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룸 소설, 잇다 3
이선희.천희란 지음 / 작가정신 / 2023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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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룸


1930년대 일제강점기에 활동했던 이선희작가와 현재 우리 문학계에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는 천희란 작가의 작품이 멋지게 어우러진 ‘소설 잇다’ 시리즈의 신선한 기획이다. 특히 이번 책은 여성의 삶에 대한 서사에 근대 여성 작가와 현대 여성작가의 방식을 비교해보는 즐거운 시간이 되었다. 


책을 펼치면 먼저 이선희 작가의 근대소설 두편을 만나볼 수 있는데 개인적으로는 평소 현대소설 위주로 읽다보니 근대의 색다른 배경와 색다른 느낌이 좋았고 우리의 근대소설이 친근하게 다가왔다.  


단편 ‘계산서’에 이어지는 장편 ‘여인 명령’은 가부장제에 대한 비판의식이 놀라웠고 남편의 목숨 값을 당당히 청구하고 연인 사이였던 남자에게 자신의 아들을 입적할 것을 명령한다는 설정이 인상적이었다. 


나는 얼마 동안 이곳에 더 머무를 것이다. 내 계산서를 완전히 청산할 때까지 이 땅에 더 있을 것이다. 이 땅은 마적이 있어서 좋고 돼지가 죽은 아이 시체를 물고 뜯어 먹는다는 이야기가 있어서 좋고 죽음 같은 고독이 있어서 좋다. -계산서 중


천희란 작가의 분량에서는 표제작이기도 한 ‘백룸’과 ‘우리는 이다음의 지옥도 찾아내고 말 테니까’라는 도발적인 제목의 에세이도 읽어볼 수 있었다. 미궁 탈출 게임을 통해 본 ‘여성’, ‘청년’, ‘레즈비언’에 대한 이야기가 아주 인상적이었다. 


백룸은 일종의 미궁이다. 현실의 이면이라고도 할 수 있고, 숨겨진 장소라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공포 영화에 흔히 등장하는 기괴하고 뒤틀린 현실의 외형을 갖지는 않는다. 백룸에서는 그저 평범하고 일상적인 공간이 무한히 펼쳐진다. 불규칙한 벽들로 이루어진 미로 같은 복도, 콘크리트로 된 지하주차장, 잘못 진입한 상점가의 전용 통로 따위가 계속해서 이어지는 세계다. 어두침침하고 축축한 복도를 따라가는 내내 자신의 위치나 시간의 흐름을 파악할 수 있는 장치는 아무것도 없다.


그 외에도 선우은실 문학평론가의 해설은 이 작품의 의미를 되새기게 하여 책을 다시 한번 읽고 싶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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