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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문동 블루스 ㅣ 동네앨범 1
이문맵스 지음 / 리프레시 / 2018년 12월
평점 :

사진집 같은 에세이를 만났다. 보통 에세이라고 하면 어떤 한 사람의 생각이나 삶을 그린게 대부분인데 이 책은 이문동이 에세이의 주제이다. 사람이 아닌 동네, 어떤 동네이길래? 문득 궁금증이 인다.

사진이 많아서 읽기가 즐겁다. 게다가 펼쳐진 풍경은 무척 낯이 익다. 이문동은 외대에 가기 위해 한 두번 들린 게 다였는데 그 뒤로 저런 많은 이야기가 숨어있었구나 싶다. 나는 어릴 적 수유리에 살았다. 지금은 다른 동네로 이사를 와서 산지 오래되었지만 내 어린시절 기억에 수유리는 지금의 수유동과는 많이 다르다. 이문동도 이제는 이문로, 휘경로라고 불린다고 한다. 신주소의 방식은 무슨 신작로마냥 세련된 어감을 갖게 하지만 맞지 않는 곳까지 확 바꿔버리기에 일견 폭력적이다. 이문동 블루스의 주제도 단연 재개발이다. 오래된 구도시를 신도시로 도시 재개발이 이뤄지고 있다. 재개발을 무조건 나쁘다고 볼 수는 없지만 이 책 제목이 이문동 블루스인 걸 봐도 알 수 있듯이 저자들(외대 문화콘텐츠 학생들)은 없어지는 이문동의 소박하고 오래된 문화를 아쉬워하는 쪽이다. 이문동 골목에 '응답하라 1988'의 등장하는 오래된 단독주택과 동네수퍼, 분식집, 구제옷가게 등이 있다고 하니 동네 풍경이 어떠할지는 사진을 안 봐도 짐작이 가는 바다.


개인적으로는 재개발에 찬성하는 쪽이지만 이렇게 책으로나마 옛모습을 간직하는 것 또한 소중하고 의미있는 일이라도 생각한다. 개발이 한 번 이뤄지면 옛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자취를 감추기에 사진과 글로 동네 주민들의 인터뷰도 따고 어떤 동네였는지 기록물을 남긴다는 것은 후대를 위해서도 가치가 있는 사업이라고 생각한다. 이 에세이에는 고서점과 카페, 구제 옷가게, 미용실 등 이문동의 랜드마크라고 할 수 있는 다양한 상점들이 많이 소개되어 있는데 가장 마음을 울린 글을 이문동 골목에서 간판없는 슈퍼를 35년 운영한 어느 할머니 이야기다. 시골에서 올라와서 우여곡절 끝에 이문동에 슈퍼를 운영하게 되고 그것도 간판할 돈도 없어서 '가정슈퍼'라는 이름을 두고도 끝내 간판없는 집으로 남은 곳. 딸이 대학에 붙은 소식을 듣고 석유 팔던 바가지를 던지며 울었다는 할머니. 등록금이 없어서 내심 떨어지길 바랬는데 덜컥 붙어버리니 돈걱정이 되었던 것이다. 할머니에게 재개발은 멀쩡히 잘 살던 집을 두고 어디로 가라는 야멸찬 명령에 지나지 않았다. '아무리 보상이라고 돈을 주지만 자기네가 남의 집을 좌지우지 할 수는 없잖아'라는 말씀에서 정든 곳을 두고 떠나야하는 원망과 서운함이 묻어난다. 그래도 할머니는 순응한다. 지금껏 직업을 가지고 아이들 다 키우고 열심히 살 수 있어서 고맙다고 하신다. 할머니가 서운한 건 보상금이 적어서가 아니다. 젊은이는 새로운 곳에서 새로운 에너지로 살지만 늙은이는 살던 곳을 떠나면 그만큼 생명이 단축된다고 한다.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간다. 50년을 산 이문동은 단순한 동네나 집의 개념이 아니라 할머니의 고향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향을 떠나야 하는 슬픔이 전염되어 상관없는 이방인 독자까지도 슬퍼지는데 마지막 페이지에 나온 가정슈퍼 약력에 2019년 3월 18일까지만 운영한다고 써있다. 이런.. 가정슈퍼는 이제 이 지구상에 없는 것이다. 없는 것 빼고 다 있다는 가정수퍼. 꽃을 참 좋아하는 할머니가 계신 곳이 더 이상 없다고 하니 마구 아쉽다.

이문동에 대한 에세이를 다 읽고나면 풍경도 그렇고 사람들도 그렇고 딱 떠오르는 드라마가 있다. '나의 아저씨'. 정작 그 드라마는 가상의 동네 '후계동'를 배경으로 그려졌는데 그 가상의 후계동이 현실의 이문동 같다. 서울에 하나 있다는 딸랑딸랑 철도 건널목도 그렇고 겹치는 풍경이 많아서 마음이 따뜻해진다. 서울에 한 군데는 아직 이런 곳이 남아있어도 좋지 않을까 싶지만 실제로 사는 분들 중에는 오래되고 낡아서 불편한 분들, 재개발을 오랫동안 기다려온 분들도 분명 계실 것이다. 그래서 나는 재개발에 대한 찬반보다는 '이문동이 이런 곳이었구나, 이런 분들이 오랜시간 이문동에 살면서 이렇게 다정한 마을을 만들어왔구나'하고 기억하기로 했다. 사람에 관한 에세이는 많이 읽었지만 동네에 관한 에세이는 처음이라 남의 앨범을 보듯 신선하고 재밌게 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