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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의 높은 산
얀 마텔 지음, 공경희 옮김 / 작가정신 / 2021년 12월
평점 :
포르투갈의 높은 산
개인적으로는 영화로 파이 이야기를 접하고 알게 된 얀 마텔 작가의 또 다른 유명 장편소설이다. 이미 2017년에 집어들었다가 완독 못 했던 책을 이번에 더 멋진 리커버 버전을 만나서 끝까지 읽게 되었다.

마치 국내의 대하장편소설의 큰 스케일이 포르투갈과 캐나다를 배경으로 펼쳐지는 듯 했고 한 세기에 가까운 세월 동안의 인간사를 파이이야기 같은 몽환적 분위기로 그려낸다.
책은 집을 읽다 - 집으로 - 집 3부로 이어지지만 다른 인물들이 등장하면서도 요묘하게 서로 연관되고 읽으면 읽을수록 세 이야기의 퍼즐이 맞춰지는 희열을 맛 볼 수 있는 소설이었다. 믿음이 산산이 부서져버린 참혹한 운명 앞에 마주한 세 남자가 그것을 다시 회복해나가는 여정이 펼쳐지고 얀 마텔의 기발한 상상력들이 나의 허약한 상상력을 충전해주는 듯 했다.
첫 이야기에서는 병리학자 에우제비우를 중심으로 자신의 아내 마리아와 아내와 같은 이름을 가진 노부인 마리아와의 복잡하면서도 환상적인 이야기가 펼쳐진다. 남편의 가방 안에 시신을 넣고 먼 길을 달려와 부검을 의뢰하는 노부인 마리아는 부검을 통해 남편이 왜 죽었느냐가 아니라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알려달라고 한다.
스토리 자체는 물흐르듯 읽히지만 그 속에 담긴 메세지가 무엇인가를 곰곰이 생각하게 되는데 이 소설은 믿음과 불신 사이에서 끊임없이 균형을 맞추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다름 아닌 인간의 의지라고 할 때, 인간이 한없이 연약해지는 순간은 바로 그 균형이 조화롭지 못할 때라고 말하고 있다.
사랑은 집이다. 매일 아침 수도관은 거품이 이는 새로운 감정들을 나르고, 하수구는 말다툼을 씻어 내리고, 환한 창문은 활짝 열려 새로이 다진 선의의 싱그러운 공기를 받아들인다. 사랑은 흔들리지 않는 토대와 무너지지 않는 천장으로 된 집이다. 그에게도 한때 그런 집이 있었다, 그것이 무너지기 전까지는. 이제 그의 집은 어디에도 없고 ― 알파마의 아파트는 수도사의 방처럼 을씨년스럽다 ― 어느 집이든 발을 디디면 그의 집이 없다는 사실만 상기될 뿐이다. 애초에 율리시스 신부에게 끌린 것도 그 때문이라는 걸 토마스는 안다. 둘 다 집이 없다는 점 때문에.
1부 1904년 리스본, 2부 1938년 포르투갈에 이어 3부에서는 1981년 캐나다의 상원의원 피터가 등장한다. 캐나다의 상원의원 피터는 40년간 함께해온 아내의 상실을 겪은 후 큰 슬픔에 빠져 있다. 직책도, 집도, 가족도, 친구도 모두 버리고 포르투갈 북부에 자리한 고향 마을 투이젤루로 찾아간 그의 옆에는 이제 평범하지 않은 동반자인 침팬지가 함께한다. 인간인 피터는 침팬지를 닮아가며 그들만의 잊지 못할 하루하루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