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땅콩박사 (청소년용) - 모든 역경을 이겨낸 사람 조지 워싱턴 카버
로렌스 엘리엇 지음, 곽안전.민경식 옮김 / 겨자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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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를 해방시킨 사람이란 평을 듣는 조지 카버의 일대기인 이 책은 널리 읽혀 왔다. 몇 해 전에 책 등은 까맣고, 표지는 하얀 2008년 판으로 읽었을 때, 추천에 의해 읽기를 잘 했다는 생각을 했었다. 그의 삶 속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올곧이 잘 걸어갈 때에 느낄 수 있는 충만함을 보았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책 표지나 판형에 대해서는 의문들이 있었다. 표지를 보았을 때에는 읽고 싶은 책이라기보다는 강력한 추천에 의해서 읽어야만 하는 책으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이 책을 읽을 때마다 느끼는 감동의 깊이는 변하지 않는다. 흔히들 기독교에서 말하는 소명에 따르는 삶이 무엇인지를 적확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출생연도도 정확한 부모도 모르는 삶, 그리고 공부에 목마르지만 지속적인 배척의 삶을 살았어도 좌절하거나 굴하지 않고 자신의 길을 꿋꿋이 걸어간 위대한 삶을 만났을 때의 희열을 반복해서 느낄 수 있다. 그 삶 속에서 분노하고 절망하지 않을 수 있으랴! 하지만 그는 누군가를 배척하거나 적대하지 않았으며, 자신이 더 풍요 속에 살 수 있음에도 그것을 누리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의 삶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책에도 밝히고 있지만 엉클 톰이라는 조롱의 시선이 분명하게 존재한다. 미국의 흑인들 입장에서는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노예로서 삶과 노예 해방 이후에도 당한 차별로 인하여 백인들에 대해 분노했다. 법적으로는 동등한 지위를 누려도 사회적으로는 아직도 노예 상태의 차별이 존재함에 저항하지 않는 지식인인 조지 카버에 대한 그와 같은 조롱을 어쩌면 당연한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는 성경과 기독교 신앙에 입각하여 자신에게 주어진 길을 갔고, 흑백 양 진영에서 모두 존경받는 사람이 되었다. 그를 만나 도움을 청하는 모든 이들에게 친구가 되는 길을 선택함으로 이뤄진 결과이다.

흑인들에게 존경받는 사람들이 있다. 링컨, 마틴 루터 킹, 말콤 엑스 등의 인물들이 정치 분야에서 흑인 해방을 이뤄냈다. 때때로 마틴 루터 킹을 더욱 존경받을 만한 사람으로 인정하기도 하고, 말콤 엑스를 더 따르는 흑인들도 있다. 나는 개인적으로 마틴 루터 킹을 더욱 존경한다. 흑백의 이루어진 삶을 추구하였던 그의 삶이 가슴 깊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그에게 주어진 길을 갔다. 한 명의 투사로서의 삶, 정치와 사회 영역에서 자신의 길을 걸어갔을 뿐이다. 조지 카버 또한 그에게 주어진 길을 갔다. 한 명의 과학자로서의 길이다. 연구자로서 충분히 탐구했고, 그 탐구 결과물을 자신의 것으로 여기지 않았다. 표지가 어떠하든지 간에 그의 삶을 담은 이 책은 엄청난 가치가 있다. 더욱이 이번 판형과 표지는 참 예쁘다. 그 표지만으로도 책이 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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묵상투데이
대한기독교서회 편집부 엮음 / 겨자나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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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매일 하루를 살아간다. 오늘 하루를 사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오늘이라는 하루를 과거에 매어 사는지, 미래만 보며 살아가는지 알 수 있다. 얼마 전에 크게 흥행했던 영화 아저씨에서 배우 원빈의 너희들은 내일만 보고 살지? 내일만 사는 놈은 오늘만 사는 놈한테 죽는다. 나는 오늘만 산다.”라는 대사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꽤 철학적으로 들린 이 대사, 처음에는 의미를 잘 몰랐지만, 차츰 곱씹을수록 그 안에 욕망에 대한 비판이 들어있다고 느꼈다. 내일의 소망을 가지고 사는 것은 나쁜 일이 아니나, 나의 내일의 소망이 욕망으로 전환되면, 그 욕망은 다른 사람들에 대한 착취의 근원이 된다. 때때로 과거의 영광 속에 사는 사람들도 마찬가지이다. 그들은 과거의 자신이 최고인 시절의 모습을 그리워하고 있는 것이다. 과거 속에 살면서, 과거의 영광으로 돌아가고픈 욕망이 내재되어 있고, 과거의 후회를 담고 있다면, 그것을 돌이키고 싶은 욕망에 살아가는 것이다.

