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과 루비
박연준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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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과 루비


박연준 시인의 첫 장편소설이다. 개인적으로는 평소 박연준 작가의 에세이를 무척 좋아했는데 이번엔 소설을 쓴다고 해서 의아하기도 했다. 이미 문예지 악스트에서 연재되던걸 일부 읽어보기도 했는데 이번에 단행본으로 나와 반갑게 집어든 책이다. 



읽으면 읽을수록 소설이 시 같았고 시인 박연준이 머리에 멤돌기도 했다. 책 제목인 여름과 루비는 주인공인 여름과 그의 친구 루비를 의미하기도 했지만 여름을 배경으로 하고, 붉은 돌 같은 거, 부수면 피 흘리는 거, 눈을 감아도 사라지지 않는 거, 가질 수 있지만 갖고 싶지 않은 거라는 루비 같은거라는 비유도 있다. 


또한 어쩌면 박연준 작가의 유년 시절에서도 유래된 이야기 아닌가 하는 의문이 자주 들었고 유년은 시절이 아니라는 대목에서 깊은 여운이 남기도 했다. 


사람들이 착각하는 게 있다. 유년이 시절이라는 것. 유년은 ‘시절(時節)’이 아니다. 어느 곳에서 멈추거나 끝나지 않는다. 돌아온다. 지나갔다고 생각하는 순간, 다 컸다고 착각하는 틈을 비집고 돌아와 현재를 헤집어놓는다. 사랑에, 이별에, 지속되는 모든 생활에, 지리멸렬과 환멸로 치환되는 그 모든 숨에 유년이 박혀 있다.


소설의 내용은 주인공 여름이가 루비를 어떻게 만났고 둘은 어떤 사랑을 했고 서로의 무엇을 지켜주었고 혹은 지켜주지 못해서 여름이가 결국 루비를 잃어버렸고 그래서 이렇게 찾는다고 내가 너를 찾고 있다고 외치는 소설이자 시, 그리고 목소리, 노래라고 전승민 문학 평론가가 설명해주기도 한다. 


일곱 살 여름으로 시작하는 소설은 엄마가 있는 아이가 아니라서. 엄마를 대신하는 게 고모라서 사람들은 여름을 고장난 신호등처럼 바라본다. 그런 그때, 갑자기 훅 치고 들어오는 젊은 여자와 아빠가 등장하고 오늘부터 엄마라고 불러. 아빠가 데리고 온 여자가 말한다. 


그러다 소설은 친구 루비가 등장하며 본론이 시작되는 느낌을 받는다. 우리 집에 갈래? 마음속에 친구라고 다짐할 때 나오는 첫마디. 공식적으로 학교에서 만난 첫 친구. 루비가 말했고 여름은 승낙했다. 그때 두 아이 삶의 궤도에 정확히 일치하며 떨어질 수 없는 관계가 되어버렸다. 


소설의 후반부는 루비를 잃어버리게 된 열두 살의이야기다. 결국, 루비는 떠나간다. 여름은 그게 나의 ‘첫’ 사랑이란 걸 뒤늦게야 알게 되었다. 또한 ‘첫’ 이별을 처음으로 깨닫게 해준 것 또한 루비라는 것도. 


눈물을 참을 수 없을 땐 눕는다. 누우면 눈물이 들어갈지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눈물은 기어코 흘러나와 귓속으로 들어간다. 눈과 귀는 이어져 있다. 눈이 내미는 것을 귀가 받고, 귀가 받아들이는 것을 눈이 밀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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