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정천 가족 1 유정천 가족 1
모리미 토미히코 지음, 권일영 옮김 / 작가정신 / 2024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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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정천 가족 1


너구리가 주인공인, 그리고 그 너구리가 다양한 것들로 변신하는 아주 신선한 판타지 소설이었다. 그런데 더 놀라운건 이런 힙한 스토리가 이미 10년도 더 지난 소설이었고 이번에 개정판으로 새롭게 나왔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주인공 너구리 가족들을 사람들이 조연으로 받쳐준다는 점도 흥미로웠다. 이야기는 너구리 가족의 가장이 죽고 남겨진 가족들의 좌충우돌 분투기였다. 주인공 ‘나’는 다다스 숲에 사는 너구리 명문 시모가모 가문의 삼남 ‘야사부로’다. ‘나’는 혈연에 연연하지 않고 싶지만 왠지 그것을 거부할 수 없는, 그래도 늘 뒹굴뒹굴 놀고만 싶은 ‘보헤미안 너구리’다. 


그 외에도 책임감은 강하지만 위기의 순간마다 허둥거리는 못난 큰형, 너무도 소극적이어서 급기야 우물 속 개구리로 둔갑해 히키코모리가 되어버린 더욱 못난 작은형, 그리고 아래로는 언제나 가족을 불안하게 만드는 심약한 동생이 있다. 


개인적으로도 좋아하는 관광지인 일본 교토를 배경으로 다양한 캐릭터로 변신하는 너구리라는 설정 때문에 펼쳐질 이야기는 무궁무진하다. 거대한 전철, 어여쁜 여고생, 삭은 대학생, 검은 옷의 왕자, 무시무시한 호랑이 등 작가의 상상력도 대단한다. 


덴구는 인간을 잡아가고, 인간은 너구리를 전골로 만들어 먹고, 너구리는 덴구를 함정에 빠뜨린다. 이렇게 수레바퀴처럼 빙글빙글 돈다. 돌아가는 수레바퀴를 보고 있으면 그 무엇보다 재미있다. 나는 이른바 너구리지만, 일개 너구리임을 부끄러이 여기며 덴구를 아득하게 동경하고, 인간 흉내도 무척 좋아한다. 따라서 내 일상은 눈이 팽팽 돌 지경이라 따분할 틈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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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 진짜 사랑을 잊은 한국 사회, 더 나은 미래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가?
김태형 지음 / 갈매나무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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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짜 사랑 권하는 사회


가짜 사랑이란 키워드에 솔깃해서 펼쳐든 책이다. 저자는 진정한 사랑을 막는 근본적인 원인으로 사회를 지목한다. 사랑은 보통 개인적인 감정으로 여겨지며, 사랑에 실패하는 이유 역시 개인적 문제로 치부되곤 하지만 이는 사회라는 근본적 원인을 은폐하는 것에 불과하다.


심리학 책인것 같으면서도 사회학 책 같은 내용인데 자세히 보니 저자의 직업이 사회심리학자였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으로 시작하지만 이에 대한 한줄기 빛과 같은 대안도 제시한다. 그리고 진정한 사랑이 사회개혁의 원동력이 된다는 색다른(?) 주장이 아주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가짜 사랑의 진짜 이유를 불안이 초래하는 이기주의와 공동체 붕괴라고 본다. 책의 초반부에서는 오늘날 한국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가짜 사랑의 면면을 살펴보며 그 폐해를 제시한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서 주류 심리학에 대한 거침없는 문제제기를 한다. 가짜 사랑의 유형과 원인을 분석하며, 주류 심리학이 왜 사랑을 불가능하게 만드는 진짜 원인을 숨기는지 알아본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후반부에 진짜 사랑의 의의를 해설하고 진정한 사랑이 왜 사회개혁의 원동력이 되는지를 설득력있게 풀어내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다.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보장하면 사람들은 삶을 각자도생 방식으로 개척하기보다, 타인과 사랑하고 협력하면서 해결해나가는 공동체적 방식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고 그 방식이 훨씬 더 낫다는 점도 확인하게 될 것이다. 고립된 상태에서 생존을 위해 투쟁해야만 하는 삶은 자기 발등에 떨어진 불부터 꺼야 한다는 절박감을 강요하고, 이웃과 공동체에 눈을 돌리기보다는 자기 자신만 쳐다보도록 시야를 좁혀 필연적으로 개인 이기주의를 강제한다.


그래서 결국 결론은 사랑이다. 사랑은 사람들을 연결하고 모두를 하나로 만들어주어 인간을 힘없고 나약한 개인에서 벗어나 위대한 존재로 성장하도록 해준다. 인간이 서로를 더 사랑할수록, 인간을 사랑하는 사람이 많아질수록 세상을 바꾸는 인간의 힘과 능력도 성장한다. 이것이 바로 사회역사의 진보에서 사랑이 차지하는 역할이다.


