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글만찬 - 두 가지 재료로 만드는 147가지 레시피
문인영 지음 / 비타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요리책을 개인소장하긴 처음인데 '싱글 만찬'이란 매력적인 제목으로 혼자 사는, 혹은 혼자 요리하길 좋아하는 고객을 끈다. 특별히 장을 안 봐도 냉장고에서 얼마든지 구할 수 있는 재료와 간단한 절차만으로 남부럽지 않은 식사를 차린다는게 이 책의 포인트. 간혹 우엉, 유부 등 없는 때가 더 많은 재료들이 있긴 하지만 여기 나오는 요리는 대개 한국인들이 많이 먹는 재료로 이루어진다.
 

 총 4가지 파트로 되어있다. 첫번째는 요리할 때 중요한 점, 두 번째는 본론으로 들어가서 두 가지로 구성된 국과 반찬, 세 번째는 이 책의 백미라 할 수 있는 집에서 해먹는 일품요리, 네 번째는 남은 재료로 만드는 요리 이렇게.

 요리할 때 중요한 점은 잘 안읽어봐서 뭐라고 하기 어렵지만 반 이상을 차지하는 두 번째 단원은 참 실망스럽기 그지없다. 백반 목록을 죽 소개한 것은 좋은데 국과 반찬은 하나도 특별하지 않고 아주 평범하기 그지없고, 그것들을 어떻게든 저자 멋대로 조화시켜 '만찬'이라 과대포장하고있다. 예를 들어 '조기와 부추'에서 조기 고추장 구이와 부추 겉절이 만드는 법을 소개하고 있는데 다 아는 평범한 반찬들 짜깁기 한 게 뭐가 대단하단 말인가? 두 번째 단원은 네 번째 단원 '한 가지 재료로 만드는 재활용 요리'와 연관되는데 두 번째 단원의 요리를 하고 나서 남는 재료로 만들란 뜻이다(페이지가 서로 연관되어 있음). 그래도 세 번째 '한 가지 재료로 만드는 일품 요리'는 굉장히 쓸만했다. 만들기 쉬우면서도 독창적인 요리가 많았기 때문이다(덮밥과 스파게티가 많아 젊은 사람들이 특히 좋아할듯. 만들기 쉽고, 맛있고 배채우기 좋으므로) 네 번째 '한 가지 재료로 만드는 재활용 요리'도 쓸만했다. 독창성은 다소 떨어지는데 그대로 먹긴 뭐한 채소, 배달음식을 훌륭한 반찬 혹은 술안주로 변신시켜 주기 때문이다.

 

 표지의 과대 포장에 어울리지 않는 내용이 절반이었지만 요리하는 사람에게 유용한 부분도 많았다. 집에서 홀로 맛있는 음식을 해먹는데 즐거움을 느끼는 사람들에게 적당한 책. 게다가 조리법도 단순하고 시간도 적게 걸려 요리를 잘 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쉽게 따라할 수 있다. 이 책 대로라면 연인과 맛집에서의 데이트도 부럽지 않을 것이다.  
 

 

쇠고기 쑥갓덮밥 

 

감자 팬케이크 

 

쇠고기 양념장을 곁들인 미역밥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싱글만찬 - 두 가지 재료로 만드는 147가지 레시피
문인영 지음 / 비타북스 / 2010년 6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책의 절반은 짜깁기 메뉴로 실망스럽지만 나머지는 유용하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하녀 - The housemaid
영화
평점 :
현재상영


순수하고 가진 것 없는 여주인공, 돈과 권력을 가진 남자, 질투의 화신인 악녀... 이 구도는 예전부터 굉장히 흔했다. 사랑, 증오, 질투는 인간의 가장 원초적인 감정이거니와 그러한 구도가 흥미진진해서 흥행의 보증 수표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녀'는 단지 갈등 구조를 재미있게 그려 흥행을 노린 작품은 결코 아니다. 인간의 본성과 사회 구조에 길들여진 천박함은  어디까지인가 탐구한 작품이다. 이 영화는 원초적 감정만을 담아낸 게 아니라 사회비판적 코드도 반씩 있기 때문에 순수한 예술 영화로 보기엔 무리가 있는 것 같다.
 첫 장면은 한 여자가 유흥가 한복판에서 뛰어내린다. 왜 그녀는 자살을 택해야만 했을까? 우리가 즐기고 잡담하는 시간에도 분명 누군가는 괴로움에 몸부림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너무나 슬프고 괴로워서, 또 사회가 만들어낸 모순에 숨이 막혀 그랬을 것이다. 

