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트루스 - 가짜 뉴스와 탈진실의 시대
리 매킨타이어 지음, 김재경 옮김, 정준희 해제 / 두리반 / 201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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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들어가기 전에

출판에도 유행이 있다. 비슷한 기획의 책들이 난무하고 책의 제목만 들어도 읽은 것 같은 기시감이 드는 경험.

다들 있을 것 같다. 가짜뉴스에 속지 않는 법 등등.

스마트폰으로 모든 일상이 가능한 요즘을 살고 있는 이때, 가짜뉴스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없는 것 같다(실제로 '포스트트루스'를 읽기 전까지 사실인냥 받아들였던 부분이 있어서 조금 놀랐고, 이후 더 집중해서 읽게 되었다.).

이 책도 전에 읽었던 책들과 비슷하겠지 하는 가벼운 마음으로 책장을 넘기다가 어느 순간 밑줄을 긋느라 책을 읽는 속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구성에서 마음에 들었던 점은 각 장을 시작하기 전에 '조지 오웰'의 격언으로 시작한다는 것('존 메이너드 케인스', 무려 '토마스 제퍼슨'이 한 말을 인용한다. 이 책의 제목이 '탈진실'임을 염두에 둔다면 '각주'의 중요성도 염두에 둘 것. '토마스 제퍼슨'이 살았던 시대와 할 법한 말을 생각하면서 조금 주의깊게 읽는다면 혼자만의 재미를 더 찾을 수 있을지도). '1984'에서 시대를 앞서간 통찰력을 보여주었던 작가의 말이라 이 책의 주제에 더 부합하지 않았나 싶다.

이런 종류의 책에 대한 리뷰를 쓰는 것은 무척 어렵다. 왜냐하면 밑줄을 그은 부분만을 옮겨도 상당한 분량이 되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남기지 않을 수 없는 이유는 이 책을 언젠가는 다시 찾아볼 것이기 때문이다. 그럴 때 시간을 절약할 수 있을 것 같다 ㅎ

2. 리뷰를 빙자한 책 내용 발췌

제1장 탈진실이란 무엇인가?

거짓이 판치는 시대에는 진실을 말하는 것이 곧 혁명이다. 조지 오웰. 15쪽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해서 언급하는 대목을 듣고서야 아주 조금 감이 오기 시작했다.

'탈진실은 더욱 악랄한 형태로 나타나기도'하는데, '사람들이 자기기만과 망상에 빠져 진실이 아닌 말을 진심으로 진실이라고 믿어버리는 경우'로 '극단적인 수준에 이르면, 사람들은 대중의 반응이 '실제로' 사실 여부를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하게' 된다.

'사회의 리더가 혹은 사회의 다수가 기본적인 사실들마저 부정해버린다면 세계가 뒤흔들리는 결과가 초래될 수 있다'는 점, '진실을 부정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믿고 싶지 않은 사실에는 지나치게 높은 검증 기준을 들이대는 반면 자기 의견에 부합하는 사실은 덮어두고 맹신'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점에서 '탈진실'이란 '진실이 개인의 정치적 입장에 종속된다'는 입장이다.

실제 사실이 중요하지 않게 되버리는 현상 ㄷㄷ 아, 뭔가 끔찍한 것을 본 느낌이다.

제2장 탈진실을 이해하려면 과학부인주의를 보라.

사실이 바뀌면 저는 제 생각을 바꿉니다만, 선생님께서는 무엇을 하시는지요? - 존 메이너드 케인스 35쪽

기후변화 이슈, 진화론 등을 예로 들면서 비전문가들의 비판태도를 검증한다.

"과학적인 연구 결과를 비판하는 비전문가들은 대부분 겉으로는 '개방성'과 '공정성'을 명분으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아무렇지도 않게 자신만의 이념적인 잣대를 객관적인 탐구 과정에 들이"민다.

과학자들의 연구결과에 대해서는 엄격한 기준을 들이대면서 정작 본인들에게 '그처럼 엄격한 기준을 들이댈 때마다 과학부인주의자들은 늘 흐지부지 대답을 회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과학이 작동하는 원리를 전혀 또는 거의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진화를 '증명'할 수 없다는 사실(엄밀히 따지면 지구가 둥글다는 명제조자 증명할 수는 없다)이 과학의 심각한 결함이라고 착각하면서 대안 이론을 꺼내 들 준비를 한다.