그 외에도 기본사회라는 개념으로 우리 사회의 미래를 제안한다. 고립적 생존 불안을 완화하거나 없애려면 기본사회를 건설해야 한다. 기본사회란 국가가 국민의 생존을 책임지며 보장하는 사회이다. 기본소득, 기본직업, 기본대출, 기본주택 등은 물론이고 무상교육, 무상의료, 필요하다면 무상주택 제도 등을 통해 국민의 생존을 국가가 책임져야 한다. 이렇게 되면 사람들은 기초적인 생존 불안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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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소설, 향
조해진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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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을 지나가다 - 조해진


요즘 모든 작품들을 열심히 정주행하고 있던 조해진 작가의 신작이 또 나와 반갑게 집어들었다. 세상의 모든 엄마와 딸들에게 바치는 헌사라는 책소개에 솔깃하며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역시나 읽으며 부모님과 결국엔 작별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에 새삼 슬퍼졌고 좀 더 많은 시간을 부모님과 함께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렇다고 엄마와의 이별로 끝나는 소설은 아니었다. 엄마의 죽음, 그 이후에 주인공의 아주 밀도높은 심리묘사와 사유가 일품이었던 소설이다.  


존재의 형태가 바뀌었을 뿐, 사라진 건 없었다.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녹은 눈과 얼음은 기화하여 구름의 일부로 소급될 것이고 구름은 다시 비로 내려雨水 부지런히 순환하는 지구라는 거대한 기차에 도달할 터였다. 부재하면서 존재한다는 것, 부재로써 현존하는 방식이 있다는 것, 이번 겨울에 나는 그것을 배웠다. 슬픔이 만들어지는 계절을 지나가면서, 슬픔으로 짜여졌지만 정작 그 슬픔이 결핍된 옷을 입은 채, 그리고 그 결핍이 이번 슬픔의 필연적인 정체성이란 걸 가까스로 깨달으며


그리고 동지와 대한, 우수로 이어지는 세 절기로 챕터를 나눠 풀어내는 방식도 인상적이었다. 절기마다 모습을 달리하는 자연을 조해진 작가 특유의 스타일로 그려낸다. 그렇게 커다란 상실의 슬픔 속에서도 또 다른 아픈 이를 향해 곁을 내어주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다.


개인적으로는 엄마는 없지만, 그만큼 더 선명해지는 엄마의 흔적들에 대한 대목들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사실 옷은 시작에 불과했다. 엄마의 양말과 머플러, 엄마가 직접 겨자색의 굵은 실로 뜬 털모자에도 내 손은 뻗어갔다. 엄마의 물건에서 구불거리는 흰 머리카락을 발견한 날이면 핀셋으로 조심조심 떼어내 빈 유리병에 모으기 시작했는데, 어느새 그건 그 나름대로 즐거운 취미가 됐다. 엄마가 쓰던 비누, 스킨과 로션, 영양크림을 나도 썼고 엄마에게는 애장품이던 금목걸이라든지 팔찌를 하고 산책을 나간 적도 있었다. 내 몸에서는 엄마의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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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정보라 환상문학 단편선 2
정보라 지음 / 퍼플레인(갈매나무)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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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


요즘 가장 핫하고 개인적으로도 꼭 챙겨보는 정보라 작가의 환상문학 단편선이다. 이미 올해 초 나온 첫번째 단편선에 이어 이번에도 여러 장르문학 지면에서 발표되었던 작품 10편이 엮여있는 형식이다. 


열편이나 되지만 막상 읽어보면 단번에 서너편씩 읽게 되는 즐거운 페이지터너였고 욕망과 공포의 심연을 마주하는 하이퍼 리얼리즘 ‘보라 월드’의 서막이라는 책 소개가 전혀 과장이 아니었다. 


표제작이면서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나오는 〈죽음은 언제나 당신과 함께〉는 죽음과 원죄에 관한 깊은 여운을 남긴다. 특히 정보라 작가가 독자들과 공유하고 싶은 메시지가 직설적으로 나타나는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타인의 고통을 즐기는 자들에게 다른 사람은 인간이 아니다. 고통받고 괴로워하며 가해자에게 도취감을 제공해주는 오락의 대상일 뿐이다. 그러므로 그들은 잊어버린다. 하나의 도취감이 한계에 도달하여 더 이상 재미를 느낄 수 없게 되면 그들은 잊는다. 그리고 다른 오락거리를 찾아 나선다. 이유 없는 고통을 당한 사람은 잊지 않는다. 자신에게 고통을 주며 즐긴 사람에 대한 증오는 사라지지 않는다. 언제까지나.


