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린츠하우스 ANGST
강지영 지음 / 북다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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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동에 있는 초고가 빌라 '프린츠하우스'. 겉으로 보면 부와 성공을 상징하는 곳 같지만, 강지영의 소설에서 이 집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람을 집어삼키고 그 안의 욕심을 부풀리다가, 결국엔 주인마저 지배해버리는 거대한 생명체처럼 그려진다.



주인공 선우는 부모님이 갑자기 사라진 뒤 이 집을 물려받는다. 자기가 집을 갖게 됐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반대로 그 집 안으로 점점 빨려 들어가고 있다. 언젠가 집을 팔고 떠나겠다는 선우의 말도 어딘가 이상하다. 이미 스스로를 속이고 있는 게 느껴진다.



그러던 중 과거 이 집에 살던 집주인의 딸 전승아가 세입자로 들어오면서 이야기는 본격적인 오컬트 호러로 흘러간다. 이유를 알 수 없는 냄새, 환청, 몸에서 느껴지는 이상한 감촉들이 이어지면서 읽는 내내 불안함이 쌓인다. 초반부는 뭔가를 직접 보여주기보다 감각을 슬금슬금 건드리는 방식이라 더 무섭게 느껴진다.



승아 몸에 깃든 건 여러 독한 생물들을 서로 잡아먹게 해서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하나에 원한과 독기를 몰아넣는 '고독(蠱毒)'이라는 것이다. 약한 게 강한 것에 먹히고, 그게 또 더 강한 것에 먹히면서 결국 가장 강한 하나만 남는 구조인데, 이걸 읽다 보면 프린츠하우스 자체가 딱 이런 식으로 만들어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더 좋은 집, 더 높은 자리를 향해 서로 밀어내다가 마지막에 남은 게 바로 이 집이 아닐까 싶어서다.



그런데 소설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한국 무속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구마사제 이사악이 등장하면서 가톨릭의 악마와 구마 의식 쪽으로 넘어가고, 결국엔 탐욕을 상징하는 악마 '마몬'까지 연결된다. 무당이랑 악귀, 구마사제가 한 이야기에 다 섞여 있으니 처음엔 좀 낯설게 느껴질 수 있는데, 뒤로 갈수록 왜 이렇게 여러 가지를 끌어왔는지 이해가 된다. 고독이든 악귀든 악마든, 결국 다 같은 거라는 얘기다.



이 소설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설정은 '불티'다.

악마와 한번 접촉한 사람한테는 불티가 남는데, 이게 완전히 없어지지 않고 사람에서 사람으로 옮겨붙었다가 때가 되면 다시 살아난다.

이걸 그냥 무서운 설정으로만 보면 저주 이야기지만, 사람 욕심에 빗대어 생각하면 갑자기 확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남한테 인정받고 싶은 마음, 남보다 더 갖고 싶은 마음, 이미 가진 걸 놓치기 싫은 마음—그게 바로 불티인 셈이다. 더 소름 끼치는 건 악마가 항상 거짓말만 하는 게 아니라는 점이다.

오히려 진짜 속마음, 그러니까 내가 애써 모른 척하던 욕심이나 열등감을 정확히 짚어내면서 그걸 그럴듯하게 포장해준다.



이 집엔 패닉 룸도 나온다.

원래는 위험할 때 사람을 지키려고 만든 공간인데, 소설 속에서는 오히려 과거의 비밀을 숨기는 곳으로 쓰인다. 스스로를 지키려고 만든 공간이 결국 진실을 감추는 곳이 돼버리는 이 아이러니도 이 작품이 하고 싶은 얘기랑 잘 맞아떨어진다.



<프린츠하우스>는 읽는 재미가 확실한 오컬트 호러다.

한국 무속과 서양 구마 의식을 섞어놓은 설정도 새롭고, 미스터리와 반전 덕분에 마지막까지 손에서 놓기 힘들다. 근데 다 읽고 나면 귀신이나 악마보다 좀 더 찜찜한 게 남는다. 귀신은 책 속에 두고 나오면 그만이고 악마도 허구라고 생각하면 되는데, 좋은 집 갖고 싶고 돈 더 벌고 싶고 지금 가진 거 잃기 싫은 그 마음은 이미 내 안에 있는 거니까 그럴 수가 없다.



작가는 귀신 들린 집 얘기를 하는 척하면서 결국엔 독자한테 자기 마음을 한번 들여다보게 만든다.



내 안에는 지금 불티가 얼마나 남아 있을까—이 질문이 떠오르는 순간, 이 소설의 진짜 무서움이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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