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 채광석 서간집
채광석 지음 / 사무사책방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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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어딘가의 구비에서 우리가 만났듯이


제목부터가 극강의 문학적 감수성으로 빛이 나서 집어든 책이다. 굳이 분류를 하자면 이 책은 연애 서간문이었다. 쉽게 말해서 연애편지 묶음이란 말이다. 개인적으로는 처음 알게 된 저자와 책이지만 이미 우리나라 현대문학에서 레전드로 꼽히는 작가였고 그런 저자의 대표적인 작품이었다. 


87년 불의의 교통사고로 고인이 되신 이 책의 저자 채광석은 민중적 민족문학론을 제기하면서 백낙청, 김사인 등과 더불어 1980년대 문학논쟁에 참가했고 1970년대에서 1980년대 문단 평론계의 한 맥을 형성했다. 1975년 오둘둘 사건으로 체포되어 2년 1개월간 복역, 1980년 서울의 봄 이후 계엄포고령 위반으로 체포되어 40여 일간 모진 고문을 당했다. 


이 책은 그의 수감생활 중 썼던 옥중서간집으로 채광석은 대학 4년생이었고 이 편지를 받은 여자는 신입생이었다. 채광석 본인으로서는 시대가 낭만을 누릴 만큼 한가롭지 못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편지로 그 낭만은 야금야금 담 안의 세계와 담 밖의 세계를 관통하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조심스럽게, 그러다가는 드러내놓고, 마침내는 삶의 중심을 차지할 만큼 그 벽돌담을 사이에 둔 기이한 사랑을 40년 넘게 흐른 지금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접할 수 있게 된다. 


책의 구성은 영등포 구치소 시절부터 공주교도소에서의 여름 그리고 가을 그리고 겨울 마지막 공주교도소에서의 봄에서 출감까지로 분류해서 길지 않은 편지들이 이어진다. 지금 현재를 살아가는 젊은 연인들의 사랑과 본질은 다를게 없겠지만 그 사랑을 이야기하고 사유하고 노래하는 방식은 사뭇 진지했고 신성스럽기까지 했다.  특히 감옥이라는 제한된 장소와 시간에 써내려갔을 채광석의 편지는 사랑하는 이를 향한 뜨거운 마음으로 가득하다. 여기에 엄혹했던 시절 자신의 문학적 열정과 책과 사색을 통한 바깥세상과 투쟁에 가까운 소통의 기록이 이 책의 가치를 더한다. 


개인적으로는 한동안 사랑에 대한 글들이 유치하고 손가락 오그라드는 기분에 읽지 않았었는데 이 책을 읽고 생각이 바뀌게 되었다. 오랜만에 이런 사랑에 대한 글들에 심취해 읽었다. 정말 밑줄 긋고 책장을 접어두고 싶은 대목들이 넘쳐날 정도 였다. 


불만이 하나 있습니다. ‘못난이’니 ‘Unlovely Friend’니 하는 칭호는 언제부터 쓰기 시작했는지 모르겠지만, 내 견해로는 그것은 분명히 좋지 못한 어투입니다. 자학은, 때때로 자기의 성장을 위해 필요한 것이기도 하지만, 정숙 씨의 경우에는 공생의 입장에선 또 하나의 분신에 대한 실례입니다.


빛 속에서 어둠을 경계하고 어둠 속에서 빛의 씨앗을 보는 안목을 가질 때, 어떠한 어둠도 결코 어둡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이고 어떠한 빛도 밝게만 보이지는 않을 것입니다. 우리들이 빛과 희망에 안주할 때 우리는 쾌락주의에 빠지기 쉽고, 우리들이 어둠과 절망 속에 잠겨들 때 우리는 패배주의에로 타락하기 쉽습니다. 이러한 희망과 절망의 중층적인 구조를 우리들의 인식의 영역 안에 확보할 때, 나는 삶 속의 희망, 삶 속의 빛, 삶 속의 은혜를 봅니다.


그리고 이 책의 또하나 매력은 멋진 명화들이 간간이 편지 사이사이 등장하며 연애편지가 적힌 엽서가 연상되기도 한다. 그야말로 책장에 소장하고 싶은 멋진 아이템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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