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가까운 미술
조숙현 지음 / 아트북프레스 / 2024년 12월
평점 :

미술은 늘 어딘가 멀리 있어 가까이 하기에는 먼 당신처럼 느끼기 쉽다. 전시장의 높은 벽, 낯선 해설, 생경한 이름들 사이에서 현대미술은 종종 우리 삶과 무관하게 스쳐지나간다. 하지만 조숙현의 <가까운 미술>은 그런 미술을 다시 우리의 눈높이로 끌어온다. 오랜 기간 동안 전시기획과 평론의 현장을 지켜본 저자는 한국 현대미술의 다양한 풍경을 에세이의 형식으로 담아낸다. K-아트의 정체성과 세대 간의 감각 차이, 공공미술의 역할, AI와 예술의 경계 등 현재 미술계에서 가장 활발히 논의되는 주제들을 저자 특유의 시선으로 풀어낸다.
"현대미술은 우리의 삶을 윤택하게 한다기보다는 당혹스럽게 만들고, 예측 불가능한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의 진짜 삶이 그러하듯이."
(p.16-17)
저자는 동시대 미술과 작가들을 성실하게 소개한다. 이들은 기존 현대미술의 관점을 부수고 "어떤 것도 예술이 될 수 있다"는 새로운 시선을 알리면서 회화, 조각, 설치 등의 구분을 탈피한다. 우리 삶과 결부된 예술의 가치를 확장시키는 작업임에도 합의된 정의가 없다보니 이들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쌓여 작품까지 폄하되는 것이 현실이다. 이에 저자는 이런 상황에 굴하지 않고 현대미술의 진가를 더 열심히 알리고 글을 쓴다.
"반면, 동시대 작가는 우리와 같은 시대를 살아가며 그들이 바라보는 세계와 사회에 대해 발언한다. 그들은 불가능에 도전하고 관습에 저항한다. 그들의 목적은 관객을 작품으로 매혹시키거나 예술로 즐겁게 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의 작품이 '문제작'으로 받아들여지며 관객을 충격과 논란에 빠트리게 하는데 몰두할 수도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관객이 잊고 있던 진실-우리의 사회와 삶이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을 마주하게 한다. 바로 이 점이 동시대 미술이 기존 미술과 다른 차이점이며, 나를 그토록 현대미술의 매력에 빠져들게 만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p.36
저자가 소개한 한 작가의 활동이 무척 인상적이다. 2021년 올해의 작가로 선정딘 '최찬숙 작가'는 자신과 어머니 관계를 다룬 초기 작품을 너머 "자신과 같은 입장이라고 여겨지는 '밀려나고 새어 나오는 존재들', 즉 이주 여성에 대한 글로벌적인 접근과 아티스틱한 리서치로 작업"을 완성했다. 저자는 "개인의 정체성과 타인의 서사를 봉합하는데 성공"(p.56)했다고 평가한다.
작품을 이야기하는 저자만의 방식에서 독자는 자연스럽게 ‘보는 눈’을 키울 수 있다. 저자는 미술작품을 평가하거나 해석하기보다,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가’에 집중한다. 그가 제시하는 시선은 감상자의 위치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타인의 감각에 닿도록 이끈다. "예술은 타인을 이해하는 감각"이라는 저자의 고백처럼, 미술이란 결국 다른 사람의 세계를 내 안으로 들여놓는 시작점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한 세계를 천천히 들여다보는 동안, 내 안의 감각 또한 조용히 깨어나게 된다.
최근에 예술에세이 수업 때문에 자주 전시회에 갔다. 가만히 작품을 보다보면 잊고 있었던 과거의 어느 순간이 떠오르고, 궁금하지도 않았던 누군가가 갑자기 생각난다.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작가는 어떤 과정을 거치고 무슨 사유를 했을지 혼자 상상하기도 한다. 이제는 내 주변의 모든 사람과 자연, 상황이 작품처럼 느껴진다. 한 발자국 물어서서 관찰하게 되고, 섣부른 판단과 평가보다 가만히 지켜보는 나를 발견한다. 요즘 이런 내 모습이 마음에 든다.
<가까운 미술> 덕분에 동시대 작가들의 작품들을 많이 알게 되어 좋았다. 기회가 되면 꼭 직접 가서 보면서 그들을 응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