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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이치 사카모토 (Ryuichi Sakamoto) 연주 / 소니뮤직(SonyMusic) / 2000년 1월
평점 :
품절
음... 전문가도 아니면서 함부로 평점을 준다는 것은 자칫 위험한 일이지만 'Back to the basic'의 애청자로서 감히 점수를 주자면 최소 90점은 주어야 한다. 그만큼 버릴 곡이 하나도 없고 싫증도 안 난다. 10대 시절에는 시끄러운 락이 좋았지만 이제는 부담없는 뉴에이지와 遵클래식 등 가사없는 음악을 더 좋아하게 되었는데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인가 보다. 앨범 제목이 '기본으로 돌아가자'인 것처럼 16곡 중 15곡이 피아노 곡으로 구성되어 있다.
본 앨범은 전체적으로 분위기가 '절제되어 있다'다. 베토벤처럼 감정을 결코 구구절절 읊지도 않고 쇼팽이나 유키 구라모토처럼 낭만적인 분위기가 넘치지 않는다. 일상에서의 절제미를 여과없이 담아내고 있는데 마치 비온 후 개인 아침의 청명함과 한적한 오후 거실에 걸린 초상화를 바라보는 인상을 건반으로 묘사하고 있는 것과 같다.
첫 곡 'Energy flow'는 '기(氣)의 흐름' 정도로 해석할 수 있는데 가슴 속의 슬픔을 담담하게 담아내고 있는 가락이 제목과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데 상심, 비탄도 하나의 기(氣)로 보고 그게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절제미를 나타내고 싶었을까? 베토벤의 비창 소나타처럼 다소 무절제하게 슬픔을 쏟아내지 않고 고요하게 흐르는 눈물과 소리없이, 그러나 깊게 내쉬는 한숨이 Energy flow의 심상이다.
'Put your hands up'은 수수하긴 하나 아담하고 서민적인 멋이 있는 곡이다. 가랑비가 내리는 날 맑은 날에는 느낄 수 없는 소박한 정서를 담아내고 있다. 처마에서 화분으로 떨어지는 빗방울, 우산을 쓴 채 청개구리를 관찰하는 어린이, 궂은 날이면 으레 생각나는 지짐이... 어찌보면 가장 한국(?)적인 심상을 담은 곡이라 할 수 있다.
'Opus'는 본디 작품번호를 매길때 쓰는 말이나 여기서는 '몽상'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어느 나라 말인지 모르지만). 하늘을 날고 사악한 용을 무찌르는 거창한 몽상이 아닌, 반쯤 잠에 빠진 채 꿈인지 현실인지 분간이 안 가는 환각상태다. 손대는 순간 모두 사라질 것 같은 일상 속에서의 몽상.
이 곡은 류이치 사카모토의 곡들 중 대단히 인기있는데 가락이 싱그럽고 깔끔하면서도 일상 안의 감성을 잔잔하게 울리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도심 속의 고요한 자연의 감성을 대변해 주는 곡이다. 비오는 날나 방금 개인 날씨에 잘 어울린다. 드라마나 로맨스 영화의 ost로도 손색없는 곡. 후반의 'Aqua'도 처음엔 썰렁하다 느낄지 모르지만 마음속 깊은 곳을 울리는 면이 있기 때문에 가치는 높다. 물이 천천히 흐르고 파장을 일으키는 것처럼 마음에서 마음으로 감정이 전달되고 마침내 영혼 전체를 울리는 곡이다. 'Opus'가 이제 서로에게 마음의 문을 열기 시작한 단계, 떠들썩함의 소강 상태라면 'Aqua'는 서로의 진정한 마음을 확인하는 때, 떠들썩함이 거의 끝나가고 진정한 평화가 올 때의 곡이다.
'Sonatine'와 'Lorenz and Watson', 'Chanson'은 새침하고 가벼운 느낌을 준다. 감정의 동요나 표현은 없으나 고요한 일상을 그대로 묘사하고 있는 곡이다. 깔끔하고 똑똑 떨어지는 피아노라는 악기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는 곡들이다. 역시나 동북아시아의 정서를 담은 드라마나 로맨스 영화에 ost로 써도 좋은 곡들이다.
'Choral No.1, No2'와 'Bachata'는 한껏 고조된 감정을 절제되게 풀어내고 있다. 로맨스 영화 중후반에 고조된 긴장처럼 곡 배치가 잘 되었다는 느낌이 든다.
'Uetex'는 실험적인 음악인데 '음악은 가락으로 이루어진 예술'이라는 기존 통념을 깨고자 만든 곡 같다. 작은 북 같은 이름 모를 악기가 둥둥 울리는데 여지껏 지속적으로 연주한 감정을 잠시 쉴 좋은 기회(?)인 것 같다는 느낌을 준다.
'Tong poo(동풍)'은 어찌보면 가장 이질적인 트랙이다. 동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상쾌함을 활기찬 가락으로 묘사해 내고 있다. 많은 대중들에게 사랑받을만 하다.
가사와 비평문은 둘 다 문자로 쓰여진 결과물이기 때문에 가사가 있는 음악은 가사가 곡 전체의 분위기와 주제를 지배하기 때문에 말로 표현하기가 비교적 쉽다. 하지만 클래식이나 뉴에이지를 글로써 풀어 쓴다는 자체는 대단히 우스운 일일지도 모른다. 세상에는 말과 글로 표현할 수 없는 감동이 많기 때문이다. 이 앨범에 담긴 곡들은 그저 내 귀에 듣기 좋으면 좋다고 썼고 들으면 떠오르는 심상 위주로 작성하였다. 19세기 프랑스에서 유행했던 인상주의와도 관련있지만 가사 없는 곡을 감상할 때는 감성의 움직임, 영혼의 울림이 가장 중요하다. '일상의 절제된 감성'을 울리고 있다는 점에서 이 앨범은 성공한 앨범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