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묘한 러브레터
야도노 카호루 지음, 김소연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1. 출판사의 사전 독서단 기획을 통해 탄생한 책

북딩3기에 참여하면서 매번 다양한 책을 받아보고 있습니다. 서평단으로 활동하는 것이 이렇게 즐거울 줄 몰랐습니다. 정해진 기간 내에 서평을 올려야 하는데, 일반도서의 경우 신청자 중 추첨을 통해서. 특별도서의 경우 신청인 모두가 책을 받아볼 수 있는데 보통 받은 날로부터 2주 정도의 서평기간이 주어집니다.

서평단 활동에는 '사전독서단'도 있었어요. 블라인드 시사회의 도서버전이라고 할까요? ㅎ

저는 참여를 하지 못했지만, 다녀오신 분들이 남긴 후기를 보면 정말 좋은 경험이 된 것 같습니다.

책의 마지막 장에 '사전독서단'으로 이름까지 들어간 것을 보면 책에 대한 소장가치가 상당할 듯.

부럽습니다.

2. 아담한 사이즈. 이야기가 돋보이는 책. 여백의 미가 드러나는 수묵화를 보는 듯한 구성.

편지 형식으로 전개되는 소설은 고백으로 유명한 미나토 가나에 작가의 작품을 통해서 익숙해졌습니다.

그러나 이 책은 스피드하게 흘러갑니다.

2년 동안 23편의 메시지(? 메일)을 주고 받습니다. 인터넷을 시작한 지 얼마 안된다는 남자. 페이스북을 통해 우연히 여자를 발견하고 메시지를 보냈다는데... 과거에 인연이 있었던 두 사람. 남자는 우연히 찾은 것이 맞을까요?

두 사람의 인연은 보통인연이 아니었습니다. 이제와서(30년 정도 후) 찾는 남자. 그리고 끄집어내는 과거.

마치 어제처럼 생생하게 남아있는 기억. 에피소드 들.

남자는 왜 여자에게 이렇게 집요하게 연락을 하는 걸까. 여자는 왜 이렇게까지 상세한 이야기에 대한 답장을 하는 것일까. 과거 연락이 끊겼던 공백기에 어떤 일이 있었을까.

이야기 줄거리를 상세하게 적지 못하는 이유는 이 책의 마지막 장을 넘기면서 느꼈던 전율의 경험을 빼앗고 싶지 않기 때문입니다.

과거 공백기와 남자의 심리를 상상하면서 읽다보면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습니다. 인터넷이 발달하고 사람의 수명이 늘어났나는 것이 무서워졌습니다.

소설이 주는 즐거움은 단연 상상력 아닐까요?

영상으로 만들었을 때보다 읽은 다음에 무심코 떠올린 생각으로 소름이 돋는 경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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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양형 이유 - 책망과 옹호, 유죄와 무죄 사이에 서 있는 한 판사의 기록
박주영 지음 / 김영사 / 2019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1. 표지에 대한 제언



이 책. 상반신이 아니라 전신을 표지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앞표지에 법대와 법복을 입은 상반신이 드러나게 정면에서 찍은 사진 혹은 그림을,

뒷표지에 법대 뒤에서 판사의 전신이 드러나게 찍은 사진을 비교되게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혹시라도 많이 팔려서 리커버판을 낸다면 부디 표지만은 바꿔주셨으면.



2. 법정에 들고나갈 때, 시보시절 경험(책 내용과 무관하다), 책의 리뷰를 하기 전 소회



법정에 들고날때마다 법대에 앉아계신 판사님께 인사를 한다. 일종의 예절이라 배웠다.

우리쪽 의뢰인의 입장이 간절하면 그만큼 판사님에게 기대는 마음이 더 생긴다.



서울고등법원 시보를 한 때였다. 주로 민사사건 재판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판사실에 들어가 본 몇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아무일 없이 평온하고 무료하게 느껴지던 시간에 짖눌려 있었다.

항소심이다보니 대부분의 사건기록은 두꺼워질대로 두꺼워진 나머지 몇 개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고,

골무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록을 넘기는 일도 버거웠다. 쉽사리 나오지 않을 결론이라 장고하게 되지만, 누군가는 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판사이다.

시보때 민사부 재판장이었던 분은 작년에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 형사사건을 맡았다. 얼굴 한 번 뵈었다는게 이상하게 친근감이 들었다. 판결의 결론에 신뢰감이 들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들어 나온 '검사내전'은 어느새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리커버판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았다. 얼마 안 있으면 드라마로도 나올 예정이다.



