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츠하우스 ㅣ ANGST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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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 있는 초고가 빌라 '프린츠하우스'. 겉으로 보면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곳 같지만, 강지영의 소설에서 이 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을 집어삼키고 그 안의 욕심을 부풀리다가, 결국엔 주인마저 지배해버리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그려진다.



주인공 선우는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진 뒤 이 집을 물려받는다. 자기가 집을 갖게 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반대로 그 집 안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언젠가 집을 팔고 떠나겠다는 선우의 말도 어딘가 이상하다. 이미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러던 중 과거 이 집에 살던 집주인의 딸 전승아가 세입자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오컬트 호러로 흘러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냄새, 환청,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촉들이 이어지면서 읽는 내내 불안함이 쌓인다. 초반부는 뭔가를 직접 보여주기보다 감각을 슬금슬금 건드리는 방식이라 더 무섭게 느껴진다.



승아 몸에 깃든 건 여러 독한 생물들을 서로 잡아먹게 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하나에 원한과 독기를 몰아넣는 '고독(蠱毒)'이라는 것이다. 약한 게 강한 것에 먹히고, 그게 또 더 강한 것에 먹히면서 결국 가장 강한 하나만 남는 구조인데, 이걸 읽다 보면 프린츠하우스 자체가 딱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 좋은 집, 더 높은 자리를 향해 서로 밀어내다가 마지막에 남은 게 바로 이 집이 아닐까 싶어서다.



그런데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무속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구마사제 이사악이 등장하면서 가톨릭의 악마와 구마 의식 쪽으로 넘어가고, 결국엔 탐욕을 상징하는 악마 '마몬'까지 연결된다. 무당이랑 악귀, 구마사제가 한 이야기에 다 섞여 있으니 처음엔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데, 뒤로 갈수록 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끌어왔는지 이해가 된다. 고독이든 악귀든 악마든, 결국 다 같은 거라는 얘기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설정은 '불티'다.

악마와 한번 접촉한 사람한테는 불티가 남는데, 이게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붙었다가 때가 되면 다시 살아난다.

이걸 그냥 무서운 설정으로만 보면 저주 이야기지만, 사람 욕심에 빗대어 생각하면 갑자기 확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남보다 더 갖고 싶은 마음, 이미 가진 걸 놓치기 싫은 마음—그게 바로 불티인 셈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악마가 항상 거짓말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진짜 속마음, 그러니까 내가 애써 모른 척하던 욕심이나 열등감을 정확히 짚어내면서 그걸 그럴듯하게 포장해준다.



이 집엔 패닉 룸도 나온다.

원래는 위험할 때 사람을 지키려고 만든 공간인데, 소설 속에서는 오히려 과거의 비밀을 숨기는 곳으로 쓰인다. 스스로를 지키려고 만든 공간이 결국 진실을 감추는 곳이 돼버리는 이 아이러니도 이 작품이 하고 싶은 얘기랑 잘 맞아떨어진다.



<프린츠하우스>는 읽는 재미가 확실한 오컬트 호러다.

한국 무속과 서양 구마 의식을 섞어놓은 설정도 새롭고, 미스터리와 반전 덕분에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기 힘들다. 근데 다 읽고 나면 귀신이나 악마보다 좀 더 찜찜한 게 남는다. 귀신은 책 속에 두고 나오면 그만이고 악마도 허구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좋은 집 갖고 싶고 돈 더 벌고 싶고 지금 가진 거 잃기 싫은 그 마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거니까 그럴 수가 없다.



작가는 귀신 들린 집 얘기를 하는 척하면서 결국엔 독자한테 자기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게 만든다.



내 안에는 지금 불티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이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이 소설의 진짜 무서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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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연의 텔레패스 ㅣ 아시야 초자연현상 1
가미조 가즈키 지음, 김은모 옮김 / 북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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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부르고 있습니다."
짧은 한 문장으로 이야기가 시작된다.

대학 오컬트 동아리 모임에 마지못해 나간 카렌은 기리야마라는 학생한테서 어둡고 위험한 물속에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다는 섬뜩한 괴담을 듣는다.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흘려들었는데, 이틀 뒤부터 집에서 걸레를 바닥에 내리치는 것 같은 '철퍽'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비릿한 냄새가 나고, 이유를 알 수 없는 물웅덩이가 생기고, 무엇보다 그 소리가 조금씩 가까워진다. 이 소설이 진짜 무서운 건 괴물이 튀어나와서가 아니다. 제일 안전해야 할 우리 집이라는 공간을 더 이상 믿을 수 없게 만든다는 점이다.

