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추정경 지음 / 다산책방 / 2021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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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흰 캐딜락을 타고 온다


오랜만에 정말 경쾌하면서도 아주 독창적인 어디서도 읽어보지 못했던 색다른 소설을 만났다. 초반부에서는 강원랜드 일대의 현실을 아주 리얼하게 묘사하며 이야기를 시작하지만 어느새 SF라는 의외의 요소들이 더해지며 누아르의 본색까지 드러내는 그야말로 신박한 전개를 보여준다. 


특히 포트라는 초능력이란 소재가 가미된 대목들은 기존의 마블 스튜디오의 이제는 진부해진 SF적 요소와는 다른 번역을 거치지 않은 한국 작가의 소설이 너무나도 친근하고 흥미를 돋군다. 


성 사장은 칼자루를 쥐고 있으면서도 돈을 내밀었다. 김 사장은 그것이 거부할 수 없는 제안임을 알고 무거운 침묵에 잠겼다. 한참 후 그는 꽉 움켜쥐었던 주먹을 탁자 위에 올려놓았다. 힘을 빼더니 그 주먹을 성 사장 앞으로 내밀었다. 잠시 후 그가 손바닥을 펼치자 중앙에 붉은 점 하나가 생겨나고 그 점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거미줄 같은 열선이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열선에서 더 미세한 모세혈관들이 생겨 온 손바닥이 붉게 물든 순간 그 위에 농구공 크기의 포트가 열렸다. 그와 동시에 네 사람 앞에 있는 탁자의 중앙에 또 다른 포트가 열렸다. 그가 포트 안에 손을 집어넣자 탁자의 뚫린 포트에서 그 손이 솟구쳤다.


주인공 소년 진은 강원랜드 인근의 뒷골목에서 전당포 직원으로 살아가다 알 수 없는 자들로부터 무자비하게 사냥당하는데 이는 병인 줄만 알았던 그의 저주 같은 능력 때문이다. 그를 노리는 이들과 그를 지키려는 사람들의 대립 속에서 남은 선택은 하나뿐이다. 능력을 각성하든가, 죽든가. 이 소설 역시 초능력이란게 능력이 아니라 저주임을 알아가며 갈등구조가 증폭된다. 


험난한 듯 평온했던 진의 인생은 지병이 심해지면서 균열이 생긴다. 그의 기억은 자꾸만 끊기고 그때마다 매번 캐딜락 뒤에서 눈을 뜬다. 약을 한 움큼 먹고 잠든 어느 날, 그는 아버지와 새어머니가 다투는 소리를 듣는다. 그것은 ‘포트’라는 능력에 대한 이야기였다. 진은 병증인줄로만 알고 살아왔던 것들의 진짜 의미를 알게 된다. 그는 공간을 열고, 또 이동할 수 있었던 것이다. 진을 가까이에서 지켜보며 이 사실을 알게 되었던 성 사장은 진이 포트 능력을 일깨우고 다루는 법을 배우도록 이끈다. 배우지 않으면 죽거나 죽이게 될 거라는 섬뜩한 조언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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