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다섯 가지 표상으로 보는 한국영화사
박유희 지음 / 책과함께 / 2019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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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영화 표상의 지도 


영화 매니아라면 반갑게 집어들 한국영화사를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다섯 가지 표상으로 집대성한 책이자 소중한 연구물이자 훌륭한 기획이다. 또한 책을 읽다보면 이 책의 영화사는 곧 한국의 근현대사를 투영하고 있음을 알게 된다. 



책의 저자도 지적하는 부분이지만 우리는 어떤 단어를 들으면 떠올리는 이미지가 있고 이 책은 그걸 표상이라고 말하는데 그 표상들은 어쩌면 우리가 즐겨왔던 영화를 비롯한 여러 매체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이 책은 그 표상을 600페이지 가까이 되는 분량으로 체계적으로 분류하고 분석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도 이미 본 영화도 있었지만 놓치고 지나쳤던 여러 영화들과 그에 대한 해석들은 역사적, 문화적 연구 가치 뿐만 아니라 매우 즐거운 읽을거리가 되었다.


책의 구성은 가족, 국가, 민주주의, 여성, 예술 다섯개의 표상들을 다섯개의 챕터에 베정해서 상세히 설명하는 형식인데 글과 함께 수록된 400컷에 가까운 영화 포스터와 스틸컷 또한 이 책의 큰 매력이었다. 


예를 들면 첫번째 챕터에서 다루는 가족이란 표상에는 세부적으로 어머니, 아버지, 오빠, 누이라는 네 개의 하위 주제가 있었고 어머니라는 표상은 해방 공간의 이상적인 어머니를 그린 마음의 고향부터 ‘엄마’라는 호명을 거부하는 2018년 ‘미쓰백’에 이르기까지를 짚어본다.


뒤이어 국가라는 표상에서는 일본, 미구, 북한의 세부적인 표상으로 1960년대 초, 한일수교를 앞두고 일본과의 과거사에 대해 잠시 새로운 재현이 가능했던 시기에 나온 문제작 현해탄은 알고 있다부터 ‘386세대’가 미국과 사회계급을 바라보는 방식의 맹점을 드러낸 이태원 살인사건, 미국을 남북한의 공적으로 설정하여 북한 재현에서 파격적인 구도를 보여준 웰컴 투 동막골까지 적으로서의 북한이 ‘사람 친구’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다루기도 한다. 


그 외에도 민주주의라는 표상은 영화에서 3·1운동, 광주민주화운동, 6월 민주항쟁등을 재현해왔으며 개인적으로도 인생영화로 꼽는 변호인(2013)과 1987(2017)의 표상을 논하기도 한다. 


첫사랑에 대한 표상을 다양하게 분석해보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는데 1990년대에 이르러 이제 첫사랑은 완벽히 과거형이 된다. 그래서 1990년대의 마지막 해인 1999년에 제작된 영화 [박하사탕](이창동, 2000)에서 영호(설경구)가 첫사랑 윤순임(문소리)의 죽음 이후 기차 앞에 서서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며 죽는 것은 너무나 상징적이다. 이제 ‘첫사랑’은 죽지 않고는 돌아갈 수 없는 치명적 과거가 되었으며 현실에서는 결코 잡을 수 없는 불가능성의 세계가 된 것이다. 여기에서 ‘1980년 광주’로 상징되는 폭력성은 순수를 훼손한 원죄가 되며, 첫사랑으로의 회귀를 절대로 불가능하게 만드는 결정적 요소가 된다. 2000년대 첫사랑 영화들은 [겨울 나그네]와 [첫사랑]이 보여준 추억의 표상과 [박하사탕]이 드러낸 훼손의 트라우마를 관습화된 형태로 계속 재생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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