어째서 나머지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실재한다는 사실은 물론 과학자들이 기후변화 이슈에 합의점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에 대해서도 혼란을 겪는 것일까? 이는 앞서 지적한 것처럼 경제적인 이득을 볼 수 있는 자들이 지난 20년 동안 거리낌 없이 의혹을 날조해왔기 때문이다.

지지자들이 실제 증거보다는 어느 편에 속하는지에 더 관심이 많다면 '사실'은 '의견'보다 아래에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제3장 탈진실의 뿌리에는 인지 편향이 있다

사람들은 자신의 소망과 일치하는 미래만 내다보려고 하며 반기기 싫은 진실은 아무리 명백하게 드러나 있다고 할지라도 외면하려고 한다. - 조지 오웰 57쪽

인간심리학의 핵심 전제는 인간이 심리적 불편함을 피하려고 애쓴다는 점이다.

사회심리학 역사상 유명한 세 가지 고전적 발견

1) 인지부조화 이론

인지부조화의 특성 가운데 결코 간과해서는 안 될 부분이 있다. 주위에 동일한 신념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 있을수록 인간의 '비합리적인' 경향이 더욱 강화된다는 점이다.

2) 집단 동조 이론

3) 확증 편향 이론

그중 탈진실을 설명할 때 가장 중요한 현상을 꼽아야 한다면 확증 편향의 뒤를 이어 밝혀진 두 가지 편향 현상을 떠올릴 수 있다. 바로 의도적 합리화 개념에 뿌리를 두고 있는 '역화효과'와 '더닝-크루거 효과'다.

'역화효과'와 '더닝-크루거 효과'는 처음 접하는 용어였다. 자세한 내용은 책의 내용을 통해 접하길 권한다.

정치적 신념이 아무리 확고한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믿음에 반하는 증거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보면 결국 '티핑포인트(작은 요인들이 서서히 쌓이고 쌓이다 일순간에 엄청난 변화를 초래하게 되는 분기점)'에 이르러 신념을 바꿀 수 있다는 것이다.

- 정치적인 지형에 따른 인지왜곡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이 여기에 있는 것 같다. 어르신들의 생각도 환경에 따라서는 바뀔 수 있지 않을까.

제4장 전통적인 미디어가 쇠퇴하다

저널리즘이란 다른 누군가가 활자화하지 않기를 바라는 사실을 활자화하는 행위를 가리킨다. 그 외에는 모두 선전 행위에 불과하다. - 조지 오웰 93쪽

어떤 메시지가 추종자들 사이에서 의도치 않게 오해를 불러일으켰다면 그 메시지의 모든 유포자가 책임을 져야 할까? 아니면 사람들이 진실이 아닌 내용을 믿도록 의도적으로 속인 첫 번째 유포자만 책임을 져야 할까? 하지만 속이려는 의도가 없다고 하더라도 메시지를 전달하는 방식이 오해를 불러일으키는 데에 영향을 주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그럼에도 책임을 추종자들에게 돌리고 자신의 편향적인 태도에는 문제가 없다고 말할 수 있을까?

- 107쪽 밑에서 두번째 문단. 문제의식을 드러낸 좋은 질문이다. 이 챕터는 이 부분의 질문으로 대체 ㅎ

※정보 편향 : 기자들이 정보를 수집하고 뉴스를 보도하는 방식이 전달해야 할 진실을 왜곡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현상을 말한다.

제5장 소셜미디어의 출현과 가짜 뉴스의 범람

인터넷에서 읽는 모든 것을 믿지는 말라. -토머스 제퍼슨 125쪽

결과적으로 정보의 양극화와 파편화를 부추기는 '뉴스 사일로' 문제가 대두된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뉴스를 확인한다는 말은 자신과 정치적 견해가 다른 사람을 '친구 삭제' 하듯이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뉴스 출처를 무시할 수 있다는 뜻이다.

-131쪽 마지막 문단. 사실 좀 뜨끔하다. 모바일 네이버 화면에 노출되는 신문사를 특정 신문사로 지정해놓았기 때문이다. 자연히 구미에 맞는 기사만을 접하게 된다.

