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스토리아 대논쟁 2 - 정의론 & 제도 히스토리아 대논쟁 2
박홍순 글.그림 / 서해문집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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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스토리아 대논쟁'이라는 제목과 '롤스vs노직'과 '겔렌vs아도르노'라는 글씨를 보고 이 책이 각각 두 사람간의 논쟁을 서술한 것이 아니라 마치 두 사람이 실제로 즉석에서 논쟁한 것을 기록한 책이라는 걸 알아봤다. 자칫 딱딱하게 전달될 우려가 있는 근현대 철학을 독자들에게 알기 쉽게 설명한 책이었다.
정의란 무엇인가? 21세기나 되어서 이 단어를 논한다는 것 자체가 상당히 우스운 일일 수 있다. 사전적 정의는 '올바른 도리·바른 의의'로 나와있지만 사회 속에서 인간들끼리 어떻게 하는게 옳은지, 그것도 이 책에서는 정부와 일반 시민들의 관계로 한정짓고 있다. 과연 정부가 어떻게 하는 것이 일반 시민들에게 옳은 일일까? '세상은 참 불공평해. 쟤는 나보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용모 출중하고 머리 좋고, 고생도 안 하고 살고...'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을 것이다. 누구도 자기가 원해서 덜 사는 집에 태어난 것도 아니고 재능을 덜 타고난 것도 아니다. 원래 세상은 불공평하고 그게 자연스러운 법이다. 하지만 이걸 방치하는 것만이 능사일까. 인위적로 평등한 사회를 만들어야 되지 않을까? 물론 사회 구성원들의 능력을 하향 평준화 시키자는 말은 아니다. 태어나면서부터 약자인 사람들이 느끼는 사회적 박탈감, 그들이 어른이 되어서도 박탈감을 느끼지 않도록 '기회'를 많이 제공해야 한다는게 내 생각이다. 교육계에서도 '평범한 학생 10명에게 투자를 할 것인가, 아니면 영재 1명에게 투자를 할 것인가'라는 주장이 논란거리가 되고 있는데 참으로 어려운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평범한 학생에게 투자를 하자니 영재의 재능을 죽이는 결과를 낳게 되고 영재에게 투자를 하자니 10명의 학생들을 소외시키고... 사실, 무척 뛰어난 소수가 다수를 먹여 살리는 주장 역시 틀린 말은 아니다. 이것이 제대로 활용되면 매우 좋겠지만 문제는 '독점'과 권력 남용에 있다. 예를 들어 우리나라는 현재 몇몇의 대기업들이 나라를 먹여살린다고 하는데 이들의 시장 독과점도 심각한 수준이다. 때문에 중소기업들은 점점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는데... 이럴 때는 정부가 나서서 중재해 주어야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못하다. '자유주의'가 시장과 사회에서는 결코 '자유주의'를 잃어가는 때도 있다. 우리는 '똑똑한 사람 한 명이 평범한 사람 스무명을 먹여살린다'라는 극우파들의 감언이설에 항상 솔깃하는 건 아닌지.
그 다음에 나왔던 문제는 '제도'. 일단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국적'이라는 커다란 제도와 호적, 유아, 어린이 등 작은 제도까지 우리는 제도에 꽁꽁 묶여 살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우리는 왜 크고 작은 문제들을 항상 국가 단위로만 생각하는 걸까. 어떤 사람을 소개할 때도 하는 일보단 국적을 먼저 소개하는게 현실이다. 학창시절 교과서에서는 언제나 인간은 불안정한 존재이며 국가와 제도가 있기에 무질서와 혼란 상태를 막을 수 있다고 가르치고 있기에 이 문제에 대해 아무런 생각없이 받아들이고 있었다. 언제부터인가 공권력이 대체 왜 존재하며, 왜 이렇게 사람들을 꽁꽁 옭아매고 있는지 혼란스러(하고 있다)웠다. 생각을 해보자. 국가가 형성되기 전에는 사람들의 생활이 아주 단순하였다. 그러다 상대적으로 완력이 강한 몇몇 남성들이 자신들의 이기심을 목적으로 국가를 만들고 군대를 형성하여 다른 나라를 침략하기 시작하였다.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허울 좋은 감언이설일 뿐이다. 현대에도 자신들의 권력욕을 위해 높은 자리에 오르고 국방력을 높이고, 온갖 쓸데없는 법을 만든다. 그 결과 '제도를 위한 제도', 즉, 제도를 더욱 폐쇄적으로 만들게 하고 구성원들간의 위계질서를 심화시킨다. 
 