카렌이 결국 도움을 요청하면서 이야기는 '아시야 초자연현상 조사'의 하루코와 조수 고시노 쪽으로 넘어가고, 소설 분위기도 같이 바뀐다.
쫓기는 사람의 공포담이었던 이야기가 어느새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를 파헤치는 미스터리로 바뀐다. 조사해보니 기리야마의 괴담을 들은 사람이 카렌 말고도 여럿 있었고, 다들 비슷한 일을 겪은 뒤 실종됐다는 게 밝혀진다.
사라지기 직전에 남겼다는 "돌아가고 싶다"는 말이 이야기 내내 중요한 단서로 작용한다.

이 소설이 진짜 재밌어지는 건 여기부터다.
하루코와 고시노는 초자연현상을 덥석 믿지도 않고, 그렇다고 무조건 아니라고 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꾸민 일인지, 심리적인 현상인지, 아니면 정말 설명할 수 없는 뭔가가 있는 건지 하나씩 따져본다. 괴상한 사건도 일단 관찰하고 기록하면서 원인을 찾아가는 두 사람 덕분에, 소설에는 공포와 추리물 특유의 재미가 자연스럽게 섞여 있다.
겉으로 보면 완벽한 저주 구조인데, 두 사람은 계속 "정말 괴담 때문에 사라진 게 맞아?"라고 물으면서 이야기를 끌고 간다.

괴담, 실종 사건, 초심리학, ESP처럼 서로 안 어울릴 것 같은 소재들이 한 이야기 안에 섞여 있는데도 산만하지 않다.
초반에 슬쩍 던져놓은 작은 단서들을 후반부에서 하나씩 다시 꺼내 쓰면서 이야기를 넓혀가는 구성이 좋았다. 무서운 대상도 계속 바뀐다. 처음엔 '철퍽' 소리가 무섭고, 그다음엔 기리야마라는 사람이 무섭고, 그다음엔 괴담 자체가 무서워진다. 그런데 읽다 보면 다시 생각하게 된다. 지금까지 무섭다고 느꼈던 게 정말 이 사건의 핵심이었을까.

보통 호러소설은 정체가 밝혀지는 순간 무서움이 좀 가시는데, 이 소설은 하나 밝혀지면 그 뒤에 더 큰 질문을 하나 더 놔둔다.
진실에 가까워질수록 이야기가 오히려 예상 못한 방향으로 커진다. 카렌 파트가 만든 서늘한 분위기와 다르게 하루코와 고시노가 나온 뒤로는 두 사람 특유의 티키타카가 적당히 숨통을 틔워줘서, 300페이지 정도 되는 분량인데도 술술 읽힌다.

<심연의 텔레패스>는 귀신을 물리치는 이야기가 아니라, 이해 안 되는 현상을 끝까지 들여다보고 거기 숨은 규칙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무서운데 동시에 미스터리이고, 초자연현상을 다루면서도 묘하게 이성적인 태도를 잃지 않는다. 평범한 집 안에서 들리는 작은 소리 하나에서 시작해 생각지도 못한 큰 진실로 나아가는 이 소설을 덮고 나면, 조용한 방 안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혹시 누가 날 부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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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명한 나선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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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릴레오 시리즈에서 유카와 마나부는 늘 사건 바깥에 서서 논리로 현상을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리즈 열 번째 이야기인 <투명한 나선>에서는 그 익숙한 구도가 뒤집힌다. 이번엔 경찰이 사건을 쫓다가 우연히 유카와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지바현 앞바다에서 등에 총을 맞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를 실종 신고했던 동거 여성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데도, 그녀는 갑자기 직장을 쉬고 자취를 감춘다. 구사나기와 우쓰미가 그 흔적을 좇던 중, 뜻밖에도 유카와의 이름과 마주친다. 도움을 청받은 유카와는 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구사나기를 배웅하는 순간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그런데 어떻게 협조하겠다는 건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

이때부터 이 이야기의 진짜 궁금증은 총격 사건 하나만이 아니게 된다.
유카와는 대체 뭘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뭘 감추고 있는 걸까.

