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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그녀의 것
김혜진 지음 / 문학동네 / 2025년 9월
평점 :
김혜진의 <오직 그녀의 것>은 한 여성 편집자 홍석주의 삶을 따라가는 소설이다.
석주는 처음부터 확신에 찬 사람은 아니었다. 사학을 공부하던 그녀는 우연히 문학 창작 동아리에 들어가고, 선배의 권유로 소설 창작 수업을 들으며 문학을 접한다. 처음에는 수업계획서에 적힌 책을 따라 읽는 정도였지만, 어느 순간부터 스스로 책을 찾아 읽고 문장에 오래 머문다. 문학은 운명처럼 찾아온 것이 아니라 우연히 열린 문이었고, 석주는 그 앞에 오래 머무르며 자기 안의 끌림을 발견한다.
석주의 열정은 불꽃처럼 겉으로 타오르지 않는다.
그녀는 조용히 읽고, 손으로 문장을 옮겨 쓰고, 문맥과 행간을 살핀다. 필사는 단순한 베껴 쓰기가 아니라 문장의 호흡을 몸에 익히는 과정이다. 석주는 그렇게 문학을 좋아하는 사람에서 문장을 책임지는 사람으로 조금씩 변해간다. 그녀가 문학을 만난 것은 우연이었지만, 문학이 그녀의 삶이 된 것은 우연이 아니었다.
그러나 석주의 선택은 주변 사람들에게 쉽게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석주가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했을 때, 부모 특히 아버지는 크게 실망한다. 아버지에게 교사는 딸이 안정적으로 살아갈 수 있는 길이었다. 출판사에 들어가겠다는 석주의 선택은 불안하고 낯선 길로 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 장면은 석주의 첫 번째 독립 선언처럼 읽힌다. 석주는 가족을 거부한 것이 아니라, 부모가 납득하는 삶과 자신이 견딜 수 있는 삶이 다를 수 있음을 받아들인 것이다.
비슷한 장면은 연인의 부모를 처음 만났을 때 반복된다.
석주가 결혼 후에도 직장을 그만두지 않겠다고 하자, 그들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여성의 일은 결혼 전 잠시 하는 일이고, 결혼 후에는 가정이 우선이라는 시대의 공기가 그 반응 안에 담겨 있다. 석주는 아버지 앞에서는 교사가 되지 않겠다고 말해야 했고, 연인의 부모 앞에서는 결혼해도 일을 계속하겠다고 말해야 했다. 남성이라면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되었을 직업의 지속성을, 석주는 매번 해명해야 했다.
출판사에서 만난 선배들은 석주를 편집자로 단련시킨다.
교열부 선배 오기서는 문장 앞에서 대충 넘어가지 않는 태도를 가르친다. 많이 고치는 것도, 적게 고치는 것도 답이 아니다. 원고가 필요로 하는 만큼 정확히 개입하는 것, 그것이 석주가 배운 교열의 윤리였다. 이후 편집부 선배 장민재는 석주에게 한 권의 책 전체를 보는 눈을 열어준다. 문장을 바로잡는 데서 나아가 작가의 세계와 독자를 함께 생각하는 법을 배우며, 석주는 교열자에서 편집자로 성장한다.
연인 원호와의 사랑도 석주에게 중요한 통과의례가 된다.
원호는 석주에게 일 바깥의 생활과 감정을 알려주지만, 그 사랑이 석주의 삶 전체를 대신 완성해주지는 못한다. 이별을 겪으며 석주는 누군가와 함께하는 삶도 소중하지만, 그 사람이 떠난 뒤에도 남아 있어야 할 자기만의 세계가 필요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석주에게 그것은 책 만드는 일이었다. 이별은 그녀를 일로 도피하게 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일이 자기 삶에서 차지하는 무게를 보게 만든다.
이후 석주가 출판사를 옮기고 인정받는 과정은 단순한 성공담이 아니다.
선배에게 배운 기준은 이제 특정 회사나 사람에게 묶이지 않고 석주 자신의 감각이 된다. 낯선 조직에서도 사라지지 않는 안목, 어떤 원고 앞에서도 작동하는 판단력, 책을 책답게 만들려는 태도야말로 그녀가 얻은 진짜 자산이다. 편집자의 일은 본래 보이지 않지만, 석주는 그 보이지 않는 노동을 통해 자기 삶의 중심을 세운다.
책 말미에서 석주가 신입 지원자의 면접을 보는 장면은 이 소설의 결산처럼 다가온다.
젊은 시절의 석주는 늘 질문받는 사람이었다. 왜 교사가 되지 않느냐는 질문, 왜 결혼 후에도 일을 계속하려 하느냐는 시선, 편집자로서 자격이 있는지 증명해야 하는 시간들이 있었다. 그런데 이제 석주는 질문하는 자리에 선다. 지원자에게 건네는 말은 단순한 조언이 아니라, 젊은 날의 자기 자신에게 뒤늦게 건네는 말처럼 들린다. 이 일은 좋아하는 마음만으로는 버티기 어렵지만, 좋아하는 마음 없이도 버틸 수 없는 일이라는 것. 책을 만드는 일은 화려하지 않지만, 어떤 사람에게는 자기 자신으로 살게 해주는 일이 될 수 있다는 것.
이 지점에서 제목의 의미가 분명해진다.
석주는 평생 남의 원고를 읽고, 남의 문장을 고치고, 남의 책을 만들었다. 그러나 그 모든 시간이 남의 것이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작가의 원고를 대하는 태도, 선배의 가르침을 자기 안목으로 바꾼 시간, 사랑이 끝난 뒤에도 남은 열정, 어디서든 잃지 않은 직업적 자존은 모두 석주의 것이었다.
이 작품은 존 윌리엄스의 <스토너>와도 닮아 있다. 스토너가 세상의 큰 인정 없이도 문학을 통해 자기 삶의 중심을 지켰다면, 석주는 보이지 않는 편집의 자리에서 자기 삶을 축적해간다. <스토너>가 상실의 소설이라면, <오직 그녀의 것>은 축적의 소설이다. 석주는 부모의 기대, 결혼제도의 압력, 사랑의 상실, 직업 세계의 불안을 지나며 자기 삶을 조금씩 자기 것으로 만든다.
결국 <오직 그녀의 것>은 한 편집자의 성장담이자, 한 여성이 자기 삶의 소유권을 회복해가는 이야기다. 오직 그녀의 것이란 어떤 지위나 성취가 아니라, 누구도 대신 살아줄 수 없었던 시간과 선택, 그리고 남의 문장 곁에서 끝내 잃지 않은 자기 삶 그 자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