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슐레의 민중
쥘 미슐레 지음, 조한욱 옮김 / 교유서가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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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인의 역할은 무엇일까?

읽으면서 떠올린 것은 정말 이상하게도 어릴적 이광수의 '사랑'이라는 책을 읽었던 기억이다.

나라에 대한 충성실과 일상생활에서의 근면성실을 강조했었던 그 책이 떠올랐던 이유는

아마도 각 작품이 쓰여졌던 시대상이 흡사하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이광수의 친일에 대해서 옹호하는 입장은 전혀 아니다. 다만 그의 저작에서 받았던 느낌을 떠올린 것 뿐이다. <사랑>을 읽었을 때는 내가 중학생 때였다. 작가에 대한 사전지식이 없었던 상태로 그저 두꺼운 책을 서점에서 골랐을 뿐이었다. 그와 별개로 그는 읽는 사람에게 자의식을 고취시킬 정도의 역량이 있었던 것은 분명하다.]

우리나라의 지정학적 위치. 열강들에 끼여있어 외교면이나 국방, 수출과 관련된 경제면에서 노련한 운영이 필요한 점. 일제에 침략과 지배를 당한 경험이 있다는 점에서 우리민족에게 필요한 것은 아마도 민족주의가 아니었을까.

반면 프랑스 하면 떠오르는 단어. <혁명>. 그런데 정작 혁명 이후 민중의 삶은 그다지 편하지는 않았던 것 같다.

프랑스의 현실을 영국과 독일에 비교하는 부분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저자는 프랑스에 대한 애정을 바탕으로 역사가이자 민중과 함께 생활한 자로서 다양한 계층과 나눈 대화를 풀어낸다. 그에게 있어 <민중>이란 헌신과 희생을 보여 준 고귀한 사람들이다. 계몽의 대상이 아니라 존중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이다. 이 점에서 이광수가 본 민초들과 다르다.

농부가 보여주는 절제의 미덕과 노동의 의미를 강조한다. 프랑스 혁명이 단지 국가 내적인 의미를 가진 사건이 아니라 인류 전체에 대한 의미를 가졌다고 본다. 조국애를 바탕으로 그 안의 민중이 존중받아야 하는 이유를 설파한다.

지식인의 역할이란 이런 것이 아닐까.

프랑스 사람이 아닌데도 가슴이 뜨거워진다. 정치인의 유세연설과 같이 느껴지기도 하는데, 문장력이 받쳐주니 호소력 있는 목소리로 정치인이 읽어만 주어도 큰 울림을 줄 것 같다. 세련된 '국뽕'의 느낌이 있다.

어쩌면 할아버지가 손자에게 들려주고 싶은 마음으로 쓴 글이 아닐까 한다. 아버지가 말하기엔 그 삶은 증명 과정에 있으니까. 이미 겪어 본 자의 시각에서.

이 책의 리뷰를 적는 것은 지금의 나에게는 버거운 일인 것 같다. 교유서가에서 이 책을 같이 읽는 이벤트를 마련했다. 인스타그램을 통해 지원했는데, 매일 일정분량을 읽어 완독한 후 옮긴이 조한욱 교수님과 함께 온라인 토론도 진행될 예정이다.

아마도 오늘 쓴 글과 '같이 읽기'를 마친 후에 쓰는 글은 다를 것 같다.

* 이 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고 주관적인 느낌이나 의견을 적은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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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루 10분 인문고전 독서의 힘 - 인간이 배워야 할 모든 것이 인문고전 안에 있다!
박상용 지음 / 미다스북스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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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라인 독서모임을 하고 있습니다.

매일 책 읽고 인스타그램에 피드를 남기는 모임이기에 책을 좋아하시는 분들이 모여 있습니다.

운 좋게도 모임 분을 통해서 작가님의 사인본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 책을 읽고 그에 대한 글을 올리는 모임의 취지에 부합하는 책이었어요.

고전에 대한 내용만 등장하는 것이 아니라, 작가님이 고전을 읽기 된 계기, 자녀들과 토론을 하게 되기까지의

시행착오, 말미에는 배우자분의 토론 참가까지의 여정이 등장합니다.

인문고전으로 함께 하는 자기계발서로서의 역할도 합니다.