겔렌과 아도르노는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완전히 다르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겔렌은 안정성과 실용성을 중시하는 반면 아도르노는 보이지 않는 것을 중요시하는 사람, 즉, 관념론자다. 아도르노의 생각을 나름대로 해석하자면 인간은 이성이라는 도구 덕분에 인간사를 유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인간에게는 추악한 면도 있지만 옳고 그름을 따지는 능력도 있기에 인위적인 제도는 필요악이라고 한다. '절망만이 우릴 구원할 수 있다'라는 그의 주장은 아직 내 머리로는 이해가 잘 가질 않지만 최악의 상황에 직면하는 일이 있더라도 그걸 인간이 스스로 해결해야지만이 앞으로 나아갈 수 있다는 뜻 같다. 우리는 마치 제도에 따르는 것만이 정답인 것처럼 행동하지만 실은 여러 '가능성'을 존중해 주어야 한다는 사실, 그것이 진정 인간을 위한 사회다. 제도와 창의성은 결코 양립할 수 없다. 
 

국내에서 불합리한 제도(결혼, 간통죄, 동성애 인정 안됨 등)때문에 고통을 겪는 일반 시민들과 세계적으로 국가라는 이름 하에 저지르는 폭력을 볼 때 공권력이란 인간의 추악한 면이란 추악한 면은 다 모아놓은게 아닌가 하는 안타까운 생각도 든다.
여기 나오는 사람들이 굉장히 유명한 근현대 철학자이지만 나에게는 아직도 생소하다. 만만히 봤다가는 큰코다치는 책. 과연 무엇이 옳고 그른지 혼란스러울 때, 나같은 20대 초반의 학생에게 이 책을 읽어보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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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aksim - A New World
막심 (Maksim) 연주 / 워너뮤직(팔로폰)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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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의 곡은 오페라에 쓰이는 등 스케일이 큰 곡들이 모였는데 중후반의 곡은 그렇지 않다. 클래식부터 영화음악, 이국적인 곡까지 있는데 다른 앨범이 대체로 성격이 고른 곡들끼리의 집합이었다면 이 앨범은 서로 다른 성격의 곡들이 많이 모여있다. 앞에서는 'New world concerto'로 웅장하게 시작하는데 비해 후반에는 차분하고 얌전한 분위기의 곡이 몰려있다.
 'New world Concerto'는 드보르작의 교향곡 9번 '신세계로부터'의 3악장을 피아노 협주곡 형식으로 편곡한 것이다. 피아노의 깔끔하고 자연스런 연주가 여러 현악기와 관악기의 장중한 협연으로 음악을 인도하고 있다. 규모가 큰 연주치곤 절제된 세기와 협연으로 새로운 세계에 대한 호기심과 기대를 표현하고 있다. 전자음보단 원곡의 악기에 장점을 부여한 곡이다.

 유명한 예언가의 이름을 그대로 따온 'Nostradamus'는 톤치 훌리치의 곡인데 앞의 곡과 분위기나 주제가 비슷하다. 기존의 세계와 가치관이 무너지고 새 시대가 올 거라는 기대와 두려움을 고조되고 빠른 가락에 담아내었다.

 'Dido's lament(디도의 탄식)'은 디도와 아이네이아스라는 오페라에 나오는 곡인데 전자음이 적절치 못하게 들어가는 바람에 장엄하고 엄숙한 분위기를 살리지 못했다. 'Tosca'도 비슷한 분위기의 곡으로 사랑, 음모, 배신 그 자체를 다룬 오페라 '토스카'에 나오는 아리아인데 심장을 찔러오는 슬픔을 고요히 받아들이는 진정한 태도를 유지하면서도 내면에는 무너지는 듯한 비탄의 파도에 잠식당하는 감정을 묘사하고 있다. 한 줄로 요약할 수 있는 주제가 없고 인간의 희노애락을 그대로 그린 고전 작품답게 이 곡도 슬픔을 고상하고 화려하게 표현하고 있다. 특히 2분째에 시작되는, 크레센도로 나가면서 가락이 점점 올라가는 부분은 슬픔이 심장을 억누를 만큼 고조되는 것을 잘 표현해주고 있다. 앞의 곡들에 비해 소박한 느낌이지만, 가장 기본적인 감정을 자아내어 듣는 이의 마음을 울린다.

