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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
황병주 외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7월
평점 :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
일단 이 책은 내가 이렇게 충격적인 사건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는 점이 놀라웠고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언뜻 스쳐 본 것 같지만 우리 현대사에서 꼭 기억해야 될 의미있는 사건을 너무 등한시 하고 있다는 점이 안타까웠다.

여튼 이 책은 무심코 넘길 수도 있는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의 전말과 의미를 심도깊게 다룬 책이다. 삼척 간첩단 조작 사건의 개요는 1965년과 1968년 남파된 진형식을 돌봐준 가족과 고종사촌의 일가가 10여 년 뒤에 갑자기 체포되고 일사천리로 2명 사형, 10여 명 징역형이 확정된 사건이다.
이후 발생 37년 만에 재심법원은 원심과 정반대의 판결을 내렸지만 이미 사형된 두 명 외에도 김상회의 부친 김재명도 부인의 산소에서 농약을 마시고 자살했으며 이 소식을 들은 딸 김옥련도 장례를 치르고 농약으로 생을 마감했다. 7년형을 받고 만기출소한 김달회 역시 그 뒤를 따랐다. 진창식의 장인도 사위와 딸의 고초를 보다 못해 자살을 선택했다. 사건 관련자와 그 주변에서 무려 네 명이 자살했다.
살아남은 사람들 역시 사회적으로 배제되고 가까운 이들로부터도 배척되어 온전한 삶이 불가능했다. 이 책에서는 온갖 고문과 협박 끝에 나온 수사결과를 추적하고 그 사건의 전개와 실상, 이후 피해자들의 삶, 재심으로 무죄 판결을 받기까지의 과정을 총망라하고 있다.
개인적으로는 이 사건이 YH노조, 부마항쟁, 남민전 사건과 연관된 엄혹했던 군사정권 시절의 시국사건이었다는 점에 또 한번 놀랐고 그 역사적 의미를 알려준 이 책이 고마웠다.
남민전과 삼척 사건은 간첩의 정치학이 무엇인지 잘 보여준다. 전자가 자율적으로 활성화된 정치운동과 지배권력의 충돌을 보여준다면, 후자는 지배권력의 정치적 필요에 의해 일방적으로 끌려 나온 주체에 가깝다. 전자가 사상과 이념의 차원에서 지배세력과 정면승부를 펼친 것이라면 후자는 생활세계의 인연에 따른 우발적 사건의 성격이 짙었다. 국가의 주권자라 하지만 국민으로 호명된 사람들은 늘 국가의 폭력 앞에 벌거벗은 생명처럼 내던져지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운동진영에 의해 민중으로 불리지만 이들의 삶은 사상과 신념에 따른 양심수가 되기는 곤란한 경우가 태반이다.
책에서 저자는 무서운 것은 간첩이 아니라 ‘간첩 같은 일체의 행위와 언어’라고 말한다. 간첩과 간첩 아닌 것 사이의 경계가 흐려지고 일상의 삶 전체가 이러한 모호함 속에 놓여 있다면 대중의 정치적 활성화는 매우 곤란해진다. 어쩌면 간첩으로 오인되는 경우가 실제 간첩보다 더 중요하다. 지배권력의 입장에서는 이런 무고한 피해자가 오히려 더 큰 효과를 낼 수 있었다. 즉 간첩이 아닌 사람들도 간첩으로 오인 또는 조작되어 회복 불가능한 피해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이 경험적으로 널리 확인되면 통치에 더 유리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