개인적으로 도움이 되었던 부분은 고전(비단 고전에 한정되는 것이 아니라 책 일반에 통용)을 읽어야 하는 이유와 읽는 방법을 다룬 부분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책을 읽는다는 것은 자연스러운 행동이었습니다. 활자중독이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

한 때는 권 수에만 집착해서 내용보다는 분량 위주의 독서를 했던 때도 있고, 읽다가 완독하지 않고 날림으로 읽는 경우도 있었습니다. 언젠가부터는 책을 행위 그 자체에 매몰되어 책을 읽는 이유에 대해서 등한시한 듯 합니다.

아이가 여섯살이 되었는데, 언젠가는 아이와 함께 책을 읽고 토론하는 상상을 합니다. 작가님은 그걸 이미 실행하고 계시더군요. 어떤 책을 골라야 하는지 팁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언젠가 사진과 함께 게시글을 올릴 날을 기약해봅니다.

사실 이런 종류의 책은 반복되는 내용들을 목차만 바꿔서 나열하는 것에 그치는 경우도 있는데, 작가님은 본인이 겪었던 일들이 매번 들어가다 보니 지루하지 않게 읽을 수 있었습니다.

책을 읽다가 필사를 강조하는 부분이 있어 목차를 적었다가 키워드 위주로 적어두었습니다. 아, 필사는 아니고 타이핑이네요. 인문노트 만들려고 노트부터 구매하려구요.

인문고전 읽기의 마지막은 행동이니까요.

작가님의 다음 책이 기대됩니다.

#하루10분인문고전독서의힘 #박상용 #미다스북 #인문고전독서 #책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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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를 위한다는 착각 -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
마이클 셸런버거 지음, 노정태 옮김 / 부키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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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이 다 했다. 부제 종말론적 환경주의는 어떻게 지구를 망치는가를 증명하기 위해 전 지면을 할애하여 반론을 실었다.

 

환경주의자들이 목소리를 낼 때 내세우는 것은 거시적인 대의이다. ‘환경을 지켜야 한다대의를 거스를 수 있는 사람이 누구 있을까.

각론으로 들어가보면 소비를 줄여야 한다. 재생가능한 물품을 사용해야 한다. 야생동물을 보호해야 한다 등등따라야 한다고 주장하는 각론들에 반론은 충분히 제기될 수 있다. 실효성이 있는지, 다른 대안은 없는 것인지, 전체적인 면에서 효과가 없다면 현재상태를 유지하려는 노력이 최선의 방안이 아닌 것인지 등등. 그러나 이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려고 하면 즉각 악의 편으로 간주된다.

 

이상하지 않는가. 대전제가 참이라고 하여 소전제와 결론이 참이라고 단정지을 수 없다. 반론이 개입할 수 있는 여지가 충분하다. 이 책은 극단적인 환경주의자들이 주장하는 소전제가 어떻게 부당한지 그 결과 대전제와 다른 결론(환경보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을 이끌어내는지를 증명해나간다.

 

잘못된 상식과 이를 고수할 때 나올 수 있는 결론이 어떻게 선한의도(? 사실 책을 끝까지 읽고나면 의도 자체에 대해서도 의문이 생긴다)를 배신하는지를 보여준다.

 

이 책을 펴낸 것이 용기있는 행동이라 여기는 이유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 선과 악의 이분법을 극복해나갈 수 있는가에 대해 나 스스로 요원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분명 이 책에 대한 반론이 나올 것이고, 아마도 근거 유무와 관계 없이 어느 한쪽의 입장에 서 있는 이들을 악마화할지도 모른다.

 

책을 읽으면서 인지하게 된 것은 환경론자들의 입장과 이에 대한 반론을 취하는 측의 입장이 경제문제와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같은 출판사에서 펴낸 장하준 교수의 그 유명한 사다리 걷어차기가 떠올랐다. 선진국들이 지금과 같이 자리잡기 전에 취했던 발전의 사다리를 후진국들이 올라오지 못하게 하는 것. 선진국들이 단계를 거쳐서 현재 확보한 인프라와 발전단계에서 할 수 있는 조치나 정책들을 후진국에게 강요하는 것이 그것이다.

 

신재생에너지가 현재의 에너지원을 대체하기 위해서는 필요한 기반시설과 간헐적인 발전을 상쇄할 수 있는 에너지 보관장치 등을 갖출 수 있어야 한다는 점. 경제적인 성장이 동반되지 않는 이상 환경적 요인을 극복해나갈 수 없다는 점, 결국 비용만 늘어갈 뿐 환경문제는 더 악화될 수 밖에 없다는 점을 보여준다.

