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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 영화와 요리가 만드는 연결의 순간들
이은선 지음 / arte(아르테) / 2021년 3월
평점 :
착해지는 기분이 들어
코로나로 1년 넘게 극장을 못갔다. 그만큼 극장과 영화가 그리운 요즘 영화전문기자 이은선의 에세이가 나와서 반갑게 집어든 책이다. 이은선 기자는 FM영화음악에 출연한걸 몇번 들어봐서 친숙했지만 영화 관련 기사를 읽어 본 적이 없었는데 드디어 책으로 그녀의 글을 만나게 되었다.
이 책의 매력이라면 영화전문기자라고 해서 진지한 영화평론을 하는 글이 아닌 솔직담백, 좌충우돌 일상에서의 경험, 느낌, 생각 등을 영화와 연관시켜 이야기를 풀어냈다는 점이다. 그리고 살짝 생뚱맞지만 요리 이야기까지 더한 영화와 요리와 일상이 버무려진 그야말로 따뜻한 에세이 그 자체였다.

책에서 언급되는 영화만해도 스무편이 넘는데 리틀포레스트 부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 바베트의 만찬,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 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봄날은 간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 연애의 온도 등등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못 본 영화는 당장에 찾아보고 싶고 이미 봤던 영화도 저자의 해석을 읽고 나니 다시 보고 싶어졌다.
요즘 넷플릭스에 넘쳐나는 영화들을 설렁설렁 뒤적거리다 보니 예전의 그 영화의 맛이 아니었는데 이 책에 영화를 마음 깊이 절절이 들여다보는 이야기를 읽다보니 저자의 영화에 대한 애정을 엿볼 수 있었고 내 마음 속 깊은 곳에 박혀있던 영화에 대한 추억도 다시 샘솟는듯 했다.
요리에 대해 얘기하는 대목들에서는 자신의 일상을 가꾸고 유지하게 하는 요리의 힘과 그 과정을 소중히 여기는 마음들을 읽을 수 있는데 저자는 특히 ‘정성껏’이라는 단어를 좋아한다고 한다. 음식과 요리는 일상적인 행위인 동시에 사람과 삶을 한층 더 정성껏 바라보게 하는 대상이며 마음 안에 차오르는 길고 내밀한 언어들을 납작하게 접은 채 ‘좋아요’ 하나로 반응을 보이면 그만인 세상에서, 간편한 경험들이 우선하는 세상에서, 오랜 시간을 필요로 하고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하는 요리는 확실히 비효율적인 행동일지 모르지만 그 안에는 감정의 맥락과 소통의 가능성이 존재한다. 단순히 허기를 달래는 것과 좋아하는 것을 취할 때의 마음을 구별하게 한다.
코로나 팬데믹의 일상과관련된 대목도 인상적이었다. 저자는 2020년이 우리가 애써 부정해왔던, 이미 눈앞에 도래한 미래를 더 이상 못 본 척하지 말라는 엄중한 경고의 메시지로 찾아온 해라고 말한다. 자꾸만 개인을 구부정하게 만드는 상황 앞에서 마음과 시야의 크기는 역으로 넓어져야만 하고 배경을 인지하고, 불행의 원인을 직시하고, 그 안에서 회피하는 것이 아니라 새롭게 살아가는 법을 배워야 함을 영화 바베트의 만찬에서의 바베트가 1만 프랑의 좁은 행복 대신 나눔이라는 넓고 확실한 의지를 지켜낸것과 비유한다.
<마음을 쓰는 능력>이라는 글이 특히 반가웠던건 나 역시도 요즘 마음을 쓴다는 것에 대해 곰곰이 생각했던 순간이 있어서였다. 자기 자신보다 가족이나 친구의 감정을 더 살피고,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정성으로 상황을 바꾸기 위해 힘쓰는…
나는 왜 나의 기분보다 남의 기분을 먼저 생각하는가. 나는 왜 이렇게까지 타인에게 마음을 많이 쓰는 인간인가. 세상에는 주변에 마음을 많이 쏟는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 이 능력은 후천적으로 발달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냥 타고난 기질 같은 것이다. 아끼는 이들에게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으로 마음을 쏟지 못하는 상황이 나는 때로 더 불행하게 느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