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
오설자 지음 / 푸른향기 / 202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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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


제주사투리로 쓴 글을 엮은 색다른 시도가 무척 즐겁게 읽혔던 책이다. 개인적으로도 제주도를 사랑하고 자주 가보고 살아보고 여행도 해봤는데 시중에 넘쳐나는 제주 한달살기 관련 책이나 여행가이드북 수준의 책과는 차원이 다른 진짜 제주어로 제주의 이야기를 하는 책이다. 


실제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제주 작가 오설자의 사라져가는 제주어로 쓴 에세이 형식으로 모르는 사투리가 어렵고 낯설기만 할 것 같았지만 읽다보면 정이 들고 다정하고 아름다운 제주 사투리 특유의 뉘앙스에 빠져들게 된다. 물론 제주사투리를 표준어로 해설해주기 때문에 이해 못 하는 수준은 아니다. 


책 속에 담긴 이야기들은 제주에서 나고 자란 저자의 인생과 일상에서의 경험, 생각, 느낌, 여러 에피소드들이고 인생의 희로애락이 모두 담긴 단짠단짠과 깊은 맛들이 어우러진다. 또한 제주의 아픔을 이해하고 어루만지는 대목들을 읽으며 제주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되는 시간이기도 했다. 


책 제목 우리 사는 동안에 부에나도 지꺼져도는 화가 나도 기뻐도란 뜻으로 즐겁게 읽다보면 저자의 메시지가 자연스럽게 전해지며 인생의 지혜도 얻을 수 있었다. 그외에도 ㄱㆍㄹ앙 몰라(말해도 몰라), 늬영 나영 (너랑 나랑), ㅎㆍ근 생각(온갖 생각)  등에 대해 인상적인 글들이 넘쳐나는 책이다. 


특히 제주의 아름다운 풍광들이 눈앞에 선하게 펼쳐지게 하는 표현들과 문장들이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이었다. 


봄이면 감꽃 향기가 집안으로 들어왔고, 여름을 몰고 오는 빗방울이 유지낭 잎사귀를 두드릴 때마다 초록이 짙어지고, 화장실 뒤 대나무밭에는 초록비가 내렸습니다. 학교에서 왔을 때 송아지가 막 태어나 마당을 비틀거리며 걸었고, 엿장수 가윗소리 맞춰 해피가 짖으면, 우리는 꿀꺽 침을 삼키며 쇳조각을 봉그레주우러 다녔습니다. 저녁마다 미역이며 자리를 사라고 웨울르는외치는 해녀가 올레 앞으로 지나갔고요. 마당에 친 모기장 안에서 별을 보다 잠이 들면 이슬이 내리곤 했습니다.


어떤 말은 오래도록 가슴에 남습니다. 입안에 굴리고 나면 나직이 입 밖으로 새어 나오곤 합니다. 손안에 쥔 듯 가만히 만져지는 말. 말랑해지고 마음이 따듯해지는 말. 고향의 언어에는 그런 말들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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