묵상은 그 욕망을 버리는 작업이다. 과거는 내 힘으로 절대로 돌이킬 수 없다. 그저 오늘을 과거와 같은 식으로 살지 않을 권리만 있다. 또한 미래도 내 힘으로 절대 바꿀 수 없다. 그저 오늘의 하루가 쌓여서 내일이 되는 것이기에 오늘이란 한 걸음을 잘 걸으면 된다. 그저 우리는 오늘이라는 하루를 산다.

묵상 TODAY는 담백한 오늘을 담아낸다. 욕망에 찌는 삶을 담아내지 않는다. 흔히들 교회 내에 간증이라고 하면, 성공신화를 생각하게 된다. ‘예수를 믿었더니 이런저런 성공을 하더라식의 간증과 간증집들이 넘쳐나고, 묵상집들에도 그런 이야기들이 꽤 삽입되어 있는 것들을 본다. 우리가 진정으로 보고 듣고 해야 하는 이야기들은 그럼에도 불구하고의 이야기들이다. 다니엘의 세 친구들처럼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신앙고백이 담긴 이야기들이 많이 양산되어야만 한다. 이 책이 바로 그 이야기들을 담백하게 담아낸다. 책장을 넘기다보면 나와 같은 갈등상황에서 말씀에 순종하고 살아가는 사람의 삶이 담겨있다.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그 삶을 선택하는 이들의 애환이 녹아 있다. 미래를 잘 살게 하는 투자로 이해되는 묵상, 또는 과거를 돌이키는 묵상이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기에 충분한 공급이 이뤄지는 묵상이 가능하다. 더더욱 위로가 되는 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세계인이 나와 동일한 고민 속에서 함께 걸어가고 있다는 마음을 받는 다는 것이다.

그러나 말씀의 깊이 있는 해석에 대한 아쉬움이 남는다. 말씀이 제시되고 말씀에 따르는 깊이 있는 삶이 나눠지지만, 말씀을 해석할 수 있는 다양한 기재나 해설은 없다. 하지만 삶의 나눔과, 기도제목의 나눔, 한 줄 묵상 나눔이 어마무시한(?) 깊이로 다가오기에 하루를 사는 나에게 충분한 양식이다. 해설이 없으면 어떠랴! 그 해설에 관한 것은 다양한 재료들이 있는데, 허나 삶은 어디서도 듣기 쉽지 않다. 일용한 양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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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편 구약학입문시리즈 3
윌리엄 P. 브라운 지음, 하경택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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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뱅은 교회에서 찬양은 시편으로만 해야 한다고 하였다. 요즘에도 많은 찬양들이 말씀을 가지고 만들며, 그중에서도 시편을 가지고 음률을 붙여 부른 노래들이 많다. 소싯적에는 그저 음률들이 좋아서 흥얼거리던 노래들이 시편을 읽다가 그 노래가 이 시편이었구나!’하고 반가워했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하지만 시를 분석하고 공부하는 것은 참 어렵다. 시를 읽는 것은 좋았으나 문학수업은 힘들었다. 이미 학자들이 분석한 내용은 지루했고, 이렇게까지 쪼개야 하나는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마구 쑤셔 넣는 지식은 시를 씹는 것을 방해하였다.

시편: 구약학입문시리즈 3은 시편 개론서이다. 하지만 저자는 이 책을 시편의 개론서라고 하지 않는다. 그저 시편의 맛을 보여주기 위한 초대라고 적으며, 함께 즐기기 위한 재료들을 던진다고 한다. 그리고 함께 맛보자고, 함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그 맛이 더욱 풍성해질 거라고 자신 있게 손을 내민다.

저자는 차근차근히 시편에 대해 접근한다. 시적 표현, 행과 절, 그리고 연에 대한 시학을 통한 접근, 그리고 한 편의 시에 생각, 나아가 그 시가 어떤 상황에서 쓰였고, 사용되고, 읽혔는지를 살핀다. 그것을 구체적인 예로 시편 중에 한 편 씩을 골라내어 그가 처음에 제시한대로 함께 토론해 보자고 제시한다. 그리고 전체 시편의 편집과 구성에 대해서 논하며, ‘시편이라는 한 책에 담긴 담론을 고찰하고 있다.

이는 그가 일반개론서 또는 학술서가 가지고 있는 연구사를 제외하고 서술하고 있다고 했지만, 이미 그는 토론 주제를 던지면서 자연스럽게 연구사를 개괄하고 있다. 고대의 시학에서부터 히브리문학에 대한 연구와 역사비평의 방법, 그리고 편집비평과 한 권으로 읽는 최근의 문학비평까지 섭렵하여 우리에게 제시하고 있는 것이다. 그로 인해 이 책은 개론서로서는 짧고 얇고 작지만, 그 깊이만은 풍성하며, 나아가 우리를 시편만이 아니라 성경해석의 풍성한 장으로 초대하는 문으로서 역할을 감당하고 있다.

