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 시골 수의사가 마주한 숨들에 대한 기록
허은주 지음 / 수오서재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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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비 내리는 날 다시 만나 


책 표지 디자인과 제목부터가 감수성 넘치는 이 책은 현직 시골 수의사인 저자의 에세이였다. 수의사를 하게 된 이유부터 병원 안에서, 병원 밖에서의 일상과 여러 에피소드들, 경험, 생각, 느낌들을 전문 작가가 아님에도 놀라운 필력으로 그려낸다. 



특히 넘쳐나는 반려견들과 펫샵, 유기견의 나라에서 동물권에 대한 사회적 담론도 날카롭게 지적하는 이야기들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들었다. 반려동물을 떠나보낸 보호자들의 죄책감과 슬픔, 괴로움 곁에서 무엇을 해줄 수 있을까. 개와 고양이를 택배로 사고팔고 반품까지 자유롭다는 충격적인 사실부터, 고속도로 위에서 운송 트럭 위의 닭과 눈이 마주치며 시작된 이야기, 우연히 들어간 소싸움대회에서 마주한 지옥 같은 장면들, 연간 800만 마리의 새들이 투명 벽에 부딪혀 죽어가는 현실들을 읽다보면 평소 내가 얼마나 동물권에 대해 무지했었는지를 알게 되었다. 


단순히 현직 수의사의 책이라고 알고 집어들었다가 허은주 작가의 의외의 이력에 눈길이 가기도 했는데 여성학을 전공하고, 한국성폭력상담소에서 활동하며 함께 세상을 바꿔나간다는 즐거움을 경험하기도 했고 성폭력 피해자 상담 활동도 했다고 한다. 그러다 “동물은 사람과 달리 진료할 때 말할 필요가 없다”는 이야기를 듣고, 덜컥 수의대 진학이라는 새로운 길을 선택하지만 수의사가 된 이후에 그는 또 다른 죄책감을 맞닥리게 되었다고 말한다. .


어떤 대목에서는 너무 충격적인 현실을 마주하며 나는 앞으로 절대 반려동물을 키우면 안되겠다는 생각까지 하게 되었다. 사람들이 선호하는 모양으로 만들기 위해 2개월 된 강아지를 어떠한 마취도 없이 귀를 잘라 명주실로 꿰맨 농장주, 자신의 개는 아파도 물지 않으니 마취하지 말고 빨리 꿰매라고 소리치는 보호자 등 그야말로 몰랐다면 알기 전보다 마음 편히 살 수 있을 이야기들을 마주했던 책이다. 


동물병원에 대한 어두운 이면도 알게 되었는데 의사가 아동 학대로 의심할 만한 정황을 확인하면 반드시 경찰에 신고해야 한다. 하지만 아직 동물병원에서는 의료진의 신고 의무가 제도화되어 있지 않다. 학대를 입증할 만한 직접증거 자료가 있어도 솜방망이 처벌로 끝나는 것이 동물 학대의 현실이다. 마취 없는 수술을 요구한 것이 학대의 증거라고 할 수는 없다. 그렇지만 “이 개는 내가 옆에 있으면 죽을 만큼 아파도 참는다”라는 그 남자의 말이 평소의 학대 정황을 강하게 의심하게 한다. 자기를 아프게 하는 상대를 공격하는 것은 모든 생명체에게 자연스러운 행동이다. 최소한의 자기방어는 생존 본능이기 때문이다. 죽을 만큼 아픈데 물지 않는 개는 없다. 하지만 학대받는 개는 죽을 만큼 아파도 물지 않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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