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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행 연습 - 돌기민 장편소설
돌기민 지음 / 은행나무 / 2022년 2월
평점 :
소설은 외계이 무무가 인간의 몸으로 변신하여 데이트 어플을 이용해 상대를 만나고, 성관계가 끝난 직후 상대를 잡아먹음으로써 생명을 유지한다는 파격적인 설정이다.

고향 행성의 침공으로 지구에 불시착했다는 설정은 둘리가 연상되고 전설의 고향 구미호도 연상되는 흥미로운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론 ‘결함 없는’ 인간이란 화두와 몸을 둘러싼 규범과 경계에 대한 담론까지도 이끌어내는 깊은 메시지도 함께한다.
이름부터 범상찮은 돌기민 작가의 스타일은 어디서도 보지 못했던 신선함이 매력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일명 전위적인 서사라는 표현을 이 소설을 읽고 제대로 알게 되었다.
주인공인 외계인 무무에게 인간 형체에 욱여넣은 몸을 지탱하는 일은 너무 고통스럽고 어색해서, 두 다리로 걷는 일조차 연습이 필요한 일이 된다. 책의 제목인 <보행 연습>과 목차에 보이는 56km, 37km, 21km, 0kmsms 인간 규범에 맞는 보행법을 연습하는 연습일지를 의미한다.
SF소설 같으면서도 외계인이라는 설정외에는 SF소설의 형식은 아닌것 같았고 오히려 젠더, 장애, 육식, 트랜스 휴먼 등에 대한 무언가를말하려고 하는 저자의 의도를 엿보는 재미가 일품이었다. 그런 얘기를 우회적으로 외계인을 통해 풀어내는 작가의 상상력과 스토리텔링 스킬에 감탄했던 소설이다.
‘지금’ 무무는 여성이다. 인간 여성으로 보이기 위해 매순간 인간들의 규율을 의식한다. 여성의 옷을 입고 좁은 보폭으로 몸을 아주 많이 흔들지 않으며 걷는다. 그러나 16층의 남자에게 가는 길은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남자의 아파트는 엘리베이터가 고장났다. 보행조차 연습이 필요한 무무에게 16층에 달하는 계단은 신체적 고통을 준다. 계단참에서 만난 아파트 거주자들은 무무가 충분히 ‘여성스러운지’를 부지불식간에 판단하려 든다. 역경 속에서 무무는 간신히 16층에 도착한다. 그리고 남성과 성관계를 가진 후 남성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잡아먹는다. 몸은 잘 처리한 후 가방에 넣어 집으로 가져간다. 이것이 무무가 터득한 생존법이다.
하지만 에너지 낭비 없이 사냥하는 요령을 터득했어요. 번개 상대와 끈적한 섹스를 치른 직후에 그것이 방심한 틈을 타 머리를 삼키고 피를 빠는 것. 지구에 사는 나 같은 존재에게 전수해줄 수 있는 인간 사냥의 정석입니다. 실수 없이 이렇게만 하세요, 여러분. 인간을 손쉽게 고기로 만들어요. 어떠한 양심의 가책도 느끼지 않고. 양심에 찔려도 걱정 마세요. 양심은 반복되는 악행에 금방 무너지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