가짜 뉴스에 맞서 싸우려면

첫째, 시스템적인 문제를 인식하고 해당 문제가 어떤 식으로 이용될 수 잇는지 이해하자. 159쪽

둘째, 비판적 사고 능력을 향상시키기 위해 노력하자. 161쪽

베들리가 아이들에게 전해준 가짜 뉴스 식별 방법

1. 저작권을 확인하라.

2. 여러 출처를 통해 확인하라.

3. 출처의 신뢰성을 평가하라(예컨대, 충분히 오래 인정받았는지 확인하라).

4. 정보의 게시 일자를 확인하라.

5. 주제에 대한 지은이의 전문성을 평가하라.

6. 내가 알고 있는 지식과 일치하는가를 확인하라.

7. 현실성 있는 내용인지 의심하라. -163쪽

위 내용은 논문을 쓸 때도 유용할 듯 하다. 출처에 대한 조사를 하다보면 의외로 신뢰성에 대한 의구심이 풀릴 때가 많은 것 같다. 단. 비난과 비판은 구별되어야 함.

제6장 포스트모더니즘은 어떻게 탈진실로 이어졌을까?

진보 진영의 사상은 대부분 불이 위험한 줄 모르고 불장난을 벌이는 사람들의 생각같다. - 조지 오웰 167쪽

철학자 마이클 린치는 "포스트모더니즘을 정의내리기가 불가능하다는 점은 모두가 인정한다."라고 말한다.

이것이 그리 놀랄 일이 아닌 이유는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표현은 바로 그 모호함 때문에 인기를 얻었기 때문이다. 168쪽

- 이 부분에 대해 공감을 하는 것은 고백하건대, '포스트모더니즘'의 개념에 대해 잘 모르기 때문이다.

정말로 '진실'이 존재하지 않고 오로지 '해석'만 존재한다면, 그리고 미국인 수백만 명이 아무 생각 없이 그러한 관점을 받아들이고 있다면, 누가 굳이 애를 써가며 사실과 허구를 구분하려고 할까? -192쪽

오로지 관점만 존재할 뿐 진실은 존재하지 않는다면 우리가 어떤 사실을 제대로 아는 것이 가능할까? 주류 언론에서 나오는 뉴스를 의심하거나 음모론을 받아들이지 못할 이유가 어디 있을까? 뉴스가 사실을 전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정치적 이념을 표현하는 것에 불과하다면 뉴스를 지어내지 못할 이유는 무엇일까? 누가 제시하는 사실이 우위에 있어야 할까? 누구의 관점이 옳은 관점일까?

포스트모더니즘은 분명 탈진실의 후견인이나 마찬가지다.

- 198쪽. 좋은 질문이다. 생각할 거리를 만들어주는..

제7장 탈진실에 맞서 싸우다

지금 우리는 명백한 사실을 거듭 외치는 것이 지성을 가진 사람의 첫 번째 의무인 절박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 조지 오웰 201쪽

어떤 주장이 아무리 터무니없다고 할지라도 아무도 믿지 않으리라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거짓말쟁이가 거짓말을 하는 이유는 누군가가 그 말을 믿을 가능성이 존재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206쪽

의조적 합리화나 인지 편향 같은 것들의 영향력이 매우 강력하기는 하지만, 진실에 반복적으로 노출되다 보면 결국 효과가 있다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210쪽

탈진실에 맞서 싸우는 가장 중요한 방법 중 하나는 우리 속에 있는 탈진실적인 경향성을 물리치는 것이다. 진보주의자든 보수주의자든 우리 모두는 탈진실로 이어질 수 있는 다양한 인지 편향을 타고난다. 따라서 탈진실이 다른 사람에게만 나타난다거나 다른 사람에게만 문제를 초래한다고 가정해서는 안 된다. -215쪽

새로운 화두 - 우리는 선진실 시대에 들어서고 있을까?

여기까지 읽고나면 무언가 잡힐 듯 잡히는 게 생긴다. 내 편이라는 이유로, 다른 편이라는 이유로 정보의 진실성 여부를 판단하다보면 눈 뜬 장님일 수도 있다. 깨어 있는 사람이 되고 싶으면 노력해야 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 책의 마지막에는 "해제"가 수록되어 있다.