변호사와 검사가 주목받는 반면, 판사의 경우 최근에서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친애하는 판사님께', '미스 함무라비' 정도. 사건에 따라 그 정도의 마음을 쓴다면 법대에서 오랜시간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업무량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현실을 비추어 보면 그 드라마들의 장르는 분명 '판타지'에 속할 것 같다.



간혹 소설 쓰는 판사님들 책을 접한다. 서울남부법원에 재직 중인 판사님 법정에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역시 글로 하시는 말씀과 재판진행은 별개더라. 모든 사건에 같은 정도의 노력을 쏟을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인지 그렇게 큰 불만은 생기지 않았다.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 들었던 생각 역시 '뭐, 다를게 있을까' 정도였다.



3. 이 책을 읽고



그런데, 구성이 특이하다.



1장 나는 개가 아니다

2장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3장 부탁받은 정의

라니....



실제 판결을 내린 사건의 사실관계를 적시하고 그 이후 사건의 경과를 서술하면서 마지막에 실제로 내린 양형과 그 이유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양형이유 부분은 사실 정형화되어 있으나, 이 책의 저자는 상당한 고민을 한 후에 그 고민의 흔적을 양형이유에 공들여 적시하는 것 같다. 살면서 언젠가는 받아보고 싶은 판결문이다. 가끔 잘 쓰여진 판결문은 보관해두고 읽어보곤 한다.



하긴 이 정도로 본인의 직업과 법정에서 하는 일을 묘사하는 분이라면 판결문도 남다를 수 밖엔 없을 듯 하다.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형사사건에서는 한 인간의 자유를 지지해준 법적 근거마저 해체시킨다. 재산을 나누고, 아이도 나눈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숩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관은 굳어버린 사랑을 발라낸 다음 가정을 이분도체, 사분도체로 잘라내고 무두질한다. 법은 날카롭게 벼린 칼이고, 법관은 발골사다.

- 이런 비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살다 보면 모든 일에 변곡점이 찾아온다. 시대적 소명일 수도 있고 개인적 변화일 수도 있다. 변곡점의 세찬 파동이 인생을 드높게 쏘아올릴지, 바닥으로 처박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이라는 함수의 변곡을 예감하고, 그 파고에 기꺼이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수평 그래프로 사는 삶이 평온한 것 같지만 어쩌면 그런 삶은 삐 소리와 함께 벌써 생의 종지부를 찍은 상태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은 고유의 파동이 있기 때문이다.







후회로 남은 결정은 판사를 놓아주는 법이 없다. 변제가 불가능한 채무이자 지울 수 없는 화인이다.

- 간혹 판사님들께 질문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는데, 위의 문장과 아래에서 인용한 부분은 그 주제에 대한 완벽한 답인 듯 하다. "판사님은 본인이 내린 판결에 대해 후회하신 적 있으신가요?"



재판의 당사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건 재판장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재판 진행이나 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복기하고 또 복기한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이런 결과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정년을 앞둔 노법관은 법정에 들어가는 게 두렵다고 고백했다. 기자를 상대하는 나 역시 다리가 후들거렸다. 큰 문제 없이 진행된 재판이었다고 몇 번을 되짚어 자위했음에도 자책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 후 판결문에 적시된 그 문장이 나오기까지의 고민과 노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 계기가 된 것 같다.

요즘 이례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판사님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들과 이 책의 저자는 출신이 다를 것이다(저자는 '향판'이자 '출포판'이라 자칭한다.). 그러나 입을 열기 시작한 그 분들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변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적어도 자신들이 단죄?했던 기준이나 가치에 부응하는 선이었으면 한다.



오랜만에 군더더기 없는 문장의 글을 읽었다. 그리고 더 없이 따뜻한 판결문을 읽어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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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표지에 대한 제언



이 책. 상반신이 아니라 전신을 표지로 했으면 어땠을까 싶다.

앞표지에 법대와 법복을 입은 상반신이 드러나게 정면에서 찍은 사진 혹은 그림을,

뒷표지에 법대 뒤에서 판사의 전신이 드러나게 찍은 사진을 비교되게 표현하면 좋을 것 같다.

혹시라도 많이 팔려서 리커버판을 낸다면 부디 표지만은 바꿔주셨으면.



