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서진 여름 - 이정명 장편소설
이정명 지음 / 은행나무 / 2021년 5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이정명이 이정명했다는 표현이 맞을 것 같다. 소설 초반부에서 특별히 인물, 사건 파악한다고 시동 걸 필요도 없이 첫장부터 끝장까지 숨돌릴 틈도 없이 읽어지는 소설이다. 


일단 성공한 화가가 등장하고 다음날 아침에 아내가 실종되는 미스터리로 궁금증을 유발시킨다. 근데 갑자기 그 화가의 어린시절 이야기로 전환되고 첫사랑 이야기인지, 그림을 그리게 된 동기와 사연인가 싶은 이야기에 빠져드는데 그 첫사랑의 대상이 죽게 된다. 그리고 범인은 화가의 아버지로 결말 지어진다. 


그리고 다시 현재의 이야기로 전환되고 아내는 실종이 아니라 가출이었고 화가의 치부를 폭로하는 소설을 출간한다고 한다. 이쯤 되면 단순히 아내의 실종이 주제가 아닌 훨씬 더 큰 스케일의 이야기임을 직감한다. 여기까지도 숨막혔는데 여기서부터는 이게 단막극이 아니라 20부작 시리즈임을 직감하게 된다. 


아내의 실체가 궁금해지는데 실체는 큰 반전과 함께 금방 드러난다. 그리고 화가의 형과 부모, 죽은 첫사랑의 부모와 동생 각각의 이야기가 퍼즐처럼 짜맞춰지는 과정이 이 소설의 큰 매력 중 하나다. 중반부 이후는 반전에 반전에 반전의 연속이라 상세한 스토리는 얘기하지 않겠다. 


일단 화가라는 직업에서 파생되는 여러가지 설정과 사건과의 연계가 흥미롭고 아내의 실종사건과 첫사랑의 죽음이라는 투트랙 전개 때문에 쉴 틈이 없다. 독자 입장에서 아버지가 범인이 아닐거라는 그 찜찜함이 계속 이어지고 화가와 화가의 형을 의심하고 여러 관계 속에서의 사랑과 증오, 진실과 거짓, 오해의 파편들이 멋지게 조합된다. 


화가의 형을 설명하는 치명적인 대목을 발췌했다. 

부자들은 절 그 냥 내버려두지 않을 거예요 그들은 가난하고 똑똑한 애들은 그냥 내버려주면 어떻게 될지 뻔히 알아요 반체제활동가나 노조위원장이나 지능범죄자 같은 우환거리가 되기 전에 자기들 발밑으로 기어들게 만들겠죠 먹이를 던져주며 사나운 개를 길들이는 것처럼요 난 고분고분한 척 부자들이 주는 미끼를 받아먹을 거예요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가는 주인공의 삶을 설명하는 대목도 발췌한다. 

살인자의 아들로 살아가는 일은 쉽지 않지만 불가능하지도 않다. 세월이 흐르며 한조의 몸에는 누가 가르치지 않아도 살인자의 아들에게 필요한 생활의 방식과 규칙들이 쌓였다. 좋아하는 사람에게 자기 얘기를 어디까지 해야 하고 어떤 사람을 사랑하면 안 되는지, 어떤 일을 해야 하고 어떤 걸 원하면 안되는지…


결국 이 소설은 어떤 사건에 대한 미스테리 소설이기도 하지만 한사람의 상실로 인한 상처와 아픔이 남겨진 사람들의 각자 인생과 그들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에 대한 드라마이기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6)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