이 작품이 남다른 건 사건의 트릭보다 유카와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유카와는 좀 괴팍하지만 냉철하고 똑똑한, 이미 다 자란 어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집에서 자랐고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는 사실 거의 알려진 게 없었다.
그런 그가 부모님 곁에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오랜 친구인 구사나기조차 몰랐던 유카와의 시간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행동까지도 하나의 공식처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도망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도망치고, 진실을 밝혀야 할 사람이 오히려 그걸 숨긴다.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지만, 그 뒤에 사랑과 죄책감, 그리고 오래된 약속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제목처럼 사람의 삶은 곧게 뻗은 길이 아니다.
과거의 일과 지금의 일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같은 자리에서 겹쳐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유카와가 변했다는 점이다.
여러 사건과 여러 사람을 겪어온 지금의 유카와는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진실을 밝히는 게 항상 옳은 일인지 스스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학자에게 진실은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것이지만, 사람에게 진실은 때로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거짓말이 답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이 작품은 그 사이의 애매하고 복잡한 지점을 계속 들여다본다.
수사를 방해하는 건 아니냐는 구사나기의 물음에, 유카와는 짧게 대답한다. 너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도 약속한다고. 이 짧은 대화 안에 두 사람이 오랫동안 쌓아온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이 아니라, 유카와가 오래 묻어뒀던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이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냉철한 사람도 정작 자기 삶에서는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오히려 이번 작품의 유카와를 훨씬 사람답게 느껴지게 만든다.

바다에서 발견된 시신 이야기로 시작한 소설은 어느새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대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오래전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온다면, 그때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과학적인 트릭을 풀어내는 천재 물리학자의 모습보다, 자기 과거를 안고 살아온 한 사람의 얼굴이 훨씬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

덧)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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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 평전 - 2026년 개정증보판
앤드루 킬패트릭.정주용 지음, 안진환 외 옮김 / 윌북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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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런 버핏의 투자 원칙은 익숙하다. 

“절대로 돈을 잃지 마라”, “10년간 보유할 주식이 아니라면 10분도 보유하지 마라”, “가격은 지불하는 것이고 가치는 얻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문장만으로 버핏을 이해할 수 있을까. 


앤드루 킬패트릭의 <워런 버핏 평전>  2026년 개정증보판은 버핏의 명언을 나열하는 대신, 그 말이 어떤 경험과 판단 속에서 나왔는지를 그의 삶 전체를 통해 보여준다.

이 책은 크게 인간 워런 버핏의 성장 과정과 투자자로서의 행보를 따라간다. 

여섯 살 때 콜라를 팔아 이익을 남기던 소년, 새벽마다 신문을 배달하던 학생, 하버드 입학을 거절당한 청년, 컬럼비아 경영대학원에서 벤저민 그레이엄을 만난 제자, 고향 오마하로 돌아와 투자조합을 운영한 젊은 투자자가 어떻게 버크셔 해서웨이라는 금융 제국을 건설했는지가 방대한 자료와 일화를 통해 펼쳐진다.


버핏의 성공은 미래를 예언하는 능력에서 나오지 않았다. 

그는 시장이 언제 오를지를 맞히기보다 기업에 어떤 일이 일어날지를 분석했다. 다른 사람의 전망이나 주식중개인의 보고서보다 기업의 연차보고서, 재무제표와 같은 ‘미가공 데이터’를 직접 읽었다. 사람들이 자신의 의견에 동의한다고 해서 옳은 것이 아니라, 사실이 옳고 추론이 타당하기 때문에 옳다는 벤저민 그레이엄의 가르침은 평생 그의 판단을 지탱했다.


그렇다고 버핏이 무조건 남들과 반대로 움직인 것은 아니다. 

충분한 분석 없이 군중과 다른 선택을 하는 것은 독립적 판단이 아니라 무모함이다. 버핏의 자신감은 자신이 투자하려는 기업을 철저히 이해한 뒤에야 생겼다. 그는 모든 기회를 잡으려 하지 않았다. 평생 사용할 수 있는 투자 카드가 스무 장뿐이라고 생각하라고 조언하며, 확신할 수 있는 소수의 기회를 오래 기다렸다.


