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얘기를 계속해서 반복하는 것 같지만 실상은 오해와 오류를 남기지 않기 위해 친절하게 다면적으로 설명하는 책이다.
인내심을 갖고 읽으면 좋을 책이다.
거침없이 읽다가는 놓칠만한 관점들이 종종 눈에 띈다.
2권으로 넘어가면서 잠시 나눌 본문.(요약)
기독교 신자는 점진적으로 성장해간다.
비참한 피조물인 우리는 그리스도를 조금씩 배운다.
이 점은 마치 배율이 높은 망원경을 통해서 달을 관찰할 때와 같다.
그리스도를 알아가는 방식도 그와 같다.
한편 믿음의 시각은 비록 이성과 결부되지만 직관적이다.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을 다른 것들에서 긁어모으지 않는다.
그리스도 자신을 보는 것이다.
이성적 지식은 여기저기에서 긁어모은 지식이다.
믿음의 지식은 어떤 것을 그 자체로 보는 지식, 그리스도를 그분 자체로 보는 지식이다.
믿음의 지식은 오성이 본성적으로 가지고 있거나 개선할 수 있거나 높이 끌어올려도 여전히 자연적인 그 한계를 뛰어넘는 지식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믿음의 빛은 이성을 파괴하지 않는다.
믿음의 빛은 이성을 활용한다.
이성을 복속시키고 회복해 주고 바로잡아 주고 난 뒤에 사용한다.
마찬가지로 성령 하나님은 그리스도에 대한 이성적 담론과 언어적 묘사 전체를 활용하고 문자를 사용한다.
하나님에 대한 영적 생각들을, 문자가 사람에게 조금도 제시해 주지 못하는 것들을 전달해 준다.
믿음은 말씀을 들음으로 들을 때에 일어난다. 설교자가 말씀에서 이끌어 내는 담론이 이성적이 되면 될수록, 말씀의 의미를 이성적으로 펼치면 펼칠수록 더 좋다.
인간의 지성에 적합하기 때문이다.
성령은 이성을 사용하기도 하지만, 그 이성을 전적으로 초월하는 빛을 전달해 준다.
말씀은 그 빛 속에서 이성과 조화를 이룬다.
성령은 이성을 파괴시키지 않고 사용하며 복속시킨다.
그리하여 믿음은 영적 지식이다.
이성에 부합하는 것들을 이성의 지각을 뛰어넘어서 보는시각이요 확실한 지식이다.
이 지식을 확신이라 한다.
충만한 확신, 이해의 충만한 확신, 풍성하고 충만한 확신이라 부른다.
그리고는 깨달음이라고 부른다.
지식을 확실한 것으로 만들어 주기에 충분한 말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확신은 믿음의 본질적 요소는 아니다.
개인의 확신의 적용과 행위에 따라 다르다.
신자가 믿는 대상의 진실성에 대한 확신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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