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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 가격표 - 각자 다른 생명의 값과 불공정성에 대하여
하워드 스티븐 프리드먼 지음, 연아람 옮김 / 민음사 / 2021년 7월
평점 :
생명 가격표
사람 사진에 바코드가 찍혀있는 책 표지와 생명에 가격표가 붙는다는 도발적인 책 제목부터가 이 책을 집어들게 했다. 책의 내용은 생명의 가치를 매기는 다양한 방법과 이러한 방법들이 전문용어를 걷어 내면 매우 이해하기 쉬운 개념이라는 사실을 보여주며 우리는 생명의 가치가 어떻게 매겨지는지 반드시 알고 있어야 우리 생명이 가치 절하 되지 않고 보호 받을 수 있음을 설파한다.

특히 최근에 개봉한 영화 <워스>와도 연관해서 생각해볼 의미있는 사회 담론들이 담겨 있는 오랜만에 만나보는 정통 사회학 서적이었다. 책의 흐름은 생명의 가치 산정에 숨겨진 다양한 측면을 탐구하고 금전적인 가격표 산정 뿐만 아니라 비금전적 평가 영역에 대한 논의도 이어진다. 그리고 후반부에서는 생명의 상대적 가치에 대한 고찰도 읽어볼 수 있었다.
영화 <워스>는 911테러의 피해자와 가족들에게 최대 총액 73억 달러의 보상금 지급을 놓고 일어난 실화를 바탕으로 한다. 미국 뉴욕의 로펌 대표 변호사이자 로스쿨 교수인 케네스 파인버그는 911 테러 직후 법무부 산하에 911테러 피해자 보상기금의 위원장 자리를 맡는다. 민사소송 전문가인 파인버그는 공명심으로 보상기금 위원장 자리에 의욕을 보인다. 소송에서 한번도 패소한 적이 없던 파인버그는 이번에도 이기는 게임이라고 확신한다. 승산이 높지 않고 오래 걸리는 민사소송에 비해 정부 보상금은 지급이 빠른데다, 전액 비과세라는 점에서 유족들의 동의를 받기 수월할 것으로 봤던 것이다.
그는 처음부터 위기에 직면한다. 유족들은 희생자의 나이, 가족 규모, 수입 등을 근거로 산정된 보상금 지급 기준이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고 반발했다. 실제 당시 보상지급 기준은 희생자 나이가 적고 가족 수가 많고 고소득일수록 보상 금액이 늘어나도록 책정돼 있었다. 예컨대 35살에 자녀 2명이 있던 최고경영자의 가족은, 60살의 저소득층 독신자 가족(30만달러)보다 무려 10배 이상 많은 380만달러를 받도록 돼 있던 것. 같은 날 같은 공간에서 숨졌어도 사회경제적 위치에 따라 보상금에 차등이 있었던 셈이다.
영화는 세속적인 관점으로 피해자들을 대했던 차가운 법기술자 파인버그가 유족들을 만나면서 변화해가는 과정을 담담하게 쫓는다. 그리고 유족들의 요구가 단순히 보상금을 더 받겠다는 것이 아니라, 동등한 인간으로 존중받기 위함이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결국 그는 유족들에 대한 자신의 선입견이 모든 인간의 가치(워스)를 동등하게 보지 않았던 데서 비롯된 것임을 알게 된다.
국내에서도 최근 이와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비슷한 시기에 사망한 두 대학생(한강과 평택항 사건)에 대한 대중과 미디어의 관심은 왜 그렇게 달랐을까? 또한 코로나19 역시 전세계 각지에서 이런 양상을 발견하게 한다. 이탈리아 의료진들은 병상 포화인 상태에서 어느 연령대의 치료 대상을 포기했을까.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자본주의에 매겨진 ‘생명 가격표’에 있다. 불편한 사실이기에 입 밖에 내지 않지만 인간의 생명 역시 마찬가지다. 인간 생명에 일상적으로 가격표가 매겨진다는 사실, 이러한 가격표가 우리 삶에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 이러한 가격표는 투명하지도, 공정하지도 않다는 사실, 이런 부당함이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가격표가 낮게 책정된 사람들이 사회로부터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높은 가격표가 붙은 사람들에 비해 더 큰 위험에 노출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다양한 분야의 예시를 들어 설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