2. 법정에 들고나갈 때, 시보시절 경험(책 내용과 무관하다), 책의 리뷰를 하기 전 소회



법정에 들고날때마다 법대에 앉아계신 판사님께 인사를 한다. 일종의 예절이라 배웠다.

우리쪽 의뢰인의 입장이 간절하면 그만큼 판사님에게 기대는 마음이 더 생긴다.



서울고등법원 시보를 한 때였다. 주로 민사사건 재판부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냈다. 판사실에 들어가 본 몇 안되는 시간이었지만, 아무일 없이 평온하고 무료하게 느껴지던 시간에 짖눌려 있었다.

항소심이다보니 대부분의 사건기록은 두꺼워질대로 두꺼워진 나머지 몇 개의 책으로 만들어진 것들이었고,

골무를 사용하지 않으면 기록을 넘기는 일도 버거웠다. 쉽사리 나오지 않을 결론이라 장고하게 되지만, 누군가는 합당한 판단을 내려야 하고 그 누군가는 다른 누구도 아닌 판사이다.

시보때 민사부 재판장이었던 분은 작년에 언론에 이름이 자주 오르내린 형사사건을 맡았다. 얼굴 한 번 뵈었다는게 이상하게 친근감이 들었다. 판결의 결론에 신뢰감이 들었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최근 들어 나온 '검사내전'은 어느새 베스트셀러에 등극하고 리커버판이 나올 정도로 주목받았다. 얼마 안 있으면 드라마로도 나올 예정이다.



변호사와 검사가 주목받는 반면, 판사의 경우 최근에서야 드라마의 주인공으로 등장했다.

'친애하는 판사님께', '미스 함무라비' 정도. 사건에 따라 그 정도의 마음을 쓴다면 법대에서 오랜시간 버티지 못할 것 같다. 업무량을 따라가기에도 벅찬 현실을 비추어 보면 그 드라마들의 장르는 분명 '판타지'에 속할 것 같다.



간혹 소설 쓰는 판사님들 책을 접한다. 서울남부법원에 재직 중인 판사님 법정에 들어가 보기도 했는데, 역시 글로 하시는 말씀과 재판진행은 별개더라. 모든 사건에 같은 정도의 노력을 쏟을 수는 없다는 점을 감안해서인지 그렇게 큰 불만은 생기지 않았다. 역시.



이 책을 읽기 전에 들었던 생각 역시 '뭐, 다를게 있을까' 정도였다.



3. 이 책을 읽고



그런데, 구성이 특이하다.



1장 나는 개가 아니다

2장 우리를 슬프게 하는 것들

3장 부탁받은 정의

라니....



실제 판결을 내린 사건의 사실관계를 적시하고 그 이후 사건의 경과를 서술하면서 마지막에 실제로 내린 양형과 그 이유에 대해 서술하는 방식으로 쓰였다.

양형이유 부분은 사실 정형화되어 있으나, 이 책의 저자는 상당한 고민을 한 후에 그 고민의 흔적을 양형이유에 공들여 적시하는 것 같다. 살면서 언젠가는 받아보고 싶은 판결문이다. 가끔 잘 쓰여진 판결문은 보관해두고 읽어보곤 한다.



하긴 이 정도로 본인의 직업과 법정에서 하는 일을 묘사하는 분이라면 판결문도 남다를 수 밖엔 없을 듯 하다.



법정은 모든 아름다운 구축물을 해체하는 곳이다. 사랑은 맨 먼저 해체되고, 결국 가정도 해체된다. 형사사건에서는 한 인간의 자유를 지지해준 법적 근거마저 해체시킨다. 재산을 나누고, 아이도 나눈다. 사랑의 잔해를 뒤적이고 수숩하다 보면 법정이 도축장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법관은 굳어버린 사랑을 발라낸 다음 가정을 이분도체, 사분도체로 잘라내고 무두질한다. 법은 날카롭게 벼린 칼이고, 법관은 발골사다.

- 이런 비유는 들어본 적이 없다.





살다 보면 모든 일에 변곡점이 찾아온다. 시대적 소명일 수도 있고 개인적 변화일 수도 있다. 변곡점의 세찬 파동이 인생을 드높게 쏘아올릴지, 바닥으로 처박을지는 알 수 없지만, 분명한 것은 인생이라는 함수의 변곡을 예감하고, 그 파고에 기꺼이 몸을 맡겨야 한다는 것이다. 수평 그래프로 사는 삶이 평온한 것 같지만 어쩌면 그런 삶은 삐 소리와 함께 벌써 생의 종지부를 찍은 상태인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것은 고유의 파동이 있기 때문이다.