이야기 곳곳에는 이처럼 ‘산 자’와 ‘죽은 자’의 목소리가 태엽처럼 맞물려 있다.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는 삶과 죽음의 경계를 쉼 없이 흔들며 ‘그대는,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 그리하여 마침내 어떤 표정으로 죽음을 맞이할 것인지’를 묻는다.


그 외에도 인간의 기이한 욕망을 내밀하게 그려낸 〈리발관離拔館의 괴이〉, 타의에 휘둘려 자신의 삶을 영위하지 못하는 이들은 어떤 희극을 감내해야 하는지, 탐욕과 집착으로 점철된 삶의 현실 속 지옥은 어떤 빛깔인지 등 다양한 메시지를 담은 열편의 환상문학을 만나볼 수 있었다. 


책의 말미에 만나볼 수 있는 작가의 말도 인상적이었다. 독자님들의 세상이 너무 지나치게 기괴하고 너무 오랫동안 낯설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그리고 평온하고 차분한 상황에서 이 책을 읽으시는 분들께는 그냥 잠시 이상한 세계를 들여다보는 경험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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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착각, 올바른 미래 - AI, 챗GPT… 기술에 관한 온갖 오해와 진실
박대성 지음 / 인북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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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착각, 올바른 미래 


요즘 시중에 AI, 챗GPT 등 첨단기술과 관련된 책이라면 넘쳐날 정도인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기술에 관한 온갖 오해와 진실을 착각의 역사를 알면 기술이 보인다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흥미롭게 풀어낸다는 점에서 단연 돋보인는 읽을거리다. 


특히 이 책의 저자는 메타(Meta) 전 대외정책 부사장과 로블록스(Roblox) APAC 정책 총괄을 역임한 한국계 글로벌 기업 임원으로서 빅테크 기업에 근무하며 직접 고민하고 경험한 내용을 바탕으로 기술에 대한 광범위한 역사와 문화에 대한 인사이트를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이 책에서 두번째 챕터의 기술에 관한 5가지 법칙에 대한 내용인 인상적이었다. 1 본능의 법칙: 인간은 기술 변화를 두려워한다. 2 비용의 법칙: 모든 기술에는 대가가 따른다. 3 경쟁의 법칙: 혁신 기술은 갈등을 부른다. 4 문화의 법칙: 기술에는 창조자의 정신이 깃든다. 5 시간의 법칙 기술의 가치는 미래에서 판단한다.


역사적으로 새로 등장하는 기술은 항상 기회이자 위협으로 간주 되었다. 18세기 영국의 산업혁명이 대표적인 예다. 제1차 산업혁명이라고 불리는 이 시기는 수많은 자본가를 탄생시키며 시장경제를 꽃피웠다. 그러나 증기기관을 이용한 공장생산체제의 개막은 노동 계층에겐 고난의 시작이었다. 분노는 이내 계급투쟁을 불러왔다. 투쟁의 대상은 자본가, 투쟁의 방식은 그들의 집에 불을 지르고 소중한 기계를 파괴하는 것이었다. 결과는 폭동이었다. 이것이 우리가 잘 아는 ‘러다이트 운동(Luddite Movement)’이다. 그러나 러다이트 운동은 오래가지 못했다. 영국 정부가 폭동을 일으키고 범죄를 저지른 이들을 사형 등의 가혹한 벌로 다스리자 운동은 빠르게 정리되었다.


그 외에도 테크노 디스토피아, 위험한 AI보다 더 위험한 사람들, 로봇 때문에 기본소득을 달라는 사람들, 노인을 위한 키오스크는 없다, 전화 통화가 두려운 MZ세대, 인간이 AI를 사랑할 때 등의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다. 


디지털 기술에 기반한 서비스는 누구에게나 편리하게 열려있어야 한다. 택시를 부르는 앱, 장을 대신 봐주는 서비스, 직접 가지 않아도 화상으로 들을 수 있는 온라인 강의 등은 이용자의 나이를 따져서는 안 된다.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로 표현되는 21세기 문해력을 개선하지 않고서는 디지털 대전환은 불가능하다. 어르신들이 기술과 기계를 편히 다룰 수 있을 때야말로 진정한 ‘사람이 중심인 제4차 산업혁명’이 가능해진다. 아무리 사람이 기술보다 중요하다고 백날 떠들어 봐야, 하물며 기술과 기업이 나쁘다고 욕을 해도 우리는 아날로그 시대로 되돌아갈 수 없다. 결국 디지털 격차는 불편의 문제에 그치지 않고 한국 사회 전체의 위기로 이어진다. 디지털 약자가 낙오자가 되지 않도록 디지털 전환과 디지털 역량 교육을 동시에 추진해야 하는 까닭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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