 이 작품은 분위기가 내내 어둡다. 감독의 의도대로 인간 본성과 현대 사회구조의 추악함을 나타내고 싶어서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이 영화를 '오락거리 하나 없는 칙칙한 영화'라고 혹평할 수는 없다. 현대 철학자 아도르노는 어두운 부분, 추악한 부분까지 조명하는 작품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고 반성적 미메시스(모방)을 가능하게 하여 인류의 진정한 발전을 이룬다고 하였다. '예술 작품'의 맥락에서 본다면 '하녀' 역시 그렇지 않을까 싶다.

 사랑, 증오, 질투 - 이 3가지는 가장 기본적인 감정이고 하늘의 뜻인데 이것들을 글(논리)로 풀어낸다는 행위는 어리석기 그지없을지도 모른다. 이 작품에서 나온 '사랑'은 무엇인가? 친밀감도 헌신도 없는 한 순간에 빠져드는 정열뿐인 사랑인가? 은과 훈의 관계는 그럴 것이다. 두 사람은 사회적 신분 차이 때문에 친밀감이 형성될 수 없다. 하지만 어쩔 수 없이 이 일을 한다는 병식과는 달리 '저 이 짓 좋아해요'라고 말하는 은이는 정말 훈에게 헌신했을까? 그녀가 뱃속의 아이에게 그토록 집착했던 이유도 기본적으로는 훈에 대한 헌신과 희생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집착으로 이어지긴 했지만 말이다. 마치 안주인 해라처럼 말이다. 해라는 집착이 대단히 강하다. 아이 셋도 모자라 넷째, 다섯째까지 낳는다는 것은 훈을 향한 집착일 것이다. 그렇다. 해라는 소유욕에 있어서는 절대 지지 않는다. 좋은 집안에서 태어나 갖고 싶은 것은 모두 손에 넣었고, 결혼해서도 마찬가지다. 훈을 진정 사랑해서가 아니라 빼앗기지 않기 위해서 훈의 아이를 낳고, 남편을 빼앗아간 은이를 죽이려 드는 무서운 여자다. 어쩌면 그리스 신화의 '헤라'와도 연관이 있지 않을까? 제우스의 아내 헤라는 질투심이 매우 강한 올림푸스의 안주인으로 제우스와 바람을 피운 여자는 절대로 용서치 않는다(그래서 이름도 비슷하게 지었을 것이다).

 은이를 불행에 몰아넣은 사람은 훈인데, 먼저 잘못을 저질러놓고 후에 은이의 안위를 걱정하는 치졸하고도 인간적인 모습을 보인다. 바람피우는 남자들의 교활하고도 흐트러진 모습이랄까? 사회 구조가 만들어놓은 인간의 소유욕과 인간 본연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병식은 젊을 때부터 하녀를 시작했지만 노인이 되어서까지 하녀로서 일한다. 병식이 어리석어서 그랬을수도 있지만 딱히 할 줄 아는게 없기 때문일 것이다. 개인이 노력한다 한들, 사회 구조에서 탈출하기는 매우 어렵다. 병식은 사회적 약자로서, 현실의 모순에서 벗어날 수 없을 뿐이었다. 저택은 권력과 거짓으로 점철된 사회 구조의 축소판이다. 동료가 희생되자 그동안 발휘하지 못했던 용기를 발휘하는 병식을 어떻게 볼 것인가?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적 모순을 비판하고 벗어나고 싶어하지만 벗어나기도 힘들거니와 벗어난다고 해서 앞날은 커녕 당장이 보장받기도 어렵다. 그렇게 인간은 용기가 없어서, 제도에 중독되어 현실에서 벗어나고 싶어하지 않아한다(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아도르노는 '인간이 진정한 희망을 갖기 위해서는 과감하게 실험을 해야 하며, 오직 절망만이 인류를 구원한다' 하였다.

