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이종산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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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올 여름 무더위를 견디게 해줄 서늘한 공포소설 단편집이다. 그렇다고 허무맹랑한 귀신이 등장하는 얘기는 아니었고 오히려 우리의 일상에 스며들어 있는 공포를 다룬다는 점이 신선하면서도 더 공포스러웠다. 


또한 개인적으로는 장르소설보다는 국내 단편 소설에 더 가까운 느낌이 강화길 작가가 연사오디기도 해서 더 즐겁게 읽혔다. 


일곱편의 단편이 엮여 있는 이 책에서 표제작이면서 제일 먼저 읽어볼 수 있는 <빈 쇼핑백에 들어 있는 것> 은 제목만 들어도 호기심에 어서 읽어보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는데 그 쇼핑백의 정체는 스포일러가 될 거 같아 여기서는 생략하겠다. 


책 초반부의 그 쇼핑백의 정체를 아는 순간부터 이종산 작가의 이야기라면 믿고 읽어야 겠다는 생각으로 몰입하게 되었다. 


또한 <혼잣말>이라는 단편에서 자신이 중얼거리는 혼잣말의 목소리가 자신의 목소리가 아니란걸 뒤늦게 깨닫게 되는 대목에서는 소름이 끼치기도 했고 평소 내가 하는 혼잣말의 정체를 고민하기까지 했다. 


일곱편 모두 등장하는 인물들은 대부분 여성들이었고 공포라는 분위기를 매개로 다양한 사회적 담론을 이끌어내는 장치들 또한 일품이었다. 그 외에도 일생을 살며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는 공간인 집과 일터에 도사리고 있는 공포, 타인의 목소리로부터 발화한 불안, 우리가 분명하게 목격하고 경험한 것을 스스로 의심하게 하는 사회적 메커니즘 등에 대한 이야기들이 이어진다. 


그 중에 〈흔들리는 거울〉도 인상적이었는데 집요한 스토킹을 당하다 결국 가족 모두가 살해당한 현장을 두 눈으로 직접 목격한 주인공은 몇 년이 지난 후 모든 걸 이겨냈다고 생각한 순간, 밤 10시 11분만 되면 집 안에 있는 거울이 흔들리기 시작한다. 그리고 거울 너머엔, 죽은 가족들이 서 있다.


한편 〈은갈치 신사〉엔 해외여행을 가기 위해 편의점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을 모으는 학생과 거의 매일 편의점에 찾아와 우유를 사가는 남자가 등장한다. 어느 날 불쑥 “아가씨는 나랑 사는 세계가 다르니까”라고 말하는 그를 보며 그녀는 일순간 기분이 불쾌해진다. 하지만 불쾌함도 잠시, 시간이 지날수록 은갈치 신사가 했던 말이 어떤 의미였는지 알 것 같은 기분을 느끼며 서늘함에 잠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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