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현준의 인문 건축 기행
유현준 지음 / 을유문화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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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저자 건축가 유현준은 개인적으로는 예전 TV프로그램 알쓸신잡에서 처음 알게 되었고 나오는 책마다 챙겨 읽게 되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유튜브 채널 셜록현준의 열혈 구독자였고 그래서 이번 신간이 무척 반가웠다. 


솔직히 여태까지 나온 책들을 모두 읽어본 독자로써 건축에 대해 또 할 얘기가 남아있는지 의아하기도 했고 유튜브 내용을 정리한 책인가 싶기도 했다. 하지만 막상 책을 펼쳐보니 아주 흥미로운 기획의 책이었다.  저자가 감명받거나 영감을 얻은 30개의 건축물을 풍부한 사진자료와 함께 친절하게 해설하고 안내하는 내용이었고 평소 궁금했거나 전혀 모르고 있었던 다양한 건축물들을 즐겁게 만나볼 수 있었다. 


르코르뷔지에의 빌라사보아부터 퐁피두센터, 시티그룹 센터, 라 투레트 수도원, 낙수장, 빛의 교회, CCTV 본사 빌딩, 루브르 아부다비까지 유럽, 북미, 아시아 등지의 대표적인 건축물들의 평면도, 조감도, 실제사진과 함께 건축학적 의미, 비하인드 스토리까지 그야말로 알찬 구성이었다. 


또한 건축한 전공자 뿐만 아니라 나같은 일반 대중들도 즐겁게 읽을 수 있었고 읽다보면 머리속에서 저자 유현준이 직접 얘기해주는 것 같은 음성지원(?)도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이태리 베네치아의 퀘리니 스탐팔리아에 대한 내용에서 일종의 ‘공간 통역사’라는 키워드가 인상적이었는데 베네치아의 물 높이는 항상 변화했다. 이런 변화를 공간의 변화를 통해 좀 더 예민하게 느낄 수 있게 해 주는 건축물이 ‘퀘리니 스탐팔리아’다. 국내에도 이런 공간통역사라고 할 수 있는 잠수교가 있다. 잠수교는 미세한 자연의 변화를 공간의 변화로 치환해서 우리가 알아채게 해 주는 장치다. 만약에 ‘잠수교’가 아주 높은 교각으로 만들어졌다면 그런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낮은 높이의 교각 디자인이 자연의 변화를 공간적으로 변환시켜 주는 기능을 만들어 냈다. 


그 외에도 저자는 시티그룹 센터가 가장 훌륭한 오피스 건축물로 꼽는다. 건물 하나의 디자인에 사회적 이해, 경제적 혜안, 타협과 중재 능력, 창의적 생각, 구조 기술력, 법규의 기발한 활용, 친환경 사고 등등 이루 헤아리기 힘들 정도의 장점들이 종합된 건축물이기 때문이다. 시티그룹 센터는 주변의 건물보다 20층 가까이 높다. 높은 건물을 짓고 싶어도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땅의 크기가 작아서 지을 수 있는 연면적이 작아서일 수도 있고, 대지의 높이 제한 때문일 수도 있다. 이 프로젝트의 경우에도 개발 회사는 주변의 땅을 많이 매수해서 규모가 큰 건물을 짓고 싶어 했다. 하지만 문제가 하나 있었다. 바로 옆에 있는 오래된 작은 교회였다. 작은 교회들은 보통 근처에 있는 사람들이 찾아온다. 교회를 다른 곳으로 옮기면 성도들이 모두 난감해지는 상황이 올 수 있다. 그래서 이 교회는 땅을 팔고 떠나기를 거부했다. 개발 회사 입장에서 보면 결과적으로 ‘알박기’가 된 것이다. 나쁜 개발 업자였다면 이런 경우 조폭을 동원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건축가는 이런 난감한 상황에서 ‘공중권air right’이라는 건축법을 찾아냈다. 공중권은 토지와 건물의 상부 공간을 개발할 수 있는 권리로, 나아가 자신이 지을 수 있는 연면적을 다른 사람에게 팔 수도 있는 권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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