 이 작품에서 먼저 봐야 할 것은 무엇인가? 원초적 감정인가 사회적 모순인가? 감독은 예술 영화를 의도했지만 사회비판 작품으로 남을 여지도 없지 않다. 은이처럼 세상물정 모르는 사람에 대한 옹호 혹은 비판은 나중 문제다. 주목해야 할 것은 은이의 감정이며, 세 사람간의 아슬아슬한 줄다리기다.

 현실 비판 인물로 남았던 병식과는 달리 은이는 본연의 감정에 충실하다. 저택 가족들에 대한 대항도 계급을 떠나 개인 행복 침해에 대한 대항이었다. 그런 은이에게 나미는 가장 좋은 친구였는지도 모른다. 나미 역시 나이가 들면 더러운 권력자가 될 지도 모르지만 나미에게만은 늘 좋은 것만 주고 싶은 훈과 해라의 마음은 여느 부모와 다르지 않다.

 '하녀'는 분명 투쟁하자는 영화는 아니다. 다만 현실의 제도 안에서 인간이 얼마나 추악한 부분까지 드러내는지, 또한 때묻지 않은 인간을 통하여 기본적 감정을 저택이란 사회의 축소판에서 마음껏 묘사하고 싶었을 뿐이다. 아직 예술 영화에 익숙치 않아 해석이 어려웠지만 해석보단 '감상'에 충실해야 한다. 하녀를 통하여 우리 안의 마성, 사회의 명암을 다시금 비추어 볼 것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4)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 Poetry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최근에 개봉한 국내에 몇 안 되는 예술영화고, 그것도 예술의 한 분야인 '시'를 소재로 삼았기 때문에 더욱 예술 작품의 색이 짙은 영화다. 이창동 감독의 '시'는 외손자와 단 둘이 사는 한 노인이 시 강좌를 수강하면서부터 자신에게 일어나는 무거운 사건들을 겪으면서도 점점 서정시를 전문으로 쓰는 무명 시인의 길을 걷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문학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현실을 고발하는 기능을 하는 이성(理性)의 색이 짙은 비판시와 다른 하나는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순수시로 나뉜다. '시'의 주인공 양미자는 순수시를 쓴다. 양미자는 남편도 없이 외손자와 함께 다 쓰러져가는 아파트에서 기초생활수급자로 살아가며, 돈 벌기 위해서 요양보호사로서 궂은 일을 마다하지 않는데다 딸은 이혼했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나이인데도 불구하고 현실 비판적 작품이 아닌 서정시를 지음이 다소 의아할 수도 있다.

 우리는 확실히 서정시를 쓰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경제는 나아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대학을 졸업해도 앞날이 보장되질 않는다. 살기는 더욱 팍팍해지고 들리는 것은 범죄 소식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정시를 쓰는 이유는 인간으로서 순수성을 간직하고 싶어서일까. 나라의 주권을 빼앗겼던 시기에도, 독재 정권이 판을 치는 시대에마저 사람들은 끊임없이 아름다움을 추구한다. 

 예술 영화이긴 해도 의외로 주제는 찾기 쉽다. 바로 '시란 우리에게 무엇인가'다. 항상 밝고 낭만적인 노래만 부른다고 해서 그 사람의 삶이 실제로 행복하다고 장담할 순 없다. 자연 속에서 시상을 떠올리고 본질을 찾는 미자를 보며 사람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저 할머니는 팔자 참 좋군. 이런 상황에서 꽃이나 관찰하고 있다니.'라고 말할 수도 있다. 미자와 비슷한 환경에 놓인 보통 사람들 같으면 어린 여중생이 안심하고 살 수 없는 사회를 비판하는 시, 가난을 헤쳐나가겠다는 강한 의지를 보여주는 시(혹은 서민을 보살피지 않는 현실에 대한 비판 시), 같은 학교 여학생을 성폭행하는 남학생들의 불량함을 개탄하는 시를 쓸 것이다. 그래도 인간은 언제나 아름다움, 본질을 찾겠다는 열망을 가지고 있는 것 같다.