 'Desert Skies'는 이미 포스팅한 바 있으니 긴 설명은 않겠다만은 이 음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곡이다. 13개 곡들 중 가장 인상주의(상황, 듣는 이의 기분이나 새악에 따라서 심상(image)을 강하게 주는 음악의 한 유파) 성격이 강한 곡으로, 제목에서 볼 수 있듯이 '사막의 하늘'이 떠오르는 곡이다. 사막을 여행하는 자의 이상과 고조된 감정을 점점 커지는 음악의 스케일이 잘 말해주고 있다.

 'Intermezzo'와 'Somewhere in Time/The Old Woman'은 앞의 곡들과는 달리 평화롭고 과거의 추억을 되새기는 곡으로 앞에서 들뜬 분위기를 가라앉히기에 충분한 곡들이다. 'Intermezzo'가 중반부터 활발한 분위기를 연출한다면 'Somewhere in Time/The Old Woman'은 처음부터 끝까지 장중한 분위기를 연출하고 있다. 유명한 영화음악 작곡가가 만든 곡답게 옛 사랑의 추억이 자연스럽게 흐르고 듣기에도 좋은 곡이다. 뒤에 나오는 'Still Waters'도 마찬가지.

 'Ride of the Valkyries(발퀴레의 비행)'은 화려하고 웅장한 음악을 작곡하고 악극을 사랑했던 작곡가 바그너의 작품을 편곡한 곡인데 '왕벌의 비행'과 비슷한 곡이다. 다만 여러 악기가 사용되어서 웅장하고 군대에 어울렸던 원곡과는 달리 여기서 강조되고 있는 것은 매우 빠른 템포의 피아노 연주다. 관악기 대신 전자음이 피아노 가락을 더욱 뒷받쳐주고 있는 점도 독특하다. 규칙적인 박자로 울리는 악기는 북소리 혹은 군대의 발자국 소리를 연상케 한다. 적군을 향해 용맹히 돌진하는 군대, 전쟁의 여신을 묘사하고 있다. 뒤에 삽입된 코러스도 일품인데 마치 신의 가호를 받는 군대를 표현하고 있는 듯 하다. 여기서는 막심의 현란한 속주에 귀를 기울일만 하다(필자는 이 '발퀴레의 행진'이란 곡을 매우 좋아해서 음반 사자마자 이 트랙을 먼저 재생하였다).

 'Mojito'와 'The Flower Duet'은 이국적인 느낌의 곡이다. 둘 다 빠른 비트의 독특한 매력이 돋보이는 곡이다. 듣고 있자면 칵테일 바(Mojito는 칵테일 이름이다)에서 경쾌한 리듬에 맞춰 춤추는 댄서들이 떠오를 정도다. 아무튼 이 앨범에서 가장 튀는 곡이 아닐까 싶다. 피아노 연주와 이름모를 남아메리카의 악기가 무척 잘 어울리는 곡.

 

 이번에는 'The Piano Player'나 다른 앨범에 비해 다소 절제된 곡이 많은게 특징이다. 규모는 크더라도 감정을 마구 쏟아내는 곡이 많지 않다. 본 앨범은 풍부한 사운드와 서정성이 중요한 요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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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심 - 피아노 플레이어 [재발매]
쇼팽 (Frederic Chopin) 외 작곡, 막심 (Maksim) 연주 / 워너뮤직(팔로폰) / 2003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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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전음악과 전자음악의 절묘한 조화, 현란한 연주로 사람들을 홀리는 막심. 우리에겐 생소한 동유럽의 크로아티아라는 나라의 화려한 연주자이다. 그의 연주곡은 고전음악과 현대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있는데 본 앨범에는 우리에게 친숙한 현대음악이 더 많다. 이 음반은 정말 베스트앨범 저리가라 할 정도로 명곡만 있다. 다소 허전하게 들릴수 있는 음악을 전자음과의 결합으로 긴장과 박력을 힘껏 넣어주었다.
 1번 트랙 '왕벌의 비행'은 비트가 빠르고 현란한 대표적인 곡이다. 본래 림스키 코르사코프의 곡이지만 막심이 현대적 감각을 되살려 귀를 즐겁게 한다.

