리엇이 활동하던 시절은 1930~40년대이다. 변변한 약은커녕 페니실린도 아직 안 나온 때라고 하니 그 열악함은 말할 수 없다. 게다가 그는 시골에서 일하는 수의사이다. 주로 암양이나 말, 소 등을 돌본다. 지금의 수의사들이 개와 고양이를 주요 고객으로 하는 것과 전혀 다른 환경이다. 동물이 덩치가 크고 시골이다보니 대개는 왕진이다. 밤이고 낮이고 없이 전화가 울리면 왕진을 가서 어떻게든 고쳐놔야한다. 예전에 내 과외 선생님이 수의학과라서 큰 동물을 검진했던 경험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선생님 말해준 방법이 헤리엇이 하는 방식과 똑같아서 흥미롭게 읽었다. 새끼를 낳아야하는 어미소나, 말, 양 등은 주로 출산과 관련된 어려움을 겪는데 헤리엇처럼 내 옛날 선생님도 팔을 동물의 몸안으로 쑥 밀어넣어서 촉진으로 알아봤다고 한다. 들을 때는 끔찍했는데 책에서 헤리엇이 하는 방식을 보니 역시 그 방법이 사실이었구나 싶었다. 또한 수의사의 섬세한 감각으로 자리를 잘못 잡은 새끼들을 어미 자궁 안에서 엉키지 않게 머리와 다리 가지런하게 해서 빼내고, 오랜 시간 추운데서 웃통을 벗고 진찰과 치료를 하는 바람에 팔에 감각조차 사라진다는 글을 읽을 때면 정말 극한직업이구나 싶었다.

'수의사 헤리엇이 사랑한 동물들'에는 그가 특별히 기억하는 10마리의 동물들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 책은 헤리엇 시리즈 7권 중 별책의 제일 마지막권이라고 한다. 하나하나의 이야기가 생명과 관계되어있고 경험에서 우러난 글이라 극적이고 생생하다. 마치 시트콤이나 일일 드라마 보는 느낌도 드는데 영국 BBC에서 TV시리즈로도 제작되었다고 하니 과연 그랬겠구나 싶다. 이 책에는 이야기만 실린 것이 아니고 특별한 삽화가 매 챕터마다 함께 한다. 레슬리 홈즈라는 삽화가의 그림인데 사실 세련되고 아름답다기보다 푸근하고 클래식한 느낌을 받았다. 물론 소설 자체가 1930년대 배경이니 당연히 요즘의 그림풍보다 이야기에는 훨씬 잘 어울린다.

동물을 사랑한 수의사 헤리엇과 그가 겪은 다양한 농부들, 주민들의 생활상은 지금과 너무 달라서 영국 시골을 경험해보지 못한 내게도 일종의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농부들 중에는 너무 거칠고 무신경해서 저런 사람이 다 있을까 싶은 부류도 있지만 오래 키운 늙은 암소가 필요없어져서 팔았다가도 그 암소가 다시 집으로 도망쳐 돌아오자 도로 받아주고 키우기로 하는 사람도 있었다. 농부들은 생계를 책임지는 일로 동물을 키우지만 역시 생명인지라 키우다보면 정이 들고 마는 것이다. 도로시라는 염소가 주인 할아버지의 고무줄 팬티를 삼킨 이야기도 웃기고 경마 도박 중독인 할아버지가 뻑하면 멀쩡한 개를 아프다고 주인공을 호출하는 모습도 재미있다. 일일히 이름을 붙여서 양이나 소를 키우고, 그 동물들이 아프면 크리스마스도 없이 득달같이 달려가는 수의사가 있는 마을. 책 속에 펼쳐진 요크셔 대러비의 아름다운 풍경을 상상하는 것도 덤으로 얻은 즐거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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