후회로 남은 결정은 판사를 놓아주는 법이 없다. 변제가 불가능한 채무이자 지울 수 없는 화인이다.

- 간혹 판사님들께 질문하고 싶은 주제가 있었는데, 위의 문장과 아래에서 인용한 부분은 그 주제에 대한 완벽한 답인 듯 하다. "판사님은 본인이 내린 판결에 대해 후회하신 적 있으신가요?"



재판의 당사자가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는 건 재판장으로서 가장 견디기 힘든 순간이다. 재판 진행이나 결과에 어떤 문제가 있었는지 복기하고 또 복기한다. 이랬더라면, 저랬더라면 이런 결과를 막을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밀려든다. 불면의 밤이 이어진다. 식사도 제대로 할 수 없다. 정년을 앞둔 노법관은 법정에 들어가는 게 두렵다고 고백했다. 기자를 상대하는 나 역시 다리가 후들거렸다. 큰 문제 없이 진행된 재판이었다고 몇 번을 되짚어 자위했음에도 자책감을 피할 수는 없었다. 여전히 나는 그 사건의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 책을 읽어본 후 판결문에 적시된 그 문장이 나오기까지의 고민과 노고에 대해 다시금 생각해본 계기가 된 것 같다.

요즘 이례적인 일들이 많이 일어난다. 판사님들이 입을 열기 시작한 것이다. 그분들과 이 책의 저자는 출신이 다를 것이다(저자는 '향판'이자 '출포판'이라 자칭한다.). 그러나 입을 열기 시작한 그 분들이 자신의 과오에 대한 변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었으면 한다. 적어도 자신들이 단죄?했던 기준이나 가치에 부응하는 선이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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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년정치는 왜 퇴보하는가 - 청년세대의 정치무관심, 그리고 기성세대의 정치과잉
안성민 지음 / 디벨롭어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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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삼십대 청년들에 대해 언론이 주목하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페미니즘과 관련된 남,녀의 대립구도와 상대적 박탈감을 조명하는데 집중되는데 아쉬움이 있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경우 잠시동안 청년들이 주목받는 때가 있다. 취업률에 대한 통계를 인용할 때.

그리고 선거 후 투표율에 대한 언급이 있을 때이다.

특별한 이슈가 있는 경우란 가령 대통령이 언급을 하는 경우이다. "90년생이 온다"라는 책을 추천하셨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기사가 난 시점이 여름휴가를 앞두고 있는 시점이었고, 즉 이 책을 완독하기 전이었다는 점이 무척이나 아쉽다.

"90년생이 온다"가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관리자나 어른들이 신입사원과 각을 세우지 않고 일을 하는 방법이나 그들의 사고방식을 따라가기 위해 읽어야 할 필독서라면,

이 책은 정당정치를 하고 있는 정치인과 이제는 기득권이 되어버린 구386들이 읽어야 할 필독서이기 때문이다.

누군가가 말했다. '정치는 생활'이라고.

그런데 생활. 말 그대로 살아가는 것의 버거움을 느끼고 있는 20, 30 청년들에게 정치에 관심을 가지라는 단순한 말을 할 수 있는 것일까...

 

정치권은 청년들의 진출기회를 실질적으로 제공하고 있는가.

현재 국회에 있는 청년정치인은 과연 청년들의 대표자로 볼 수 있는가?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이 책은 구체적인 수치와 표로 알려준다.

그렇다면, 청년들의 정치권 진출을 위해 각 정당들은 실제로 노력하고는 있는가.

한 정당의 대표가 청년들에게 의무적으로 발언을 하도록 강요한 기사를 보아도 기존 정치인들이 청년을 어떻게 대하는지 가늠해볼 수 있다. 답은 "아니올시다"이다.

그런데 혹시 이거 아는가. "40대 기수론"이 처음 등장한 때가 1970년대였음을.

정치란 밑바닥부터 경험을 쌓아올려 역량을 키운 다음에 도전해야 하는 것일까?

아닌 것 같다. 과연 자격이란 무엇일까?

70년대에 40대 기수론이 등장했다면 시대의 흐름과 교육수준의 변화 등을 반영하면 30대 기수론은 나오지 못할 이유가 있을까?

실제로 프랑스의 경우를 우리는 보아 알고 있다. 실제 사례가 있다면, 단지 바다 건너 먼 나라의 일이라 치부하고 말 이유가 없다.