 2번 트랙 그리그 콘체르토 가단조는 1번에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또 다른 빠른 곡으로 클래식이라기보단 테크노 음악에 가까울 정도로 인공미가 많이 가미되었다. 3번 트랙 Exodus(대탈출)는 어디서 많이 들어본 곡일 것이다. 옛날 MBC 주말의 명화 오프닝곡으로 항상 쓰였던 곡인데 60년대 영화 '영광의 탈출'의 ost로 쓰였던 곡이다. 유대 민족 탈출을 그린 영화를 위해 작곡된 곡 답게 새로운 세계를 향해 나가는 사람들의 애환과 한숨, 희망을 담아내고 있다. 도입부에는 험난한 여정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 황량한 고원에서 불어오는 바람소리(?)를 넣었으며 초반의 반주가 끝나면 들려오는 북소리는 사람들의 발걸음을 묘사하는 것 같다. 자갈과 잡초만이 핀 황무지에 헤진 신발이 끊임없이 맞부딪치는 발자국소리, 먼지날리는 와중에도 희미하게 새 지평을 향해가는 눈들. 한 때 유고슬라비아 내전으로 '영광의 탈출'에 나오는 유대인들처럼 도망치며 살 수 밖에 없었던 막심이 가장 좋아하는 곡 중 하나라고 한다.

 4번 트랙 'Claudine'은 빠르고 긴장감을 주는 앞의 3곡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의 곡인데, 처음 들었을 때는 느낌이 안 올수도 있지만 감미로운 분위기의 곡으로 유일하게 '사랑'에 맞는 곡이 아닐까 싶다. 작년 10월 내한때 나눠준 팸플릿에는 '여성에게 사랑을 고백하는 곡'이라고 나와있지만 나에겐 혼란 속에서 여인과 춤을 추며 현실도피를 하는 장면이 떠오른다. 듣는 이를 환상 속으로 인도하는 곡.

 7번 트랙 역시 굉장히 익숙할 것이다. 영화음악으로 많이 쓰이기도 했지만 파가니니가 작곡한 변주곡 중 가장 잘 알려진 곡을 막심이 편곡했는데 처음에는 굉장히 빠른 템포를 지닌 음악으로 시작했다가 나중에 언제 그랬냐는듯이 차분한 가락으로 바뀌고, 또다시 처음처럼 빠른 곡으로 바뀌는 재미있는 곡이다.

 9번 트랙 'Cubana'는 '쿠바의 여인'이란 뜻을 지니고 있다. '왕벌의 비행'과 함께 이 앨범에서 가장 빠른 곡인데 남미 특유의 열정적이고 화려한 느낌의 곡이다. 듣고 있자면 화려한 드레스를 입은 쿠바 여성이 정신없이 빠른 춤을 추는 듯한 인상을 준다. 유럽색이 짙은 그의 곡에서 가장 개성있고 이질적인 곡이다.

 10번 트랙 '크로아티안 랩소디'는 제목으로 봐서 정말 막심을 위한 곡이라는 생각을 준다. 톤치 훌리치라는 작곡가가 특별히 막심을 위해 제작한 곡인데 'Exodus'와 비슷한 주제를 지녔다. 전쟁의 소용돌이를 피해 지하 방에서 피아노 연주에 몰두할수 밖에 없었던 그의 심정을 가장 잘 담아낸 곡이다. 어린 나이였지만 전쟁의 참상을 직접 보고 들었고 피아노는 그런 그에게 현실 도피 수단이자 이상을 실현다는 도구였다. 알레그로의 템포와 단조풍의 가락은 파괴되는 도시를 눈 뜨고 보는 객관적 시각과, 잔혹한 운명의 소용돌이에 휘말리는 개인의 운명을 잘 담아내고 있다.

 

 인상이 강한 곡들 위주로 적긴 하였지만 딱히 설명을 안 적은 곡도 그냥 넘길 것은 없다. 아무튼 막심의 정규앨범 중 가장 현대적인 음반이고 가장 그만의 색을 잘 살린 음반이다. 복잡한 도심 속에서 잠시 그만의 고상한 세계로 빠져드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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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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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 전문가도 아니면서 함부로 평점을 준다는 것은 자칫 위험한 일이지만 'Back to the basic'의 애청자로서 감히 점수를 주자면 최소 90점은 주어야 한다. 그만큼 버릴 곡이 하나도 없고 싫증도 안 난다. 10대 시절에는 시끄러운 락이 좋았지만 이제는 부담없는 뉴에이지와 遵클래식 등 가사없는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가 보다. 앨범 제목이 '기본으로 돌아가자'인 것처럼 16곡 중 15곡이 피아노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앨범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절제되어 있다'다. 베토벤처럼 감정을 결코 구구절절 읊지도 않고 쇼팽이나 유키 구라모토처럼 낭만적인 분위기가 넘치지 않는다. 일상에서의 절제미를 여과없이 담아내고 있는데 마치 비온 후 개인 아침의 청명함과 한적한 오후 거실에 걸린 초상화를 바라보는 인상을 건반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다.