그리고 기회가 왔을 때는 대담하게 투자했다. 

아메리칸 익스프레스, 워싱턴포스트, 가이코, 코카콜라에 대한 대규모 투자가 없었다면 버핏의 성과 역시 시장 평균을 조금 웃도는 수준에 머물렀을지 모른다. 그의 성공은 수많은 거래에서 조금씩 이긴 결과가 아니라, 오랫동안 기다린 끝에 내린 몇 번의 중대한 결정에서 비롯되었다.


버핏이 찾은 것은 단순히 싼 주식이 아니었다. 

그는 사람들이 계속 필요로 하는 상품을 만들고, 강력한 브랜드와 충성도 높은 고객을 보유하며, 경쟁자가 쉽게 넘을 수 없는 ‘해자’를 지닌 기업을 선호했다. 찰리 멍거와 함께하면서 그의 투자 방식은 평범한 기업을 헐값에 사는 것에서 훌륭한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는 것으로 발전했다.


좋은 기업을 샀다면 쉽게 팔지 않았다. 

버핏에게 주식은 시세표 속 숫자가 아니라 실제 기업의 일부였다. 기업 전체를 인수한다는 관점에서 주식을 샀고, 사업의 경쟁력이 유지되는 동안에는 좋을 때나 나쁠 때나 보유했다. 그의 투자법은 ‘싸게 사서 비싸게 파는 것’보다 ‘좋은 기업을 합리적인 가격에 사서 오래 보유하는 것’에 가깝다.


이러한 장기 보유를 가능하게 만든 힘은 복리다. 

수익이 다시 원금이 되어 또 다른 수익을 낳는 과정은 짧은 기간에는 미미해 보이지만, 시간이 길어질수록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 버핏이 재산의 대부분을 노년기에 축적할 수 있었던 것도 높은 수익률뿐 아니라 수익을 소비하지 않고 오랫동안 재투자했기 때문이다. 복리에서 가장 중요한 자산은 결국 시간이다.


인상적인 것은 이러한 투자 철학이 버핏의 생활 방식과도 일치한다는 점이다. 

그는 수십 년간 같은 집에서 살고, 낮은 연봉을 유지하며, 과도한 부채와 불필요한 소비를 멀리했다. 버크셔 역시 화려한 본사나 경영자의 과시를 위해 주주의 돈을 쓰지 않았다. 검소함은 단순히 돈을 아끼는 습관이 아니라, 중요한 일에 집중하기 위해 불필요한 욕망을 줄이는 태도였다.


버핏은 투자와 경영에서도 정직과 신뢰를 중시했다. 

경영자를 선택한 뒤에는 자율성을 보장했고, 잘못된 판단은 빠르게 인정했다. 주주들에게 과장된 기대를 심기보다 실적이 나빠질 가능성까지 솔직하게 알렸다. 막대한 부를 축적한 뒤에는 재산 대부분을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약속하고 이를 실천했다. 그에게 돈은 과시와 소비의 수단이 아니라 더 나은 곳에 배분해야 할 자본이었다.


<워런 버핏 평전>은 어떤 종목을 사야 하는지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어떤 투자자가 되어야 하는지를 묻는다. 다른 사람의 말에 쉽게 흔들리지는 않는지, 이해하지 못한 대상에 욕심만으로 투자하지는 않는지, 작은 이익을 위해 원칙을 포기하지는 않는지 돌아보게 한다.


버핏처럼 되고 싶다면 그가 산 종목을 따라 사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스스로 공부하고, 사실을 근거로 판단하며, 좋은 기회를 기다리고, 결정한 뒤에는 오래 견디는 그의 태도를 배워야 한다. 투자는 결국 무엇을 사느냐의 문제이기 전에 어떤 사람이 되어가느냐의 문제다. 워런 버핏은 그 사실을 말이 아니라 자신의 긴 삶 전체로 증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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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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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혜진의 <오직 그녀의 것>은 한 여성 편집자 홍석주의 삶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석주는 처음부터 확신에 찬 사람은 아니었다. 사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우연히 문학 창작 동아리에 들어가고, 선배의 권유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며 문학을 접한다. 처음에는 수업계획서에 적힌 책을 따라 읽는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문장에 오래 머문다. 문학은 운명처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우연히 열린 문이었고, 석주는 그 앞에 오래 머무르며 자기 안의 끌림을 발견한다.

