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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 - 읽기만 해도 어휘력이 늘고 말과 글에 깊이가 더해지는 책
장인용 지음 / 그래도봄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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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연 없는 단어는 없다>은 30년간 출판업에 몸담은 저자 장인용이 단어의 기원과 변화를 흥미롭게 풀어낸 책이다. 단순한 어원 설명을 넘어서, 시대와 문화 속에서 단어가 어떻게 만들어지고 변형되었는지를 살펴본다. 일본에서 들어온 한자어, 비슷한 소리를 가진 단어들, 종교에서 유래한 표현 등 다양한 언어의 배경을 소개하며, 나무·물고기·채소·과일 이름이나 지명, 반복어(첨첨, 살랑살랑)처럼 잘 다루어지지 않았던 주제까지 폭넓게 서술한다. 


익숙하다고 생각했던 단어마다 저마다의 이야기가 담겨 있다. 그 사연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평범한 일상 단어에 역사, 문화, 풍물, 삶의 흔적이 녹아 있다. 예를 들어, ' 아내',' 마누라', '형', '언니' 등 뜻과 쓰임새가 뻔한 단어에도 긴 시간의 흐름이 있고, 생소했던 한자어와 일본어를가 오늘날 자연스럽게 우리의 언어로 자리 잡은 과정이 새삼 새롭다. 또한 저자는 ‘경제’와 ‘사회’ 같은 단어가 현대적 의미를 갖게 된 과정, 외국어와 한자가 결합된 말, 지명의 변천이 정체성에 미친 영향 등 언어의 기원을 다각도로 살피고 있다. 단어가 단순한 뜻을 넘어 시대와 문화를 담고 있다는 점, 이를 통합적으로 이해하는 것이 어휘력의 기본이라고 말한다. 


이 책을 읽는 경험은 마치 형태 없는 단어를 손으로 빚어보는 놀이 같다. 단어를 탐구하는 과정에서 이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언어적 교양이 쌓이고 세상을 바라보는 시야가 넓어진다. 무엇보다 우리말에 대한 애정이 깊어지고, 나를 표현하고 소통을 가능하게 하는 단어를 더욱 소중히 , 살뜰하게 다뤄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된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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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위의 과학자 - 망망대해의 바람과 물결 위에서 전하는 해양과학자의 일과 삶
남성현 지음 / 흐름출판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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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현 교수의 바다 위의 과학자는 태평양, 대서양, 인도양을 건너 남극까지, 잘 알려지지 않은 바다의 숨겨진 이야기를 담고 있다. 바다에서 직접 데이터를 수집하며 연구하는 해양과학자의 생생한 경험을 탐사 일지 형식으로 풀어낸다. 저자는 태풍이 해양 환경에 미치는 영향을 분석하고, 박테리아 발광 현상을 통해 전설로만 전해지던 ‘우윳빛 바다’를 실제로 확인하는 등 과학적 발견을 기록한다.


우리는 지구를 ‘푸른 행성’이라 부르지만, 정작 바다에 대해 아는 것은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바다는 기후를 조절하고, 지구 생태계를 유지하며, 인류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마시는 커피 한 잔, 반려동물의 오줌 한 방울까지 바다에서 오지 않은 것이 없다. 인체를 구성하는 성분 중 절반 이상이 물이라고 한다. 모든 물이 바다에서 온 것이라면, 우리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의 바다가 아닐까." (p.24)


저자의 탐사 일지는 흥미롭고 긴장감 넘친다. 연구선에서 아슬아슬하게 태풍을 피해 항해하고, 깊은 바다에서 온갖 어려움 속에 관측 장비를 회수하며, 예상치 못한 해양 생물과 조우하는 과정은 읽는 내내 몰입감을 자아낸다. 무엇보다, 역동적이고 다채로운 여정 속에서 저자가 깨달은 삶의 교훈과 자연과 인간에 대한 새로운 관점이 인상적이다.