저자는 미국의 상황을 인용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 대입해 볼 수 있는 상황이 많다. 동시대를 살고 있고 동일한 문제를 안고 있다. 과거사 청산의 문제로 인해 동일 세대간에도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30년 혹은 70년이 지난 사건을 놓고도 입장이 다르다. 포스트트루스의 세상에 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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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사의 여왕 백 번째 여왕 시리즈 4
에밀리 킹 지음, 윤동준 옮김 / 에이치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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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1. 읽기 전에

백번째 여왕 시리즈를 읽기 전에 심취해서 봤던 시리즈물은 '헝거게임'이었다.

책을 접했을 때 이미 완간되어 있었기에 다음 권이 언제나오나 목 메면서 기다리지 않아서 좋았다.

이 말을 꺼내는 이유는 백번째 여왕 시리즈 역시 이제 완간이 되었기에 처음 접하는 독자도 완간을 기다리지 않아도 좋다는 말을 하고싶어서이다.

시리즈 물의 처음부터 읽지 않고 2권이나 3권을 먼저 읽는 습관이 있다. 처음은 이야기의 전개가 미흡할 것 같고, 마지막 권은 갈무리하는 내용이라 크게 구미가 당기지 않을 수도 있다. 좀 엉뚱하지만 시리즈물의 허리가 되는 부분을 읽다보면 이야기의 초입을 상상할 수 있고, 마무리에 대한 기대를 안고 다음권을 읽을지 여기서 그만 둘지 결정할 수 있어 좋다.

스포에 민감하지 않으면 어느 권을 먼저 읽더라도 이야기의 전개를 따라가기 어렵지 않다는 말을 덧붙이고 싶다.

전자책으로도 전권 출간됨.

2. 감상평

(1) 전사의 여왕의 제1화자 "칼린다 "

시대의 흐름에 따른 것인지 시대적인 배경과는 관계 없이 주인공 칼린다는 주체적인 여성이다.

[신을 섬기고 신이 실제 존재하는 세계관을 살면서 "운명을 결정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예요."(13쪽)라는 말을 할 수 있다는 것. 단적인 예이다.]

남성 캐릭터의 경우 본인의 지위나 행동의 여파를 걱정해 우유부단한 태도를 보이거나 적극적으로 나아가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데븐'이나 '아스윈' 둘 다), 칼린다는 자신의 순간순간의 감정에 충실한 편이다.

애정표현 역시 능동적이고 자신의 사람을 찾기 위해 말 그대로 저승까지 갈 수 있는 사람이다.

본인의 선택이 아닌 타의에 의해 경쟁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회를 거듭할 수록 능력을 각성하여 정점에 서게 된다.

각 권의 표지에 그려진 그녀(칼린다) 모습을 미루어 능력치의 변화를 짐작할 수 있다.

 

기본적으로 표지가 너무 이쁘다. 소장하고 싶은 욕구가 생긴다면 표지 그림의 지분이 80% 정도는 차지할 듯.

본인이 아닌 타인의 선택으로 인해 토너먼트에 참여하게 되었으나, 매회 성장을 거듭하면서 정점에 서게 된다.

그 정점이란 것이 누군가의 왕비 자리였으나, 정작 그 자리에 오른 칼린다가 선택한 사람은 왕이나 왕자가 아니라 자신을 지근거리에서 지켜주는 일종의 호위무사 '데븐'이다.

칼린다가 싸워야 하는 것은 비단 눈에 보이는 적들이 아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여정 또한 험난했다. X맨 시리즈의 그것을 연상하게 만드는 장면도 요소요소 보인다. 정체성을 확인하고 능력을 끌어내는 과정, 대중에게 인정받는 과정 역시 극적이다.

헝거게임과 테스팅 등을 통해 생존게임에 대해 어느 정도 익숙해져 있지만, 연령대를 높이고 성별에 차이를 두면서 차별화에 성공했다. 신체의 완전성을 훼손하면서까지 만들어낸 캐릭터라니... 뭔가 상상을 뛰어넘는다.

(2) 전사의 여왕의 제2화자 아스윈

아스윈 역시 시대를 앞서간 사람의 전형으로 보여진다.

천상천하 유아독존형 '왕'이었던 선대에 이은 '왕자'의 성장기

"나는 백성들이 의견을 교환하고 해결책을 찾는 과정에 개입하고 싶지 않습니다. 토론을 통해 이상적인 해결책을 찾아낼 수 있는 지성 속에서 나라가 올바르게 성장할 수 있습니다."(109쪽)

라는 대사가 말해주듯 '이상주의자'이다.