 

기후 변화 대책보다 발전이 더 절실한 사람들에게, 즉 당장 먹고 살 것이 걱정인 사람들에게 환경보전을 강요하는 것이 피부에 와 닿는 것인가. 미세먼지 등 대기오염 문제는 콩고 사람들에게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 밖에 없는 것이다. 환경을 보전한다는 명목으로 거주민들의 생업을 금지하는 것이 옳은 일인가.

 

멸종위기의 고래를 살려낸 것은 고래기름을 대체할 수 있는 물질의 발명이라는 것을 설명하는 부분과 같은 맥락에서 자연을 지키려면 인공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주장과 미세플라스틱과 관련된 선입견을 깬 부분은 유심히 읽어볼 부분이다. 여성의 가사노동에서의 해방은 선거권 획득 등 정치적인 영역에서 찾은 영향력 덕분이 아니라 세탁기 등 과학의 발전에서 기인했다는 것과 유사하다.

 

우리나라의 원전기술자 인터뷰도 등장한다. 원자력발전과 관련된 문제. 에너지 효율성과 안전에 대한 부분 역시 읽어볼만하다. 위험성에 대해서 과장된 면이 있다는 것과 급격한 탈원전의 영향으로 화력발전 등의 비율이 높아져서 생기는 부작용, 전기료 인상 문제 등이 눈에 들어온다.

의외의 점은 일자리 창출과 관련된 것이었다. 원자력 발전이 화력발전의 경우보다 유지가동에 필요한 인원이 많았다는 점이다.

 

탈원전 정책에 대해 와이프와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는데, 그 위험성 때문에 탈원전하는 것이 옳은 방향이라는 것이 와이프의 입장이다. 체르노빌 원전 사건과 일본에서의 방사능유출 등의 사건을 보면 그 위험성이 심각하다는 것인데, 이 점에 대해서도 반론이 있어 같이 읽어볼 생각이다. 아무리 수치상으로는 영향력이 적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다고 해도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조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아무리 인체에 유해를 미칠 가능성과 영향력이 낮다고 해도 말이다.

 

탈원전 정책이 맞다는 전제 아래 에너지 효율성과 환경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타당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가동 중인 원전의 경우는 기대수명까지는 최대한 활용해야 하지 않을까. 당장 가동을 중단하여 얻은 결과가 급격한 탄소배출량의 확대, 다른 에너지원으로 벌충하기 위한 무리한 발전소 가동, 전기료 인상 등으로 이어진다면 재고할 필요성도 있는 것 같다. 책에서는 원자력발전을 옹호하는 입장이기는 하다.

 

공정무역도 언급한다. 다국적 기업의 저임금노동자 고용 관련한 부분. 여기서도 선입견에 대한 혼란이 온다. 가난한 나라 사람들이 만든 옷을 입어주는 것이 결과적으로 그들을 돕는 것이 된다는 것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육식과 채식 관련한 문제는 선택과 범위에 대한 개인적인 신념에 따라 행하도록 하는 것이 맞다고 본다. 어느 한쪽이 비난받을 사안은 아닌 것 같다. 다만 본인의 신념이 언제나 옳은 결과를 도출하는 것은 아님을 고기를 먹으면서 환경을 지키는 법에서 확인하기 바란다.

 

환경주의자와 친환경 사업 부분을 보면 자본주의의 민낯을 보게 된다. 단체의 이름보다 재정구조와 실제 활동내역에 유의해야 할 듯 하다.

 

우리가 자연을 보호하는 데 거창한 이유는 필요하지 않다. 일부 동물이 멸종한다 해도 우리에게 물질적 손해는 없다. 그럼에도 멸종 위기의 동물들을 살리려고 하는 이유는 결국 우리가 그들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옮긴이는 저자의 입장을 환경 휴머니즘이라 칭하는데, 이에 동의한다.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다루는 것은 미시적인 환경이 아니라 결국에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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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직은 봄밤 - 교유서가 소설
황시운 지음 / 교유서가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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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이름을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읽고나서 작가가 2011년에 창비문학상을 수상한 <컴백홈>을 구매했다.