"불안하기 짝이 없는 작은 배에서 의존해 수천 미터 두께의 바닷물 위에 떠서 망망대해를 다니며 탐사하는 이 작은 공동체가 무사히 항해를 마치고 다시 항구로 돌아오려면 무엇이 가장 중요할까? 연구선 내에서 서로 격려와 응원을 아끼지 않는 모습은 매우 바람직하지만, 항상 100퍼센트 완벽한 공동체 생활이 이어지는 것은 아니다. 사람 사는 곳이라면 어디라도 마찬가지지만, 이 작은 공동체 생활에서도 규칙을 잘 지키는 것이 중요하다." (p.31)


"한편으론 아무나 할 수 없는 경험을 위해서 그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건 당연히 지불해야 하는 값이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무도 손 담가본 적 없는 바닷물에 손을 담그고, 주위를 둘러봐도 보이는 건 수평선뿐인 수면 위에 밤낮으로 누워보며, 누군가는 지도로만, 또 누군가는 노래 가사로만 접해본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직접 누벼볼 수 있다면야. 만약 그런 것들을 포기하고 안전하게 육지 위의 실험실에서만 연구를 하라고 한다면 이제는 못할 것 같다." (p.42)


과학자이자 탐험가, 그리고 자연의 해석자로서 저자가 기록한 이 책은 해양과학의 경이로움과 바다의 가치를 깊이 있게 전하고 있다. 바다라고 하면 바닷가 정도만 알고 있던 나에게 수평선 너머 먼 바다에 대해 호기심이 생겼다. 태풍으로 파도가 요동치는 바다를 먼저 떠올리던 내가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육지보다 바다가 더 안전할 수 있다는 저자의 말을 한번 실험해보고 싶기도 하다. 바다에 대한 고정된 인식을 바꾸도록 이끈 책이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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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배 - 미야자와 컬렉션 5 날개달린 그림책방 63
미야자와 겐지 지음, 오승민 그림, 박종진 옮김 / 여유당 / 202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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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곡의 밤, 길게 늘어뜨린 가지에 투박하지만 먹음직스러운 돌배가 달려 있다. 노란 달처럼 어두운 풍경을 밝혀주는 것 같다. 곧 풍덩 물에 떨어질 듯하다. 책표지 그림 하나로도 많은 상상을 펼칠 수 있어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지 않아도 될 것 같다. 하지만 그래도 궁금하다. 계곡에 떨어진 돌배는 어떻게 될까.

푸르스름한 계곡 바닥에서 아기 게 두 마리가 서로 이야기를 한다. ”클램본은 웃었어“ ”클램본은 카푸카루 웃었어“. 아리송한 대화들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계곡 속 풍경과 함께 낯설고 생소하게 다가온다. 어두운 색감의 거칠고 울퉁불퉁한 자갈과 촘촘한 물결무늬들, 동그란 거품들이 여기 저기 떠 다닌다. 또 직선의 황금빛 햇살이 비치고 이상하게 생긴 물고기도 등장한다. 그러다 갑자기 총알 같은 부리가 나타나 물고기를 잡아채간다. 갑작스럽긴 해도 아기 게에게는 이곳이 유일한 세계이며 하나의 우주일 것이다. 우리에게 계곡은 누구나 쉽게 발을 담그며 물고기를 잡고 올챙이를 구경하는 작은 공간이겠지만.

계곡 바닥에서 바라본 우리 모습은 어떤 모습일까. 우리의 발은 기둥으로, 아이들의 손은 거대한 그물처럼 느껴질 수도 있겠다. 아니면 머리가 다섯 개 달린 물고기로 생각할지도. 그렇다면 수면 위에 떠 있는 돌배를 아기 게들은 무엇으로 생각할까. 

계곡 수면 위에 노랗디 노란 돌배는 큰 달처럼 보인다. 까만 밤에서 노란 빛깔이 스며든 계곡 바닥은 환하기만 하다.시간이 흘러 노랗고 환한 돌배가 계곡에 풍덩 떨어진다. 아빠와 아이 게들은 돌배 스스로 바닥으로 내려오기까지 기다리기로 한다. 

미야자와 겐지의 <돌배>는 돌배나무 옆 계곡 안 풍경을 아기 게들 시선으로 그리며 다채로움이 깃든 하나의 세계로 표현하고 있다. 여러 존재들이 오고 가며, 삶과 죽음이 교차하며 수수께끼 같은 일이 벌어지는 곳. 다른 시선을 가지면 새로운 세상이 펼쳐진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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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소원은, 나였다
곽세라 지음 / 앤의서재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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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원이 무엇이냐 물으면 지금 나에게 없는 것을 제일 먼저 떠올린다. 평범하고 익숙하고 뻔한 것은 소원이 될 수 없다. 그런데 소원이 자기 자신이라니! 제목부터 눈에 띈다. 앞표지에 적힌 "인생의 절벽" "말기암 진단"이라는 말에 멈칫한다. 이 책을 읽으며 나는 얼마나 많은 눈물을 흘려야할까. 별명이 수도꼭지인 나는 벌써부터 눈물이 그렁그렁하다. 작가는 고통의 과정을 겪었고 어쨌든 살아났고 이 책을 출간할 정도로 건강하다는 사실, 그 잠정적 결말이 해피앤딩이라는 안도감에 읽기도 전부터 감격하고 있다. 