책 읽기를 좋아하고 사람에 대한 기본적인 믿음이 있지만, 어딘가 유약하다.

그런 인물이 역경을 헤쳐나가면서 점차 왕이 되어간다.

정략결혼의 대상으로만 생각했던 상대가 마음에 들어오다 위기를 겪고 진정한 사랑임을 깨닫게 되는 과정도 흥미롭게 그려진다.

이번 권에서는 '아스윈'에 대해 주목하면서 읽었다.

뭔가 낯간지러운 대사가 이토록 어울릴 줄은 몰랐는데. 샌님이 세상 밖으로 나와 단단해진 느낌이다.

3. 시리즈가 끝이 났다니 뭔가 아쉽다. '저자의 말' 혹은 '옮긴이'의 말이 실려있다면 조금쯤은 달랠 수 있을텐데.

아스윈이 만들어갈 세상은 어떤 세상일지, 가미와 그 후로 어떻게 지낼지,

칼린다와 데븐이 소박하게 살아갈 수 있을지 아니면 다른 곳을 찾아 떠나게 될지 , 데븐이 자신의 새로운 정체성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속으로 그려볼 수 밖에는 없겠다.

뭔가가 더 있을 것 같다. 분명...

[ 이 리뷰는 에이치 출판사 리뷰단으로 선정되어 도서를 제공받고 작성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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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어타운 베어타운 3부작 1
프레드릭 배크만 지음, 이은선 옮김 / 다산책방 / 2018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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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로서 늘 새로운 작가와 작품에 목말라 있다.

'우리와 당신들'을 읽고 나니 전편인 '베어타운'에 저절로 손이 간다.

두꺼움을 자랑하는 책. '우리와 당신들'은 전자책으로 읽었는데, 책을 손에 쥐고 한장 한장 읽어내려가는 게

뭔가 조심스러운 일을 은밀하게 처리하는 듯 하다.

권수가 많은 만화책의 경우, 1권부터 읽지 않고 중간부터 읽어보는 습관 아닌 습관이 있다.

후편을 먼저 읽었으니 그 전에 어떤 일이 생겨서 결과와 연결이 되는지 연상을 하면서 읽다보면 어느샌가

전편의 내용은 확인하는 의미로 보게 된다.

'벤이'가 느끼는 상실감이 이런 거였구나.

'케빈'의 자리가 이런 거였구나. 둘 간의 관계는 이렇게 형성되었고, 그래서 '벤이'가 그럴 수 밖에 없었구나.

그 일이 있기 전 '마야'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아맛'과 '사키'간의 우정은 이런 사소한 배려에서 시작했고, 균열이 갔지만 결국에는 서로를 받아들여주는구나.

'아맛'과 '보보'의 케미가 이렇게 탄생한 거구나(묘한 동질감을 느끼는 부분 ㅎ)

그리고 과거 사랑했던 사람을 잃은 후의 빈자리가 이렇게 채워진 거였구나.

하나하나 되짚어가면서 읽게 된다.

'우리와 당신들' 읽을 땐 눈에 들어오지 않았던 부분이 들어온다. '수네', '페테르', '다비드'의 관계.

목표가 같음에도 결론이 다른 두 사람. 어른이어야 하는 입장.

스타플레이어가 빠진 팀이 어떻게 되었는지, 그 빈자리를 어떻게 채워냈는지.

어떻게 그들에게 상처가 되었는지, 그리고 이후 어떻게 상처난 자리를 메워갔는지.

'우리와 당신들'에는 '테오'가 등장하면서 '정치'적인 면이 더 들어갔지만. 어른들의 관점이 부각된 것이라면 '베어타운'은 아이들의 이야기에 집중해서 묘사한다.

여전히 '베어타운'에도 밑줄 그어놓은 부분이 많다.

작가에 관심을 두다보니. 출간된 책이 꽤나 많았다. 그 중에서도 그 유명한 '오베라는 남자'가 저자의 작품이었다니.

하나하나 찾아보고 흔적 남기는 중이다.

리디셀렉트를 뒤져보니 '오베라는 남자', '하루하루가 이별의 날', '할머니가 미안하다고 전해달랬어요.', '브릿마리, 여기 있다.'가 나오더라.