현재를 살고 있는 우리들은 매일을 살아내면서 엄청난 변화를 마주 하고 있다. 10년이면 강산이 변한다고 하는데, 요즘 10년이면 못해도 3번은 바뀌는 것 같다. 변화에 적응할 수 있는 능력은 기존 정치인들보다 요즘 젊은이들이 훨씬 낫지 않을까? 당장 스마트폰으로 할 수 있는 일의 범위가 비교불가할 정도로 넓다. 단지 역량을 펼칠 판이 마련되지 않았을 뿐이다.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날들이 많은 이는 결국 청년들이다. 35.7%의 유권자 수를 가졌음에도 정치지분은 겨우 1%만을 가진 청년들이고 언젠가는 기성세대가 되겠지만 지금 정치에 관심을 갖고 도전하지 않는다면 결국은 지금처럼 미미한 수준에만 그치지 않을까?

저자는 말한다.

“무슨 일이든지 실패하더라도 실험을 해야 새로운 결과를 얻을 수 있다. 청년 정치는 어찌 보면 짧디 짧은 한국의 민주 정치사에서 꾸준히 해야 하는 실험과 같은 존재일 수 있다. 우리는 아직 실험을 제대로 몇 번 해보지도 못했다. 이미 실험 결과를 예단하고 냉소적으로 보기에는 일러도 한참 이르다”

선거가 내년으로 다가온 이때.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관심을 갖는다면 적어도 우리 청년을 위한 정책이 어떤 것인지, 단지 입바른 소리일 뿐인지 실제 가능한 공약인지 여부 등은 쉽게 알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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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단호하게 살기로 했다 - 일, 관계, 인생 앞에 당당해지는 심리 기술
옌스 바이드너 지음, 장혜경 옮김 / 다산북스 / 2019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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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조용히 묵묵히 내 할 일을 하고 있으면 언젠가는 인정받겠지. 그래 분명 누군가는 나의 진가를 알아봐줄거야.

그렇지 않다는 것(스스로 존재감을 어필하지 않아도 누군가 알아주는 일은 없음. 특히 나에게는)을 알게되기까지의 시간은 얼마 걸리지 않았다. 사실 상당한 시간이 걸렸는지 모르겠다. 일단 적어도 묵묵하게 일을 한다는 인식을 남에게 주기까지에는 일정량의 시간은 필요한 것이니까(이 부분도 사실 인간승리 수준의 합리화가 아닐까).

더 이상 누군가 알아주길 기다고만 있을 수는 없다. 이것은 직장생활이든 짝사랑이든 공통되는 점인 듯 싶다.

이제는 끝낼 때가 되었다.

많은 구성원들이 경쟁하는 시스템에서는 특히 적극적으로 어필할 필요가 있다.

요즘 '90년생들이 온다'와 비슷한 책들(공교롭게도 같은 컨셉의 책들이 요즘 자주 출간되는 듯 하다)에서 90년대생들의 특징을 이야기하면서 그 바로 위 선임의 지위에 있는 80년대생의 특징 역시 서술하는데

읽다보면 공감되는 부분이 많았다. 그 전 세대처럼 성장의 과실을 특별히 누려보지 않았지만 위계질서를 무의식적으로 존중하는 끼인 세대. 그래서 신입들에게 꼰대 소리 들을까 겁내하고 선임들의 지시사항을 어떻게 전달할지 고민해야 하는.

이 책은 성과를 인정받고 동료들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아야 하고 카리스마를 발휘해내야 하는 직장인들이 읽으면 좋은 책인 듯 싶다.

조금은 웃기지만 마냥 웃고 넘어갈수만은 없었던 부분은 "언제 웃고 언제 화낼 것인가"라는 챕터.

이 제목. 이 제목을 보고 난 이후 이 책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졌다.

8단계, 번외편으로 0단계를 나누어 서술하는 이 책은 순서대로 읽지 않아도 지장이 없으니

곁에 두고 필요한 부분을 발췌하여 읽는 것도 방법이다.

이 책이 강조하는 부분은 아래와 같다.

80퍼센트의 친절함에 20퍼센트의 단호함을 발휘하라. 희생양이 되지 말라.

역동적이되 남의 마음을 헤아릴 줄도 알고 품위가 넘치는 사람이 되어라.

실력을 갖추고 있으되 직장 내에서 늘 희생양의 위치에 있는 누군가가 자신의 가치를 인정받기를 희망하면서

이 책의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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