"당신이 눈물이 많은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요즘 나는 강단 있고 굳센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한다. 내가 아직 겨울을 나고 있는 중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냥 함께 울어줄 마음 약한 사람에게 끌린다." 


프롤로그 첫 문장을 읽자마자 작은 눈에 가득 맺혔던 눈물이 주루룩 흘렸다. 나는 충분히 같이 울어줄 사람이고, 그런 나에게 끌린다니? 마음이 몽글몽글 피어올랐다. 그런데 아직 겨울을 나는 중이라고 하니 또 마음이 쓰였다. 완쾌되지 못했다는 말일까. 기대반 걱정반 책을 읽었다. 요동치는 이야기와 수려한 문장에 빨려들 듯 읽다가, 자주 책을 내려놓고 얼굴을 감싸며 꺼억꺼억 울었다. 한 손에는 눈물을 닦으며 다른 한 손에 있는 플래그를 떼서 끝도 없이 책에 붙여댔다. 순간, 내가 조금 잔인하게 느껴졌다. 격하게 반응하면서 동시에 이건 너무 주옥같아 라며 수거하듯 문장을 낚아채는 나. 상상하기 힘든 고통을 겪어낸 작가가 내밀하게 쏟아놓은, 삶을 빛내는 문장들 앞에 나는 좀 이기적인 인간이 되어버린 것 같았다. 부끄럽지만 그만둘 수가 없다. 저를 부디 용서해주세요. 


"고통은 비처럼 주룩주룩 내렸다. 고통은 안개처럼 스멀스멀 차올랐다. 그러다 문득 생각났다는 듯 번개처럼 번쩍이며 내 몸을 태웠다. 아니, 말을 잘못했다. 고통은 그렇게 시적으로 날 괴롭히지 않았다. 가장 악의적이고 무례한 방식으로 날 허물어뜨렸다. 내가 아직 집 안에 있는데 벽에 쇠망치질을 해대는 철거반 깡패처럼. 책 해머로 콘크리트를 부수는 소음 같은 아픔이 끊임없이 내 뼈를 울었다. (...) 고통이 넘실대는 걸 멈출 수만 있다면 무엇이든 하고 싶었다. 그리고 나의 인생이란 것이 얼마나 하찮은 것이었는가를 깨닫는다. 아름다움의 반대말은 추함이 아니라 고통이었다. 고통받는 것은 아름답지 않다. 아름다운 고통이란 없다."(p.76)


곽세라 작가는 카피라이터로 일하다가 세계를 여행하며 많은 사람들에게 치유와 울림을 선사하는 힐링라이터로서 살고 있다. 2021년 어느 날초거대 말기암 환자가 되었고 곧바로 21센티미터 (간)암 덩어리를 제거하는 수술을 받고 깨어났지만 극심한 고통에 시달린다. 다른 장기로 퍼진 암을 제거하기 위해 항암치료도 받으며 또 다른 결의 아픔을 겪는다. "삶과 죽음 사이를 떠도는 섬" 과 같은 자신을 견디고, "죽어간다고 하기엔 이렇게 멀쩡하고, 살아있다고 하기엔 너무 허술"(p.147)한 상태를 마주해야했다. 엄청난 수술을 이겨내고 깨어난 것만으로도 고통이 큰데 정신적 트라우마까지 겪어내는 일은 뭐라고 설명하기도 부족할만큼 어려움의 연속이다. 


"의료진들은 거의 흥분한 것처럼 보였다. 그들은 '왜 그 큰 종양이 생겼을까'보다 '그 큰 종양을 가진 사람이 왜 아직 살아있을까'에 더욱 큰 관심을 보이는 듯했다.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처음엔 '왜? 왜 이런 게 생겼지? 왜 내가 죽게 된 걸까?' 하고 온몸으로 부르짖었지만 언제부턴가 '그런데 왜 내가 살아있지?'라고 묻게 된 것이다. 살아남은 김에 나는 거대한 실험을 시작하기로 했다. '살아있어 보기' 실험이었다. 몸속이 갈가리 찢긴 채로 살아있어 보기."(p.119)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작가의 '살아있어 보기 실험'은 성공적이다. 사는 게 낯설고 두려웠던 저자는 말기암 생존자 모임에 만난 친구와 상담사의 도움으로 하나의 선택을 한다. "죽음을 부르는 유일한 병은 삶이다. 살지 않으면 죽지 않는다. 이미 그 병이 깊었으니 나는 '더' 사는 것을 택했다"(p.202) 살아가고 있지만 한편으로 우리는 죽어가고 있으며 삶과 죽음은 어쩌면 동전의 양면과 같은 것. 삶과 죽음을 양 극단에 놓고 행복과 불행을 따지는 생각부터 다시 돌아보게 된다.


