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레는 오브제 - 사물의 이면에는 저마다의 사연과 궁리가 있다
이재경 지음 / 갈매나무 / 202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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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오브제 


전업 번역가라는 저자의 이력을 보고 처음 펼쳐들었을 때는 책의  정체가 의아했는데 읽으면 읽을 수록 최근 읽어본 책들 중에서도 단연 돋보이는 신선하면서도 특별한 흥미진진한 읽을거리였다.  그야말로 지적유희에 흠뻑 젖어들었던 시간이었다. 



시중에 흔한 에세이도 아닌것이 그렇다고 따분한 인문학 서적도 아닌 팔러체어부터 뱅커스 램프, 목수연필, 쥘부채, 꿀뜨개, 플뢰르 드 리스 등, 30개의 오브제들을 30개의 챕터에 그 사물들의 역사와 스토리, 저자의 일상이야기까지 어우러진 글들이 이어진다. 


사물의 물성 뿐만 아니라 사물의 감성까지 멋진 글로 풀어내는 필력에 감탄이 절로 나왔고 평소 아무 생각 없이 스쳐지나쳤던 물체들이 이렇게나 즐거운 이야기를 품고 있었다는 새로운 발견이 무척 즐거웠다. 


예를 들어 에스프레소에 대해 이야기 할때는 지구 서식자의 행복이라는 제목으로 무위無爲에 짜릿함을 주고 집중의 고통을 덜어주며 각성의 영약이며 심상의 볼륨을 키우고 영감의 해상도를 높이고 에스프레소는 앞에 놓이는 순간 어지러이 펼쳐진 공간 속에 블랙홀처럼 밀도 높은 한 점을 만든다는 유려한 표현들에 넋을 잃기도 했다. 


아마도 요즘 나오는 솔직담백한 유쾌상쾌 에세이들에 권태를 느끼던 차에 만난 책이라 더욱더 몰입되었던 책인가 싶다. 


그 외에도 나팔축음기에 대한 이야기에서는 아날로그 시대에서 디지털시대로 완전히 전환된 요즘 시대를 날카롭게 지적하기도 했다. 디지털화는 물건의 물성을 없앴고 ‘물건’ 자체를 없앴다고 말한다. 기계식 가동이 전자화하면서, 전화와 시계와 카메라와 음악재생기는 청색광을 내뿜는 화면 뒤로 사라졌다. 나팔꽃처럼 피어 있던 음량 증폭 장치도, 카메라의 빛 구멍을 찰칵찰칵 여닫던 셔터도, 손가락 구멍이 뚫려 있던 전화 다이얼도, 인생처럼 이합을 반복하며 시간을 알려주던 시곗바늘들도 자취를 감췄다.


부품의 배열이 작동 원리를 그대로 보여주고, 거기 묻은 손때가 곧 조작법이었던 시대는 갔다. 전자회로가 부품을 대체했으니 기기들이 아날로그 시대의 외관을 유지할 필요도 없어졌다. 그때의 감성을 아쉬워하는 사람들이 터무니없이 비싼 값을 지불하고 껍데기로만 남은 그때의 디자인을 소비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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