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의 법정에 선 법
김희수 지음 / 김영사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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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의 법정에 선 법


요즘 검찰과 법원의 이해 할 수 없는 여러 이슈들이 이어지며 법에 대해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는데 이 책은 그런 법에 대한 흥미로우면서도 진지한 고민을 해볼 수 있는 시간을 선사했다. 책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이 법을 법정에 세운다는 색다른 시도가 돋보였고 근현대사를 지배한 악법과 판결들을 역사의 법정에 세워서 통렬한 비판과 진실의 실체를 배울 수 있었다. 


책의 구성은 2권의 책으로 나와도 될 만큼 1부와 2부가 나뉘는데 전반부는 역사의 법정에서 동학농민혁명과 관련된 근대법원과 갑오개혁의 자유 평등 이슈, 을사늑약과 국제법, 삼일운동과 임시정부, 독립투쟁과 관련된 재판과 판결 등을 읽어 볼 수 있다. 


이런 굵직한 교과서에서 배웠던 사건들이 법과 연관해서 풀어낼 수 있는 이야기가 이렇게 의미있고 다양한지 이 책을 통해 처음 알게 되었고 그만큼 신선한 읽을 거리가 되어 주었다.  

특히 최초의 근대 법원이 내린 최초의 판결인 전봉준 유죄선고부터 일제강점기 을사늑약과 국제법, 식민지법의 정체, 임시정부와 독립운동의 적법성 문제, 권력자들에 의해 자행된 헌법 파괴, 고문, 가혹 행위로 조작된 사건의 법 논리,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형벌 불평등 문제들을 집중적으로 분석한다. 


식민지 지배에서 모든 법률의 법원(法源, 법이 생겨나는 근거)은 ‘조약’이다. 그 결과 조약이 무효이면, 이에 뿌리를 둔 개별 법률 역시 모두 효력을 잃는다. 논리 법칙에 따라 개별 법률은 효력 자체가 없으므로 악법 여부 등을 따질 필요 없이 조선어학회에 연루된 한글학자들의 유죄판결 자체가 무효가 된다. 식민지 시대 독립운동을 탄압하는 데 적용한 치안유지법, 보안법, 폭발물 취체벌칙 위반, 소요죄, 심지어 사기죄 등도 마찬가지로 모두 무효가 된다. 조약이 유효하다는 것을 전제로 모든 식민지 지배 법률이 만들어지고 적용되었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는 후반부의 법이 공정하다는 착각에 대한 내용이 인상적이었는데 헌법 파괴 수단으로 악용된 헌법 보장 수단, 독재자가 애용한 절대반지, 계엄과 긴급조치, 법으로 본 저항권, 인권의 최후 보루, 검찰, 법원에서 왜곡된 법 논리, 법정에 선 사법농단, 삼성 X파일 사건, 국회의원 면책특권, 초원복국집 사건, 국정원 여직원 댓글 사건과 국정농단 등 정말 쟁쟁한 이슈들이 넘쳐날 정도였다. 


저자는 헌법이 눈물을 흘릴 때 ‘헌법의 신음’에 귀 기울이고, ‘헌법의 꿈’을 지켜낸 것은 언제나 국민이었다고 말하며 동학농민혁명을 통해 부패하고 무능한 정부에 대항했고, 독립운동을 통해 외세의 침탈에 항거했으며,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순간 항쟁과 집회를 통해 이를 지켜냈다. 권력자와 법이 타락할수록 국민의 정신은 더욱 또렷이 불타올랐던 것이다. 법이 정의롭고 평등하다는 것을 잊어가고 있는 지금, 우리가 법을 명확히 마주해야 하는 이유이다.


장발장 은행의 일수벌금제 제안도 흥미로웠는데 현행 벌금형은 “피고인을 벌금 100만 원에 처한다”는 형식으로 피고인이 납부해야 할 벌금 총액을 선고하고 있다. 이를 ‘총액벌금제’라 부른다. 반면 장발장은행에서 제안하는 ‘일수벌금제’란 벌금을 매기는 기준을 총액으로 결정하지 않는다. 벌금을 일수, 즉 시간으로 정하고, 각 피고인의 하루 벌금액을 그의 경제적 사정을 기초로 사람마다 달리 정하는 것을 말한다. 재산과 소득이 많은 사람에게 부과하는 벌금과 가난한 자들에게 부과하는 벌금형의 기준을 달리하는 것이다. 재벌에게는 1,000만 원이 하찮은 돈에 불과하지만 가난한 사람에게는 100만 원도 매우 큰 금액이므로 이를 고려해 벌금형을 정하는 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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