"정말 항구를 떠나야 할 시간이 임박했다는 걸 알게 되면 버킷리스트는 의미를 잃는다. 정말 마지막 순간이 오면, 마음은 가보지 못한 길을 가려 들지 않는다. 대신 추억 속 그 길을 다시 걷고 싶어 하고 내가 알던 이들을 한 번 더 보고파 한다. 만약 마지막 한끼 식사를 하고 삶을 떠나야 한다면 난 망설임 없이 비오는 날이면 먹었던 엄마의 감자 수제비를 택할 것이다. 그렇게 버킷리스트가 사라지고 앙코르 리스트가 떠오른다. ICU에서 실날같이 위태위태하게 이어지는 마지막 하루들 속에서 나는 목이 메도록 앙코르를 불렀다.(...) 나는 그런 소소하고 하찮은 것들을 한 번 더 누리고 싶어 미칠 것 같았다. 앙코르, 너무나 내 식으로 엉망진창인 그날을 한 번만 다시 살게 해줘!" p.221


그래, 앙코르 리스트를 만들고 오늘 당장 해봐야겠다. 죽기 전에 가져 갈 좋은 추억과 기억을 많이 만들기 위해, 충분히 많이 즐기고 자주 만났으니 이제 나는 떠난다고, 그렇게 말할 수 있다면... 문득, 작가가 죽음의 문턱에서 겪어낸 이야기와 통찰을 이렇게 나의 다짐으로 가져오는 게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든다. 또한 이 책 덕분에, 주어진 삶 그대로 충분히 빛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작가한테 감사하다는 말도 전하고 싶다. 역동적이고 강렬한 독서체험을 통해 수면위에 떠오르는 삶에 대한 진실을 두 손 가득 움켜쥔 기분이다. 


*도서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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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고 천박하게 둘이서 1
김사월.이훤 지음 / 열린책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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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상하고 천박하게>(김사월, 이훤, 열린책들, 2025)은 가수 '김사월'과 시인 '이훤'의 일상과 예술에 대한 대화를 엮은 에세이다. ​ 


이훤 시인에 대해서는 조금 알고 있었다. 나보다 한참 어린 교회 동생이 미국 유학 중에 알게 된 오빠이라며 이 분의 시집을 건네받은 적이 있다. 당시 시집까지 읽을 여력이 없어서 받아놓고는 구석에 두었다. 시집과 시에 관심을 두기 시작하면서 특이한 이름의 이 시인의 이름도 간간이 들렸다. 그러다 애정하는 이슬아 작가와 같이 책을 낸 남자 시인이 있다는 것, 그 책과 관련한 기사인지 (누구의 블로그인지) 그 글을 읽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에 뭔가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꼈다. 그러다 두 사람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들었다. 슬아 작가는 결혼은 안 할 줄 알았는데(왜 그렇게 생각했는지는 모르겠으나) 결혼한다고 하니 아쉬움이 들기도 하면서 분명 상대방은 그 시인일 것이라고 추측했다. 찾아보니 맞았다. 나와 전혀 아는 사이는 아니지만 마냥 반갑고 신기했고 내 일처럼 흥분? 되었던 순간이 기억난다. ​


이 책을 통해 김사월 가수를 알게 되었다. 서평단에 참여하게 되고 책을 기다리면서 멜론에서 이 가수를 검색하여 음악을 들었다. 내가 좋아하는 목소리였다. 청량하면서도 경쾌하고 그러면서도 약간 슬픈 듯, 그러나 가라앉지 않는 느낌이었다. 음악 스타일도 그녀 목소리와 비슷했고 내가 곧 좋아할 음률이었다. 이훤의 친구인지는 전혀 몰랐지만 서로 주고받는 글에서 서로에 대한 애정과 신뢰를 느낄 수 있다. 솔직하면서도 과하지 않는, 재미있고 유쾌한 관계. 남녀를 떠나 이런 우정을 가진다는 건 큰 행운인 것 같다. 서로 지극히 존중하면서도 아주 친밀한 거리감도 있다. 예술가라는 공통점도 있겠지만 그동안 서로 쌓아왔던 시간과 정성 어린 손길의 결과가 아닌가 싶다. 


