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의 본질을 규명하는 소설이란다. 악마란 어떤 존재인가.
"악마란 인간을 미치게 한다거나 기괴한 행동을 하게 한다거나 하는 일은 거의 없을 뿐 아니라 손톱 발톱이 긴, 쥐처럼 생긴 괴물도 아니요, 인간을 소름끼치게 할 만큼 보기 흉하고 징그러운 꼴을 하고 있어 인간들로 하여금 뒷걸음질을 치게 하는 것도 아니다."
"악마는 인간들에게 스며들 때, 먼지가 방에 아무도 모르는 사이에 쌓이는 것처럼 당사자도 모르는 사이에 가만히 그 사람의 마음속에 스며든다."
"결국, 악마의 가장 큰 궤계는 자기가 존재하고 있지 않은 것처럼 인간들이 생각하도록 하는 것이다."
악마의 종이 되면, 무감동, 무감각해진다. 희노애락도 없다. 마음이 바싹 마른다. 소설에 등장하는 여의사는 악마의 종인 셈이다.
"고교생 시절부터 그녀는 자신의 마음을 생각할 댄, 한 방울의 물기도 윤기도 없는 사막과도 같은 지면이 머리에 떠올랐다. 고교생 시절 이래 그녀는 어떠한 일에도 거의 감동하는 일이 없었다. 일시적인 기쁨은 있다 해도 정말로 마음을 움직일 만한 일은 경험치 못했다. 다른 친구들이 가수나 남자 친구에게 열을 올리고 있을 때, 그녀는 그것을 한편으로는 부럽게 생각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왜 그렇게 쉽사리 간단하게 도취할 수 있는가가 이상했다. 바짝 말라버린 마음을 고치기 위하여 책을 읽었다. 그리고 그 책 가운데에서 그녀는 자기의 치료약을 찾아내는 대신, 그녀와 동질의 인간이 묘사되어 있는 작품이 있다는 것을 알고 오히려 깜짝 놀랐다."
"저는 옛날부터 무감동한 여자였어요. 의사가 된 지금은 더욱더 그런 경향이 심해져 가고 있어요. 남이 괴로워하는 것을 봐도, 자신이 어떤 죄를 범해도 아무렇지도 않아요. 자신의 마음이 바삭바삭 마른 땅과 같이 생각되는 때도 있어요.
괴로운가요? 그게.
괴로워요. 자기 자신이 인간이 아닌 것 같은 생각이 들어..... 아니네요. 사실은 별로 괴롭지 않아요. 그런 바싹 말라버린 자신의 마음을 응시하고 있을 뿐이에요. 신부님, 악이란 정말 무엇일까요?
당신은 잘못을 저지르고 있습니다. 양심의 가책을 찾기 위해 악한 짓을 하기보다는 마음의 기쁨을 얻기 위하여 좋은 일을 하시오. 그게 당신의 메마른 마음을 구해낼 수 있는 방법이오.
좋은 일이란 뭔가요?
사랑이오.
저에겐 사랑하는 마음 같은 게 일어나지 않아요.
마음에 일어나지 않더라도 해보는 겁니다. 형식만으로라도 해보는 거요. 형식이 결국 마음을 움직입니다."
신부의 해결책은 아무 소용없다.
언급된 책 중 읽어봐야겠다 싶은 것. 도스토예프스키 <악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