한동안은 빠져있을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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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은 설워할 봄이라도 있었겠지만 - 제주4.3, 당신에게 건네는 일흔한 번째의 봄
허영선 지음 / 마음의숲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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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글을 적어야 하는데 한글자 적기가 버겁다.

책이 담고 있는 수많은 사연들이 안타까워서이고, 내가 감히 책의 내용을 정확히 남길 수 있을까 저어되는 때문이도 하다.

실제 있었던 일을 다룬 글들은 그 자체의 힘이 있다. 새삼 인용하는 것이 쑥쓰러울 정도로 대중화된 말을 빌리자면 진실은 너무도 힘이 세 아무리 막으려 해도 언젠가는 세상에 드러난다.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71주기. 혹자는 이렇게 말한다. 그만큼 했으면 이제 그만할 때도 되지 않았냐고.

유독 이런 프레임을 씌워 보도되는 것은 "국가의 책임"이 거론되는 사건들이다.

오랜시간이 지났음에도 여전히 "진실규명"을 외쳐야 하는 사건들이다.

하나 둘. 생존자가 사라져가는 사건들이다.

누구하나 "내가 했소" 하고 나서지 않는 사건들이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났어도 'ing'인 사건들.

이 책은 제주 4.3을 말하면서 비슷한 아픔을 겪고 있는 5.18.을 위로한다.

더 오래 아파왔고 지금도 아파하는 사람이 그보다 아픔의 시간이 덜한 사람에게 건네는 위로.

일흔 살 먹은 제주4.3 역시 진행형이다. 아직도 입을 닫은 대목이 있다. 눈물이 마르지 않는다. 그보다 훨씬 젊은 광주는 어찌 마를 것인가. 분명한 것은 이렇게 진실은 반드시 밝혀진다는 것이다. 그 정의의 시간이 서서히 도래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144쪽 울지 말아요 광주여! 중에서

그리고 누군가는 4. 16.을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얼마 전에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삼풍백화점 붕괴 사건의 생존자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남긴 말.

말로 써내려가기 버거운 위로.

제주가 광주에게 건내는 위로가 그렇다.

음... 이 책은 이유를 찾지 않고. 그냥. 읽어봤으면 한다.

오랜 세월 인고의 시간을 견뎌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말, 어른의 말을 마지막으로 끝 맺고자 한다.

"살암시민 살아진다"

살다보면 살아진다는 말이다. 그러고보니 이 말 어디서 들어본 듯 하다.

뮤지컬 서편제 중 눈을 잃은 송화가 서럽게 부르던 노래 가사. 살다보면 살아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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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아이 1
야쿠마루 가쿠 지음, 이정민 옮김 / 몽실북스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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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킬 수 없는 약속으로 익숙한 작가의 신작이다.

밀리의 서재, 리디셀렉트에 전부 나와 있어서 감사한 마음으로 읽어봤다.

표지의 그림이 서정적이고 심심해보이지만 실제 내용은 미스터리에 가깝다. 그런 의미에서 조금은

속았다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여러 건의 범죄가 나오지만 사건 그 자체가 부각되기 보다는 '마치다'라는

주인공과 그 주변인물, 그로인해 선한 영향력을 받고 마지막에 가서는 변화하는 삶을 보여주는 성장스토리이기도 하다.

역시 분량이 상당하다. 작가의 전작을 읽고 조금은 익숙해졌다고 생각했으나, 이번에는 두 권이라니 ㄷㄷ

압도적인 분량의 책임에도 술술 잘 익힌다. 책장을 덮고 나면 뭔가 개운한 기분이 들기도 하고.

'신의 아이'라고 하면 뭔가 종교적인 색채가 묻어나기도 하지만. 제목과 내용의 상관성은 두 번째 권을 읽고 나서야

짐작하게 된다.

리뷰를 남긴건 '침묵을 삼킨 아이'에 이어 두번째이다. 얼마 전에 작가의 방한 기사를 본 기억이 있다.

그러고 보니 바로 엊그제 '미나토 가나에' 작가님이 방한했는데. 요즘 들어 일본작가들과의 교류가 활발해진 것 같다. 아무래도 일본소설이 강세이다보니 그런가보다.

책의 내용에 대해서는 더 덧붙인 글을 남겨두고 싶어진다. 그치만 지금은 읽었다는 흔적만 ...

요즘.. 뭔가 소진된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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