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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 하늘·땅·자연·몸에 관한 2천 년의 합리적 지혜
신동원 지음 / 책과함께 / 2021년 2월
평점 :
신동원 교수의 한국과학문명사 강의
하늘·땅·자연·몸에 관한 2천 년의 합리적 지혜
역사덕후로서 다양한 역사서적들을 뒤적거려봤지만 한국의 과학문명사를 집대성한 처음인 듯 하다. 그것도 800페이지가 넘게 넉넉하게 과학사만도 문명사만도 아닌 과학문명사를 수많은 사료들과 함께 멋지게 정리한 책이라 감탄이 절로 나왔다.

특히 수많은 그림과 사진 자료들을 보고 있으면 박물관 하나가 통째로 책에 들어와 있는 듯 했다. 분명 한국사책인데 개인적으로는 읽다보면 이상하게 전 인류의 빅히스토리를 읽는 듯했고 그런 인류에 대한 저자의 깊은 통찰과 혜안을 엿볼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책은 어려운 역사 연구업적을 자랑하는 벽돌책이 절대 아니었고 다양한 분야에 즐거운 읽을거리가 넘쳐나는 보물상자 같은 책이었다.
책을 펼치면 제일 먼저 왜 한국과학문명사인가?를 설명하는데 절대 국뽕이 아니라 여태까지 잘 몰랐던 우리 한민족의 찬란한 과학문명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다. 물론 이 서문 뿐만 아니라 계속되는 책의 여러 대목에서 느낄 수 있다.
특히 한국과학사의 가장 빛나는 순간이란 제목의 글도 읽어볼 수 있는데 조선의 세종대왕 1418년에서 1450년까지 32년 동안은 한국의 과학기술이 세계최고 수준이었다고 평가한다. 유럽의 근대과학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고 이슬람의 찬란한 문화는 꼬리를 내리고 원나라 때 가장 높았던 중국의 과학도 잠깐 진전을 멈추었을 때라고 한다.
책의 구성은 여섯개의 큰 챕터로 이어지는데 하늘, 땅, 자연, 몸이라는 4가지 주제별로 큰 흐름과 세부적인 과학 아이템들에 대한 이야기를 읽은 네개의 큰 챕터와 11가지 대표적인 기술과 발명을 다루는 다섯번째 챕터가 이어진다. 그 열한가지를 나열해보자면 일명 에밀레종이라고 불리는 성덕대왕신종부터 석굴암, 고려청자, 금속활자, 한지, 화약화포, 수원화성, 석빙고, 온돌, 훈민정음의 우수성을 자세하게 풀어낸다.
그리고 마지막에는 서유견문부터 일제강점기의 한국 근현대 과학사를 정리했다. 이 책의 저자는 대표적인 한국과학사 연구자 신동원 교수인데 개인적으로는 초반부 하늘이란 주제로 설명하는 고인돌, 첨성대, 천상열차분야지도, 측우기, 자격루, 해시계, 칠정산 등에 대한 상세한 이야기들부터 흥미진진했고 끝까지 어느 한 대목도 흥미를 잃을 수 가 없었다.
특히 천재음악가 박연의 스토리가 인상적이었는데세종은 요즘 음악의 기본이 되는 ‘음’이 정확치 않고, 악기들이 서로 음이 달라 조화롭지 못하다며 이를 바로잡도록 명했고 왕명을 받은 박연은 우선 기본이 되는 ‘황종’의 음정을 정해야 했다. 문제는 맨 처음인 황종의 길이를 정하는 것이었다. 서양에서는 팽팽한 줄을 기준으로 삼은 반면, 우리는 대나무 관을 기준으로 삼았다. 속이 텅 빈 대나무 관을 그대로 쓴 게 아니라 그 속에 기장 낱알 1200개를 가득 채웠을 때 불어서 황종과 똑같은 소리가 나는 관을 만든 것이다.
동의보감의 우수성도 새삼 놀라게 되는데 저자는 동의보감의 편집 체제에 주목한다. 105개 문의 내용이 2807개나 되는 표제로 세분되어 있다.동의보감은 명대에 나온 다른 의서들이 수백 개의 표제어로 책을 구성한 것보다 훨씬 세세히 나뉘어 있다. 각 표제마다 양생의 원칙, 병의 원인, 각종 병의 증상들, 맥의 특성, 구체적인 치료법, 식이요법, 한 가지 약 위주의 처방인 단방, 체조와 같은 도인법, 침 또는 뜸을 놓는 법, 금기 등이 설명되어 있다. 게다가 이렇게 세세한 표제와 거기에 해당하는 탕약 이름 등이 책의 목차에 다 표시되어 있다. 놀랍게도 오늘날의 의학 백과사전 같은 체제다.
저자는 맺음말에서 말하길 한국과학문명의 가치는 세계에 끼친 영향보다는 세계 문명의 수용과 활용, 변형이라는 측면에서 크게 빛을 발한다고 평가한다. 중국은 오늘날의 서양문명이 그러하듯 엄청나게 커다란 문명이었습니다. 우리나라는 그런 문명과 맞닿아 있으면서도 선진 문명에 주눅 들지 않고 한국문명이라는 몸체로 그 문명에 맞서 수천 년 역사를 엮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