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1천 권의 조선 - 타인의 시선으로 기록한 조선, 그 너머의 이야기
김인숙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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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만 1천 권의 조선 


역사덕후로서 최근에 만나본 역사관련 책들 중에는 가장 매력적이면서 색다른 기획이 돋보였던 책이다. 역사 속 우리 민족이 아닌 한반도를 거쳐간 수많은 타인들의 기록들을 만나 볼 수 있었고 어쩌면 그 옛날 조선에게는 수백년 뒤의 나 역시도 타인일 수 있겠다는 묘한 기분도 들었다. 


또한 이 책이 특별했던건 역사학자가 아닌 소설가 김인숙의 글이었다는 점이다. 딱딱한 학술서적이 아닌 소설가의 상상력과 감수성으로 이야기를 풀어내는 일종의 산문이기도 했다. 

저자는 한국에 관한 서양 고서 마흔여섯 권을 만나고 그에 대한 해설과 자신의 생각과 느낌들을 엮었는데 그 책들은 명지-LG한국학자료관이라는 곳에 소장되어 있다고 한다.


이 책에서 소개되는 고서는 키르허의 중국도설과 하멜의 하멜 표류기부터 샬의 중국포교사, 키스의 오래된 조선, 카를레티의 항해록, 프로이스의 일본사, 쿠랑의 한국서지 등인데 조선만 다루는 책이 아닌 코레아라는 단어가 한번이라도 들어간 책이면 역사추리의 단서가 되고 있다. 


물론 그 책 속의 조선은 완벽한 팩트를 장담 할 수는 없었다. 고정관념과 이해관계, 왜곡, 동경, 미화, 혐오, 폄하가 녹아있었다. 하지만 그런 허점투성이 기록을 했던 이방인들의 시선을 상상해본다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 되었고 그에 대한 탐구와 고민들을 소설가 김인숙과 함께 해보는 시간이었다. 


그 외에도 최초로 유럽 땅을 밟은 조선인으로 알려진 안토니오 코레아의 실체, 고종의 초청으로 조선을 방문한 루스벨트 대통령의 천덕꾸러기 딸 앨리스 루스벨트와 그녀를 대접하기 위한 화려한 연회 메뉴, 도포와 갓 차림으로 당당하게 파리 거리를 활보하며 심청전과 춘향전을 프랑스어로 번역·출간한 조선 최초의 서양 유학생 홍종우가 왜 김옥균의 암살범이 되었는지에 대한 다양한 읽을거리도 실려있다. 


또한 박물관에서나 볼 수 있을 신비로운 고서들의 아우라를 사진으로 만나볼 수 있었는데 세월의 때들이 묘한 상상력을 자극했다. 습기를 머금어 얼룩이 생기고 울룩불룩해진 종이, 기울여 씀으로써 종이의 여백을 최대한 아름답게 살리고자 한 글씨체인 이탤릭체, 책의 인쇄를 주문하는 출판사나 단체 혹은 가문에 따라 다양한 판형과 표지를 가진 책들, 그림 하나하나마다 기름종이를 덧댄 정성스러운 가공, 금박과 가죽으로 고급스럽게 엮어낸 장정들이 눈에 들어온다. 


개인적으로는 임진왜란에 대한 마테오 리치의 기록을 소개하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그에게 있어 임진왜란은 일본과 조선의 전쟁이 아니라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었다. 임진왜란이 끝났을 때, 마테오 리치에게 그것은 중국의 승리였다. 그야말로 조선은 ‘타자의 타자’에 불과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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