석주의 열정은 불꽃처럼 겉으로 타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조용히 읽고, 손으로 문장을 옮겨 쓰고, 문맥과 행간을 살핀다. 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문장의 호흡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다. 석주는 그렇게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문장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그녀가 문학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문학이 그녀의 삶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석주의 선택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석주가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부모 특히 아버지는 크게 실망한다. 아버지에게 교사는 딸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출판사에 들어가겠다는 석주의 선택은 불안하고 낯선 길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석주의 첫 번째 독립 선언처럼 읽힌다. 석주는 가족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납득하는 삶과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삶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연인의 부모를 처음 만났을 때 반복된다.
석주가 결혼 후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성의 일은 결혼 전 잠시 하는 일이고, 결혼 후에는 가정이 우선이라는 시대의 공기가 그 반응 안에 담겨 있다. 석주는 아버지 앞에서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말해야 했고, 연인의 부모 앞에서는 결혼해도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해야 했다. 남성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을 직업의 지속성을, 석주는 매번 해명해야 했다.

출판사에서 만난 선배들은 석주를 편집자로 단련시킨다.
교열부 선배 오기서는 문장 앞에서 대충 넘어가지 않는 태도를 가르친다. 많이 고치는 것도, 적게 고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원고가 필요로 하는 만큼 정확히 개입하는 것, 그것이 석주가 배운 교열의 윤리였다. 이후 편집부 선배 장민재는 석주에게 한 권의 책 전체를 보는 눈을 열어준다. 문장을 바로잡는 데서 나아가 작가의 세계와 독자를 함께 생각하는 법을 배우며, 석주는 교열자에서 편집자로 성장한다.

연인 원호와의 사랑도 석주에게 중요한 통과의례가 된다.
원호는 석주에게 일 바깥의 생활과 감정을 알려주지만, 그 사랑이 석주의 삶 전체를 대신 완성해주지는 못한다. 이별을 겪으며 석주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도 소중하지만,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할 자기만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석주에게 그것은 책 만드는 일이었다. 이별은 그녀를 일로 도피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이 자기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보게 만든다.

이후 석주가 출판사를 옮기고 인정받는 과정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선배에게 배운 기준은 이제 특정 회사나 사람에게 묶이지 않고 석주 자신의 감각이 된다. 낯선 조직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안목, 어떤 원고 앞에서도 작동하는 판단력, 책을 책답게 만들려는 태도야말로 그녀가 얻은 진짜 자산이다. 편집자의 일은 본래 보이지 않지만, 석주는 그 보이지 않는 노동을 통해 자기 삶의 중심을 세운다.

책 말미에서 석주가 신입 지원자의 면접을 보는 장면은 이 소설의 결산처럼 다가온다.
젊은 시절의 석주는 늘 질문받는 사람이었다. 왜 교사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 왜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하려 하느냐는 시선, 편집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증명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석주는 질문하는 자리에 선다. 지원자에게 건네는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젊은 날의 자기 자신에게 뒤늦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이 일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버티기 어렵지만, 좋아하는 마음 없이도 버틸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책을 만드는 일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으로 살게 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지점에서 제목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석주는 평생 남의 원고를 읽고, 남의 문장을 고치고, 남의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이 남의 것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작가의 원고를 대하는 태도, 선배의 가르침을 자기 안목으로 바꾼 시간,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은 열정, 어디서든 잃지 않은 직업적 자존은 모두 석주의 것이었다.

이 작품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도 닮아 있다. 스토너가 세상의 큰 인정 없이도 문학을 통해 자기 삶의 중심을 지켰다면, 석주는 보이지 않는 편집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축적해간다. <스토너>가 상실의 소설이라면, <오직 그녀의 것>은 축적의 소설이다. 석주는 부모의 기대, 결혼제도의 압력, 사랑의 상실, 직업 세계의 불안을 지나며 자기 삶을 조금씩 자기 것으로 만든다.

결국 <오직 그녀의 것>은 한 편집자의 성장담이자, 한 여성이 자기 삶의 소유권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오직 그녀의 것이란 어떤 지위나 성취가 아니라,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었던 시간과 선택, 그리고 남의 문장 곁에서 끝내 잃지 않은 자기 삶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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