 첫 곡 'Energy flow'는 '기(氣)의 흐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가슴 속의 슬픔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가락이 제목과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상심, 비탄도 하나의 기(氣)로 보고 그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절제미를 나타내고 싶었을까?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처럼 다소 무절제하게 슬픔을 쏟아내지 않고 고요하게 흐르는 눈물과 소리없이, 그러나 깊게 내쉬는 한숨이 Energy flow의 심상이다.

 'Put your hands up'은 수수하긴 하나 아담하고 서민적인 멋이 있는 곡이다. 가랑비가 내리는 날 맑은 날에는 느낄 수 없는 소박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처마에서 화분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우산을 쓴 채 청개구리를 관찰하는 어린이, 궂은 날이면 으레 생각나는 지짐이... 어찌보면 가장 한국(?)적인 심상을 담은 곡이라 할 수 있다.

 'Opus'는 본디 작품번호를 매길때 쓰는 말이나 여기서는 '몽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지만). 하늘을 날고 사악한 용을 무찌르는 거창한 몽상이 아닌, 반쯤 잠에 빠진 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환각상태다. 손대는 순간 모두 사라질 것 같은 일상 속에서의 몽상.

 이 곡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들 중 대단히 인기있는데 가락이 싱그럽고 깔끔하면서도 일상 안의 감성을 잔잔하게 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심 속의 고요한 자연의 감성을 대변해 주는 곡이다. 비오는 날나 방금 개인 날씨에 잘 어울린다. 드라마나 로맨스 영화의 ost로도 손색없는 곡. 후반의 'Aqua'도 처음엔 썰렁하다 느낄지 모르지만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면이 있기 때문에 가치는 높다. 물이 천천히 흐르고 파장을 일으키는 것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감정이 전달되고 마침내 영혼 전체를 울리는 곡이다. 'Opus'가 이제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단계, 떠들썩함의 소강 상태라면 'Aqua'는 서로의 진정한 마음을 확인하는 때, 떠들썩함이 거의 끝나가고 진정한 평화가 올 때의 곡이다.

 'Sonatine'와 'Lorenz and Watson', 'Chanson'은 새침하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감정의 동요나 표현은 없으나 고요한 일상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곡이다. 깔끔하고 똑똑 떨어지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곡들이다. 역시나 동북아시아의 정서를 담은 드라마나 로맨스 영화에 ost로 써도 좋은 곡들이다.

 'Choral No.1, No2'와 'Bachata'는 한껏 고조된 감정을 절제되게 풀어내고 있다. 로맨스 영화 중후반에 고조된 긴장처럼 곡 배치가 잘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Uetex'는 실험적인 음악인데 '음악은 가락으로 이루어진 예술'이라는 기존 통념을 깨고자 만든 곡 같다. 작은 북 같은 이름 모를 악기가 둥둥 울리는데 여지껏 지속적으로 연주한 감정을 잠시 쉴 좋은 기회(?)인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Tong poo(동풍)'은 어찌보면 가장 이질적인 트랙이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상쾌함을 활기찬 가락으로 묘사해 내고 있다.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을만 하다.

 

 가사와 비평문은 둘 다 문자로 쓰여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가사가 있는 음악은 가사가 곡 전체의 분위기와 주제를 지배하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클래식이나 뉴에이지를 글로써 풀어 쓴다는 자체는 대단히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많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은 그저 내 귀에 듣기 좋으면 좋다고 썼고 들으면 떠오르는 심상 위주로 작성하였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인상주의와도 관련있지만 가사 없는 곡을 감상할 때는 감성의 움직임, 영혼의 울림이 가장 중요하다. '일상의 절제된 감성'을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성공한 앨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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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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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반 중 명반. 기본기에 충실하고 담백하게 즐기기 좋은 음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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