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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던 철도 - 근대화, 수탈, 저항이 깃든 철도 이야기
김지환 지음 / 책과함께 / 2022년 6월
평점 :
모던 철도
다양한 역사책들을 읽은 역사덕후들도 신선하게 느낄만한 철도에 관한 역사책이다. 특히 우리 근대사에서의 철도의 의미와 역할 등을 다룬다는 점에서 어디서도 읽어보지 못했던 이야기였다.

일제강점기의 철도는 우리에게 근대화의 견인차이기도 했지만 수탈의 수단이기도 했다. 또한 이 책에서는 철도를 우리의 일제에 대한 저항과도 연관시켜 안양역에서 달리는 기차에 돌팔매질해 이토 히로부미의 얼굴에 상처를 냈던 원태우, 하얼빈역에서 이토 히로부미를 총살했던 안중근, 서울역에서 조선총독 사이토에게 폭탄 테러를 했던 강우규 등의 의거도 언급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안중근의 역사는 익히 알고 있었지만 강우규와 원태우는 처음 알게 되었다는 점이 부끄럽기도 했다.
책의 구성은 전반부에서 철도의 양면성, 근대화와 수탈이라는 주제로 한반도에서 불붙은 철도 궤간 전쟁, 대륙 침략의 발판, 한국 철도, 철도, 러일전쟁의 승패를 가르다, 관부연락선과 국제철도 네트워크 등을 다루고 있고 후반부에서는 철도에 깃든 저항과 삶이라는 주제로 이토 히로부미에게 돌을 던진 안양역 의거, 안중근 의사의 하얼빈 의거, 서울의 랜드마크 경성역과 시계탑, 시민의 발이 된 전차의 추억, 철도 투신에 이른 고단한 삶 등을 다루고 있다.
어떻게 보면 역사책이기도 하지만 철저한 고증과 연구를 바탕으로 한 논픽션이기도 했고 영상화가 된다면 웰메이드 다큐멘터리가 될 것 같기도 했다. 한국인 최초로 기차를 타본 인물은 1876년 일본에 수신사로 파견된 김기수였는데 그는 요코하마에서 도쿄 신바시에 이르는 기차를 타고 나서 이렇게 탄식했다. “사람들이 면면이 서로 보고 인사를 하자마자 기차는 불을 뿜고 회오리바람처럼 가 버린다. 눈 깜짝할 사이에 보이지 않게 되니, 그저 머리만 긁적거리며 서운하게 놀랄 뿐이다. 담배 한 대를 피울 사이에 벌써 신바시에 도착하니, 곧 90리 길을 온 것이다.” ‘근대’라는 압도적 힘이 잘 포착된 대목이다. 그는 기차를 통해 획기적으로 달라진 시간과 공간을 인식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개인적으로는 러일전쟁의 승패를 철도와 연관해서 해석해보는 대목이 인상적이었는데 그 당시는군대의 이동과 군수품 보급, 물류를 위한 철도 등 교통운수가 좌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러시아는 동아시아에서의 세력 확장에 힘을 쏟기로 결정한 후, 군대 이동과 물류 수송을 위해 철도 부설이 시급하다는 점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러시아의 차르는 중동철도가 완공되고 나면 10~20년 안에 만주를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낙관했다. 러시아 재무상 비테도 철도야말로 중국을 평화적으로 정복할 수 있는 수단이라고 주장했다.
그 외에도 안중근의 의거가 일어난 하얼빈 역에 대한 대목도 기존에 얕게 알고 있었던 사건에 티테일과 역사적 의미를 추가해주었다. 여객과 물자를 운송해주는 철도는 제국주의 열강이 약소국을 수탈하는 유력한 통로였다. 일본도 한반도 침략을 본격화하려고 철도 부설에 착수했다. 기차역은 식민지 지배의 거점이자 수탈의 창구였다. 이 때문에 수많은 기차역이 의병의 공격을 받아 파괴되거나 소실되었다. 러시아 중동철도의 거점 역인 하얼빈 역이나 일본 남만주철도의 장춘 역은 바로 러시아와 일본이 만주 지역, 나아가 동아시아를 침략하고 수탈하기 위한 근거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