 ​ "진짜 자기 이야기를 하는 사람에게는 주변 공기가 부드러워지는 느낌 아니? 네 글에서 그런 냄새가 나서 넌 사진을 참으로 사랑하고 시기하고 아낀다고 생각했어." p.23 ​ 


나는 내 주변 공기를 부드럽게 하는 사람일까. 문득 나와 나의 친구들을 돌아본다. 나는 늘 바쁜 사람 (그래서 너는 알아서 잘 사는 사람이니 굳이 안 챙겨도 되겠지)라는 뉘앙스의 말을 자주 듣는다. 주변 공기를 부드럽게 하기도 전에 사라지는 존재인 것 같다. 나는 진짜 나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일까. 진짜 이야기는 숨기고 그럴듯한 말만 늘어놓는 사람, 그래서 책 이야기를 하나보다. 책은 나를 포장하기에 좋은 수단이기에. 가끔 나의 이런 모습을 까발리듯 지적하고 대놓고 무시하는 사람을 만난다. 처음에는 기분이 나빴다가 이내 수긍한다. 적나라하게 다 지켜보고 있으니깐. 그 사람이 바로 남편이다. 저자들만큼 애틋한 우정을 과시하지만 못하지만 남편과도 편지와 대화를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다른 분위기와 결을 자랑하는 우정을 보여줄 수 있지 않을까. 혼자 상상하며 웃어본다. ​


 책에는 예술가로서 삶의 기쁨과 슬픔을 그려낸다. 시인이자 사진 전시를 하는 이훤과 가수이자 공연을 하는 김사월은 각자의 영역에서 활발하게 활동하는 예술가이다. 이훤은 이 집필 당시 시집과 산문을 출간하고 김사월은 4집 앨범을 발매한다. 새로운 작품을 대중 앞에 내놓고 평가를 받는 과정에서 롤러코스터를 타야 하는 숙명의 시간을 맞이하게 된다. 극찬의 반응에 가슴 뛰고, 화려한 무대 위의 자신의 모습이 자랑스럽다. ​ 


"공연이 끝난 다음 날 아침엔 정말 세상이 장밋빛 같아. 인생의 모든 고통을 다시 겪는다 해도 다시 이 삶을 살고 싶다는 낭만에 빠진다. 일상으로 착륙하는 데에 시간이 걸린다." p.58 ​ 


하지만 1-2개월이 지나면 언제 그랬냐 하듯이 평범한 하루를 보낸다. 2년 동안 쏟아부었던 것을 2개월 동안 드러내 보이고 전부 사라진 상황을 마주할 때면 우울과 상실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게다가 재능 넘치는 동료들을 볼 때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은 스스로를 견디는 일은 인생 최대 과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왕성한 동료들 볼 때 여전히 어떤 날은 불안의 종이 울려. 그때마다 찬찬히 그 앞으로 가서 충분히 듣고 종을 땅에 내려놓거나 안 보이게 덮어 둔다. 며칠 지나 돌아가면 없어졌기도 하더라. 그리고 그럴수록 좋은 일 생긴 동료들을 힘껏 축하해 준다. 그들이 잘 되는 게 나에게도 이로운 일임을 기억하려고 애써. 친구들과 서로 영향받으며 함께 더 나은 작업자가 되는 게, 모두 정체된 우리보다 훨씬 낫다. 그리고 떠올려 내고 만다. 우리는 다르게 탁월하다. 나만 나처럼 만들 수 있다." p. 28 ​


 "우리는 다르게 탁월하다. 나만 나처럼 만들 수 있다" 이 말은 예술가 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무엇보다 나 자신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다. 수시로 비교하고 평가하는 우리. 누구 엄마, 어떤 독서가, 어느 글쓰기샘 등 모든 영역에서 비교의 말이 넘쳐나고 위축과 불안이 밀려오곤 한다. 불안의 종소리를 충분히 듣는다는 저자의 말에 안도감이 느꼈다. 회피하거나 좌절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 그리고 더 나은 자신이 되기 위해 우리는 충분히 스스로 다독이고 추스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 


<고상하고 천박하게>는 두 예술가의 전방위적 대화를 담아놓은 책이라고 할까. 대부분 예술 이야기지만 일상과 생활, 우정, 관계에 대한 다양한 주제도 풀어놓고 있다. 고상하면서 천박하고 솔직하면서도 진지하여 여러 재미를 얻을 수 있다. 둘 다 뛰어난 문장가여서 그런지 밑줄 문장이 꽤 된다. 여기에는 많이 올리지 못했지만. 흥미진진한 두 작가의 세계를 탐험하고 온 것 같다.


*출판사제공, 솔직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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