특히 인상적인 것은 후기이다. ‘성전으로서 시편을 고찰하면서 성경 전체와 조화, 즉 성경 전체 속에 시편을 살피고 있는데, 최근 우리나라에 소개된 G.K.비일의 성전신학과 맞닿은 부분이 있다. 이 짧은 후기 속에서 시편이 언어의 성전으로 구조화되어 있음을 잘 소개하고 있으며, 256쪽에 인용된 히에로니무스의 글은 언어로 된 성전의 인상을 강하게 남겼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편을 연구하는 것은 매우 힘들다. 방대한 지식이 쏟아져 들어옴도 매우 피곤하다. 찬찬히 누군가와 함께 논의하며 읽으면 씹히는 맛이 매우 클 이 책시편: 구약학입문시리즈 3은 혼자 읽기에는 매우 힘들고 지루하였다. 아님 읽은 때에 내 자신의 상태가 피곤해서 그리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아니 내 공부가 아직 매우 짧음의 소치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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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픔이 슬픔에게
서재경 지음 / 대한기독교서회 / 201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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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이 되고 싶었다. 중학교 어스름엔가 잘난 척에 맛을 들인 나는 긴 글은 귀찮았고, 공부는 하기 싫었다. 그저 꽤 아는 척, 멋진 척 하기에 시는 매우 적당해 보였다. 그리고 고등학교 시절 문학동인회에 가입하였고, 시는 쓰는 척은 했지만 그저 입을 털기 바빴고, 무리들과 어울리기만 좋아했었다. 그래도 그 옛날 치기가 참 그립다. 훗날 산에도 들어가 보고 했지만, 삶을 몰랐고, 사람을 몰랐던 나는 제대로 시 한 줄을 쓸 줄 몰랐고, 쓸 수 없다는 자각이 들던 날에는 참 시인인 예수가 들어왔다. 그리고 삶이 시임을, 사람이 시임을, 참 삶이 참 시라는 것을 알고는 시를 살아가고 있다.

슬픔이 슬픔에게는 서재경의 삶이다. ‘슬픔이 슬픔에게 위로가 되듯이, 그는 그의 삶을 담담하게 풀어내어서 길을 걷는 이들에게 자신의 삶으로 위로를 건네고 있다. ‘말씀이 육신이 되듯이 우리가 말씀의 집이 되었기에 그는 한 권의 시집()을 세상에 던지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작품()인 그가 또 다른 작품인 나에게 손을 내밀고 있었다.

내민 손을 잡고 보니 알알이 곱고 알이 꽉 찼다. 손을 잡고 대문을 여니 봄의 향기가 가득하다가 가을의 정취로 내 삶을 어루만진다. 언제나 청춘이고, 어느 새 청춘이었던 시간을 지나 문득 눈을 떠 보니 중년의 삶을 살고 있는 나에게 하나의 위로가 된다. 그렇게 기대어 함께 걷는 우리네 삶은 겨울이다. 항상 선택 앞에 서있고, 무언가를 준비하는 오늘을 살아내야 한다. 준비도 오늘을 살아야 할 수 있지 않은가? 서재경은 치열한 오늘의 삶을 함께 걷자고 말하고 있다. 아니 함께 걷겠다고 힘을 내라고 응원한다. 그리고는 친구야라고 큰소리로 부르며, 자신의 치열한 삶의 넋두리를 늘어놓는다. 자신 안의 슬픔을 한 올 한 올 풀어놓는다.

그렇게 그와 함께 걷다 보면 위로를 받기도 하고, 함께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그의 재기에 하고 웃기도 한다. 삶의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는 세밀함으로 존재의 의미들을 깨우고, 시대의 아픔에도 눈을 돌리지 않고 직시하고 있다. ‘문제가 문제임을 알아보며, 시대의 교회에게도 예언자로서 쓰디 쓴 말을 서슴지 않는다. 물욕에 찌는 교회를 질타하고, 협박에 가까운 전도를 비꼬고, 416참사를 애도하며 날카로운 시선으로 419와 이어 함께 통탄한다. “슬픔이 슬픔에게함께 있겠다고 건넨다.

