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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약탈박물관 - 제국주의는 어떻게 식민지 문화를 말살시켰나
댄 힉스 지음, 정영은 옮김 / 책과함께 / 2022년 3월
평점 :
대약탈박물관
나름 역사덕후라고생각했지만 영국의 아프리카 수탈을 상세하게 다룬다는 점에서 처음 접해보는 소재의 역사책이었다. 학창시절 역사 수업부터 그 이후 여러 역사책을 읽고서도 놓치고 있었던 대목을 날카롭게 지적하는 책이라 더 의미있는 시간이 되었고 단순히 역사적 사실을 나열하는데 그치지 않고 수많은 제국주의는 어떻게 식민지 문화를 말살시켰는지, 그 약탈의 문제점과 의미를 분석하고 해설해준다.

저자는 특히 ‘베닌 브론즈’ 라는 키워드에 주목하는데 이는 식민주의의 탐욕성과 수탈성을 가장 잘 보여주는 유물로써 나이지리아 베닌시티 일대를 통치했던 왕들의 역사를 기록한 수천 점의 청동 장식판과 세공 상아 작품을 통칭하여 이르는 말이다. 그렇게 약탈된 문화재는 우리도 유럽여행을 하며 감탄했던 빅토리아 여왕의, 영국박물관의, 그리고 수많은 개인 수집가들의 소장품이 되었다.
역사책이기도 했지만 한참을 읽다보면 논픽션 다큐멘터리를 보는 기분까지 드는데 저자는 이 책을 통해 당시 영국군의 응징 작전들을 더 큰 군사적 움직임의 차원에서 분석하고 베닌시티에서 벌어진 파괴가 오늘날까지 어떤 영향으로 이어지고 있는지를 논한다. 개인적으로는 그 다양한 역사적 의미와 해석에 대한 대목들이 인상적이었다.
또한 ‘0차 세계대전’이라는 처음 접해보는 단어의 의미도 충격적이었는데 유럽 국가들이 아프리카와 남반구에서 벌인 군사 활동은 20세기에 벌어진 끔찍한 사건들의 전조가 된 ‘0차 세계대전’이었다고 볼 수 있다. 이 기간 동안 동아프리카와 서아프리카는 그야말로 전쟁터였다. 영국은 이 시기 ‘무한 전쟁’을 통해 아프리카 지역의 왕과 군대, 마을을 차근차근 제거해나가며 새로운 ‘간접’ 통치 모델을 수립했다.
그 외에도 식민지 폭력의 전리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을 그저 중립적인 유물의 보관소로 보아야 할지에 대해 논하는 대목에서는 우리 민족의 과거 문화재도 일본이나 유럽에 보관되어 있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저자는 식민지에서 학살을 통해 약탈한 왕실 유물과 성물을 지금처럼 계속 전시하는 한 박물관은 ‘인종과학’의 이름으로 서구 문명의 우월성을 선전하는 폭력적인 장소라는 날카로운 지적을 보여준다.
개인적으로는 현대 인류학의 임무를 제시하는 대목도 인상적이었는데 인류학은 더 이상 생각에만 잠겨 있어서는 안 된다. 나이지리아, 이집트, 에티오피아 등 아프리카 대륙 전역에서 가져온 문화재에 관한 논의를 더는 미룰 수 없다. 인류학계와 고고학계는 이제 아프리카 약탈에 대한 진지한 고찰을 시작해야 한다. 아프리카 약탈은 제국주의가 진행되며 우연히 발생한 부작용이 아니라 수탈적·군국적 식민주의와 간접적 통치를 달성하기 위해 동원된 핵심적인 기술이었다. ‘세계문화’ 박물관은 분명 그 무자비한 약탈의 일부였으며, 그 상태는 현재까지도 이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