 순수함이란 곧 단순함이고, 단순함을 위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본질에 대한 규명이다. 이 문제는 인간에게 가장 어려운 문제일 것이다. 본래 가장 단순한 것이 가장 어려운 법이다. 우리는 육안으로 사과를 보지만 시인이 말하길 "우리는 단 한번도 사과를 본 적이 없다"하였다. 우리는 인위적인 사물과 현상을 분석하거나 피상적인 질료를 볼 줄만 알지 진정 본질을 본 적은 없다. 그렇다, '본질을 본다' 애초에 성립이 안 될 것이다. 진정 본질을 보려면 추상적 말과 사고로 봐야 한다. 그걸 가능하게 해주는 매체가 바로 '시'다.

 미자에게 있어서 가장 가치있는 본질 탐구는 삶과 죽음이 아닐까? 앞으로 살 날보다 여지껏 살았던 날이 더 많은 미자, 요양보호사 미자가 돌보는 뇌일혈로 거동을 못 하는 죽을 날만 바라보는 노인, 16세에 생을 마감하고 만 소녀... 미자가 보기엔 아름다움의 대상이다. 최후가 어떻든 우리는 삶과 죽음의 문제에서 피해갈 수 없다. 이 세상에 난 것들은 언젠가 가게 되어 있으며 자연의 섭리를 따르기 때문에 아름답다고 한다.

 피고 지는 꽃, 떨어진 과일 - 그저 자연스럽게 섭리를 따르는 사물이 미자에겐 탐미의 대상이다. 좋은 환경에 태어났든 그렇지 않든간에 자연의 일원으로 태어나 부대끼고 살아간다... 그런 맥락에서 모든 사물은 다르지 않다. 뇌일혈로 오랫동안 성 불구자로 살았던 할아버지도, 자살한 소녀도 단순한 연민의 대상을 넘어 보듬어야 할 자연의 일원이다. 작년 노 대통령이 부엉이 바위에 몸을 던지기 전 남긴 유서에서 '삶과 죽음이 하나가 아니겠는가'라고 썼듯 삶과 죽음은 연결된다. 

 가난한 미자이지만 미자는 자연에 존재하는 일원으로서 본질을 탐구했을 뿐이다. 다만 500만원을 마련해야만 하는 상황의 계속적인 배치는 영화의 흐름을 다소 방해한다. 그런 상황에서도 느긋하게 시상을 떠올리는 유미주의자 미자를 강조하고 싶은 의도였을까?

 미자에게 알츠하이머 증세가 있다는 설정도 다소 작위적이다. 미자는 단어를 자꾸 잊어버린다 했는데 인간이 약속한 언어란 이성의 산물이다. 하지만 예술은 이성보단 감성, 의식보단 무의식이 앞서야 하므로 미자에게 더욱 어울리는 설정이라 그렇게 했을까? 시도 언어란 도구로 나타내긴 하지만, 시에 담겨있는 감성과 철학은 언어의 과학적 기능으로는 설명이 불가능하다. 소쉬르는 '말에는 애초부터 인간의 내재된 사고와 감성을 담고 있다'라고 하였다. 과학으로 풀어쓰지 못하는 세상의 원초적 요소를 시는 멋있게 포장한다.

 에필로그는 인상깊었다. 소녀에 대한 단순한 추모를 넘어 비록 어린 나이에 자살이라 할지라도 흙으로 돌아간 육체, 제도에서 벗어나 진정한 자연인으로 돌아간 영혼... 이 작품의 중심 주젤 잘 드러내고 있는 부분이다. 팍팍한 시대라지만 우리는 너무 아름다움을 잊고 산게 아닌지 한 번 돌아보자. 골치아파 보이는 영화였지만 의외로 지루하지 않고 고등학교 문학시간에 들었던 내용을 상기시켜주는 영화였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방자전
영화
평점 :
상영종료


춘향이의 색다른 모습을 보여준 건 좋았는데 후반가서 지루해짐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