아직 나는 멀었다. 슬픔을 농축시켜 한 문장으로 쓸 내공이 부족하다. 아니 슬픔이 부족할지도, 어쩌면 기쁨이 부족한지도, 아니 어쩌면 치열함이 부족한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가 내밀어 준 손을 잡고 천천히 한 걸음씩 옮겨 보련다. 가다 보면 참 시를 발로 적고 있지 않겠는가? 마주보면 흘린 눈물 한 방울이, 피식 웃는 작은 희미한 미소가 손 내민 그와 함께 쓰는 시 한 줄이 아니겠나?

문제

무엇이
문제인가

문제가
무엇인가

그것이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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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교 설교의 역사
폴 스코트 윌슨 지음, 김윤규 옮김 / 대한기독교서회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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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역사는 신학의 역사다. 저자는 우리말로는 조금 거창한그리스도교 설교의 역사라는 제목의 책 속에서 20명의 설교자들의 설교를 통해서 약간은 거칠지만 간략한 교회사를 제공한다. 이 책의 의도는 초대교회 때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각 시대와 교파교단들을 대변하는 설교자들의 설교를 분석함으로 현대의 설교자들에게 도움을 주고자 함이 먼저지만, 우리는 이 가볍고 얇은 책을 통해서 저자는 부차적으로 간략한 교회사를 제공하고, 나아가 이 책은 현재의 예배와 설교에 관해 좀 더 깊은 관심으로 끌고자 의도하고 있다.

이를 위해 저자는 20명의 설교자에 대해 각 설교자마다 설교자가 살았던 시대와 삶을 간략하게 요약하고, “설교론의 배경을 통해 설교자의 신학과 설교와 예배 등에 대한 생각 또는 설교법과 작성법을 소개한다. 그 후에 설교의 사례에서 설교자의 대표적인 설교문을 발췌하여 싣고, “설교론의 의미에서 설교에 대하여 분석하고, 현재에 적용할 수 있는 점을 다루고 있다. 이런 4쪽 정도의 구분은 네 페이지 설교로 유명한 저자다운 구분과 분석틀이다. 그로 인하여 각 설교자와 설교에 대해 매우 깔끔하고 간결하게 우리에게 이해되고 인식이 된다.

또한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20명의 설교자들은 초대교회와 중세, 그리고 종교개혁 이후구분된 세 시대를 아우르는 설교자들이며, 다양한 신학과 교단교파를 대표하고 있다. 교단교파로는 가톨릭과 루터파, 장로교, 감리교, 침례교뿐만 아니라 구세군까지, 신학으로는 근본주의부터 자유주의까지, 인종으로는 흑인인 마틴 루터 킹이 포함되어 있다. 나아가 기독교학의 다양한 분과들의 대표자들 특히 기독교교육학의 아버지라 불리는 호러스 부슈널이 포함되어 있으며, 더욱이 초대교회부터 여성 설교자들을 소개함으로 구별 없이 풍성하게 읽을거리를 제공하고 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우리 말 제목의 그리스도교 설교의 역사를 보고 들어 볼 수 있길 원했던 설교자가 들어 있지 않음에 실망했을 독자들도 있겠다. 우리나라 목회자들이 좋아하는 마틴 로이드 존스나 존 스토트, 또는 20세기 신학의 거장인 칼 바르트나 본 회퍼의 설교를 기대했던 이들도 있을 터이고, 오순절운동 이후 오순절 계열의 설교자들이 빠져 있음을 허전하게 느낀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중세 설교자들이 매우 부실함과 유럽과 북미 중심의 설교자들로 채워져서 남미나 동양권의 설교자들이 빠져 있음이 꽤나 아쉬움으로 다가왔다. 하지만 저자가 쓴 원제목인 A Concise History of Preaching를 감안한다면 약 250여 쪽의 분량 안에 상당히 많은 설교자들을 소개하고 있음에 감사해야 한다.

개인적으로 성경상의 예수님이나 초대교회 사도들은 일방향의 일대다의 설교를 많이 했다고 생각되지 않는다. 설교학자들이 설교라고 인용하고 분석대상으로 삼는 대부분의 성경 자료들은 대화이다. 사도들의 권위에도 불구하고 대화 형식의 가르침이 더 많았으며, 더 많은 인원이 있더라도 대화 형식은 바뀌지 않았다. 어느 샌가 전문가들이 등장했고, 그것이 2천년이 넘게 설교라는 형식이 자리 잡고 발전되어 왔다. 그래서 이 책이 접근하는 설교학의 관점은 내게는 그다지 흥미롭지 못했다. 하지만 이 책의 거칠지만 흥미롭게 요약 정리된 교회사는 매우 유익하였다. 머릿속에 엉키어 있던 교회사의 단편들이 잘 연결되어 깔끔하게 정리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생생하게 살아 움직이게 하였다. 감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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