사실 이 소설집에 실린 첫 작품인 <매듭>을 읽을 때만 해도 지나치게 자학적인 이야기가 여겨져서 작가에 대한 반감이 일었었다.

산악행을 즐길 정도로 건강했던 남자의 추락사고. 사지를 움직이지 못하게 된 남자. 그리고 그 남자와 헤어지지 않겠다는 여자. 여기서 시작된 끊임없는 갈등. 매듭이라는 장치. 끝내 묶지 못하는 매듭을 놓지 않는 남자. 그가 매듭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를 아는 듯한 여자. 그리고 생에 대한 조롱.

이런 이야기는 사실 너무 지치잖아. 힘들지만 읽어나갈 수 밖에 없는 아찔한 감정선.

'그후로 그들은 행복하게 잘 살았답니다'로 결코 끝나지 않을 것을 알고 있기에. 남자를 동정하였다가 원망하였다가 제 삶도 갈아먹는 여자의 이야기.

두번째 작품 <홈>을 읽을 때는 장르의 다양성을 경험하게 됐다.

같은 작가가 쓴 게 맞나 싶을 정도. 애완동물. 버려지지 않으려 애쓰는 두 사람이 등장.

한 명은 여자에게, 한 명은 같은 공간에 있다가 여자의 집으로 들어가 버린 처음의 한 명에게.

길들여졌지만 쌍방통행이 아닌 일방적인 관심을 갈구하는 관계.

시작은 선택했지만 마지막은 선택할 수 없는 처음의 한 명.

예상하지 못한 방식으로 이별을 선택한 다른 한 명.

<홈>이란 기거할 수 있을 곳인가, 마음을 붙일 수 있는 곳인가.

물질적인 공간인가 혹은 정서적인 개념인가.

세번째 작품 <어떤 이별>을 읽고 나서 문득 이런 글을 쓸 수 있는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궁금해졌다.

작가의 인터뷰가 담긴 짤막한 기사를 보고, 책의 말미에 있는 <작가의 말>을 읽고서 잠시 멍 해졌다.

<어떤 이별>은 상처를 후벼파는 글이다. 어떻게 살 수 있을까. 살아갈 수 있는 희망이 있을까.

사적인 복수의 끝에 뭐가 남을까.에 대한 완벽한 답안이었다. 세 명의 여인이 등장한다. 각자 다른 의미의 지옥을 살아간다.

"나도 그냥 .... 살아가겠죠. 끊임없이 기억하고, 증오하고, 자책하며, 하지만 질기게."

나도 띄엄띄엄, 그러나 또박또박 대답했다. 105쪽

네번째 작품 <그들만의 식탁>은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이다.

<컴백홈>에 실린 작가의 후기를 읽고 있자니 '음식'을 소재로 한 작품의 결과가 좋았다고 털어놓는다.

그래서 음식이 어떤 역할을 하느냐고? 누군가를 이어주고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 누군가를 애증의 대상으로 만드는 역할을 한다. 등장인물의 결이 매번 다른 것이 신기하다. 음식을 매개로 어머니의 남자들과 나의 관계를 그린다.

그러고보면 단편집의 제목들이 다 애사롭지가 않다.

아홉개의 작품이 실려있다. 그 중 2개의 작품은 2011년 이전에 쓰인 작품이고 나머지는 그 이후이다. 알고나니 묘하게 분위기가 다른 듯 하다. 전체 작품에 대한 느낌을 남기지 않는 이유는 이 책을 읽어보셨으면 하는 바램에서이다.

작가는 말한다.

"소설을 읽을 수도 쓸 수도 없는 시간을 보내는 동안 내가 '살고 싶다'는 건 '소설을 쓰고 싶다'는 말의 다른 표현이라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매일매일 죽고 싶다고 생각을 하면서도, 어쩐 일인지 소설만은 쓰고 싶었다. 나는 끝내 살아남았고, 영영 묻혀버릴 줄 알았던 소설들은 책으로 묶였다. 놀랍고 고마운 일이다." 304쪽

이런 사람이 쓴 글이란 어떤 글일지 궁금하지 않으신가요?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주관적인 의견이나 느낌을 적은 글입니다.

#황시운작가 #그래도아직은봄밤 #작가만이쓸수있는이야기 #교유당서포터즈3기 #교유서가 #황시운소설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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