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투명한 나선 ㅣ 탐정 갈릴레오 시리즈
히가시노 게이고 지음, 김선영 옮김 / 북다 / 2026년 7월
평점 :
갈릴레오 시리즈에서 유카와 마나부는 늘 사건 바깥에 서서 논리로 현상을 풀어내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시리즈 열 번째 이야기인 <투명한 나선>에서는 그 익숙한 구도가 뒤집힌다. 이번엔 경찰이 사건을 쫓다가 우연히 유카와의 이름을 발견하게 된다.
지바현 앞바다에서 등에 총을 맞은 남성의 시신이 발견된다. 그를 실종 신고했던 동거 여성에게는 완벽한 알리바이가 있는데도, 그녀는 갑자기 직장을 쉬고 자취를 감춘다. 구사나기와 우쓰미가 그 흔적을 좇던 중, 뜻밖에도 유카와의 이름과 마주친다. 도움을 청받은 유카와는 처음엔 단호하게 거절하지만, 구사나기를 배웅하는 순간 갑자기 마음을 바꾼다. 그런데 어떻게 협조하겠다는 건지는 끝내 말해주지 않는다.
이때부터 이 이야기의 진짜 궁금증은 총격 사건 하나만이 아니게 된다.
유카와는 대체 뭘 알고 있는 걸까.
그리고 뭘 감추고 있는 걸까.
이 작품이 남다른 건 사건의 트릭보다 유카와라는 사람 자체가 궁금해진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우리가 알던 유카와는 좀 괴팍하지만 냉철하고 똑똑한, 이미 다 자란 어른의 모습이었다. 그런데 그가 어떤 집에서 자랐고 어떤 어린 시절을 보냈는지는 사실 거의 알려진 게 없었다.
그런 그가 부모님 곁에 있는 모습으로 등장하는 장면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진다. 오랜 친구인 구사나기조차 몰랐던 유카와의 시간이 조금씩 드러나기 시작한다.
이번 작품에서 작가는 조금 다른 질문을 던진다.
사람의 행동까지도 하나의 공식처럼 설명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다.
도망칠 이유가 없어 보이는 사람이 도망치고, 진실을 밝혀야 할 사람이 오히려 그걸 숨긴다.
이해하기 힘든 행동들이지만, 그 뒤에 사랑과 죄책감, 그리고 오래된 약속이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이야기가 완전히 다르게 다가온다.
제목처럼 사람의 삶은 곧게 뻗은 길이 아니다.
과거의 일과 지금의 일이 전혀 상관없어 보이다가도 어느 순간 같은 자리에서 겹쳐진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건 유카와가 변했다는 점이다.
여러 사건과 여러 사람을 겪어온 지금의 유카와는 예전과는 조금 다르다.
진실을 밝히는 게 항상 옳은 일인지 스스로 고민하는 모습을 보인다. 과학자에게 진실은 반드시 찾아내야 하는 것이지만, 사람에게 진실은 때로 누군가의 삶을 무너뜨릴 수도 있는 것이니까.
그렇다고 거짓말이 답이라는 얘기도 아니다.
이 작품은 그 사이의 애매하고 복잡한 지점을 계속 들여다본다.
수사를 방해하는 건 아니냐는 구사나기의 물음에, 유카와는 짧게 대답한다. 너를 배신하지 않았다는 것도 약속한다고. 이 짧은 대화 안에 두 사람이 오랫동안 쌓아온 믿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결국 이 작품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범인이 밝혀지는 순간이 아니라, 유카와가 오래 묻어뒀던 자기 이야기를 꺼내는 순간이다. 누구보다 똑똑하고 냉철한 사람도 정작 자기 삶에서는 완벽한 답을 찾지 못한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오히려 이번 작품의 유카와를 훨씬 사람답게 느껴지게 만든다.
바다에서 발견된 시신 이야기로 시작한 소설은 어느새 전혀 다른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가까운 사람에 대해 대체 얼마나 알고 있을까.
그리고 오래전 저지른 잘못을 바로잡을 기회가 온다면, 그때 우리는 용기를 낼 수 있을까.
과학적인 트릭을 풀어내는 천재 물리학자의 모습보다, 자기 과거를 안고 살아온 한 사람의 얼굴이 훨씬 오래 마음에 남는 작품이다.
덧)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