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 내 마음대로 고립되고 연결되고 싶은 실내형 인간의 세계
하현 지음 / 비에이블 / 2021년 6월
평점 :
품절


어느 맑은 날 약속이 취소되는 기쁨에 대하여


한 때 베스트셀러로 유명했던 <달의 조각>을 읽고 하현 작가의 글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반가운 신간이 나왔다. 이번에는 살짝 긴 제목이지만 누구나 공감하는 즐거움에 감성까지 자극하는 문장을 타이틀로 했고 책 속의 서른 꼭지 정도 되는 이야기들 역시 그랬다. 



하현 작가의 평범한 일상 속에서의 경험, 느낌, 생각들을 솔직담백하면서도 글을 읽는 내가 같이 착해지고 감성에 젖어들게 하는 이야기들이 담겨있다. 어떤 대목에서는 나름의 인생에서 행복을 쟁취해가는 여정을 같이하는 기분이 들었고 이래라 저래라 독자들에게 전하는 직설적인 조언은 전혀 없지만 자연스럽게 내 일상과 생각들을 정리해가며 행복에 대한 힌트도 얻을 수 있었다. 


하현 작가는 이 책의 글들을 내 삶이 반짝이지 못해서 내 노력까지 초라해지는 기분이 드는 날 노트북을 펼쳐 평범한 삶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들을 차곡차곡 써내려간 이야기들이라고 설명한다. 그러면 세상의 중심을 향해 스스로 헤엄쳐 나가는 느낌이 들었고 초라해지지 않았다는 얘기는 나 역시도 이 책을 읽는 동안 그런 기분이 들었다고 답해주고 싶었다. 


실내형 인간의 세계를 이야기하면서는 집돌이 집순이들에게 공감과 위로를 선사하는 대목들이 가득했는데 외로운 건 솔직히 홀가분하다는 진짜 집순이들만이 알 수 있는 감정들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그 외에도 썩은 사과 이론이나 연막탄, 인절미를 녹이는 시간, 체면보다 중요한 것 등의 밋밋해보이는 일상에서 재밌고 의미있는 생각들을 건져올리는 하현 작가의 능력이 부럽고 배우고 싶어졌다.  


나는 썩은 사과가 된 걸까? 알량한 정의감에 취해 어떻게든 버텨보려던 사람들을 흔들어놓은 걸까? 아니, 그 마음이 진짜 정의감이었다면 그만두는 대신 어떻게든 맞서 싸우지 않았을까? 질문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데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다. 그때의 나는 풋사과였던 것 같다. 익기도 전에 떨어져 썩을 줄도 모르는. 마음만 앞서고 모든 게 미숙하기만 했던 시고 떫은 시절


하지만 그 기다림 역시 언젠가는 끝날 것을 안다. 오늘의 자질구레한 일들을 처리하며 내일의 기쁨을 이백 번쯤 찔러 보는 사이에. 어떤 기다림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괜찮다. 무언가를 기다리며 조급함을 다스리는 동안 내 마음은 조금씩 건강해진다. 인절미가 녹듯 서서히.


세상사에 관심 없는 척, 우아하고 고상한 사람처럼 보이고 싶은 마음도 결국 자기만족을 위한 욕심이었다. 그러나 이런 내게 더는 실망하지 않는다. 내가 되고 싶은 건 세상을 구하는 위인이 아니라 나를 구하는 보통의 인간일 뿐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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