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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 성년의 나날들, 박완서 타계 10주기 헌정 개정판 ㅣ 소설로 그린 자화상 (개정판) 2
박완서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1년 1월
평점 :
구판절판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요즘 각 출판사마다 박완서 작가 타계 10주기를 맞아 멋진 개정판들이 출간되고 있다. 그 중에서도 웅진출판사에서는 연작 자전 소설 두권이 출간되어 더 의미 있는 작품들이다. 특히 개인적으로는 멋진 표지가 인상적이었고 한국 문학 거목의 삶을 엿볼 수 있는 시간이 되었다.

또한 이번 개정판에는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김금희 작가의 서평과 강화길 작가의 추천의 글이 있어 더 반가웠다. 이 책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는 <그 많던 싱아는 누가 다 먹었을까>에 이어 요즘으로 치면 오토 픽션 같은 박완서 작가 본인의 성장소설인데 <그 많던….>이 1930년대 북한 개풍 박적골에서 보낸 꿈같은 어린 시절과 1950년 한국전쟁으로 황폐해진 서울에서의 스무 살까지를 그리고 있다면 두번째 소설인 <그 산이…>는 1951년부터 1953년 결혼할 때까지 성년의 삶을 그려냈다.
개인적으로는 돌아가신 외할머니께서 해주셨던 어렴풋한 한국전쟁 시절의 이야기를 아주 디테일하게 글로 읽는 기분이 들어서 묘한 느낌이었다. 그만큼 전쟁의 현장을 생생하게 묘사했고 박완서 작가 특유의 스타일과 문장들을 즐겁게 읽을 수 있었다.
담담한 자전적 이야기면서도 어떤 대목에서는 한국 현대사의 민감한 대목들을 과감하게 써내려 가는데 그런 대목에서는 가슴이 뜨거워지는 기분이었다.
나는 이불 속에서 외롭게 절망과 분노로 치를 떨었다. 이놈의 나라가 정녕 무서웠다. 그들이 치가 떨리게 무서운 건 강력한 독재 때문도 막강한 인민군대 때문도 아니었다. 어떻게 그렇게 완벽하고 천연덕스럽게 시치미를 뗄 수가 있느냐 말이다. 인간은 먹어야 산다는 만고의 진리에 대해. 시민들이 당면한 굶주림의 공포 앞에 양식 대신 예술을 들이대며 즐기기를 강요하는 그들이 어찌 무섭지 않으랴. 차라리 독을 들이댔던들 그보다는 덜 무서울 것 같았다. 그건 적어도 인간임을 인정한 연후의 최악의 대접이었으니까. 살의도 인간끼리의 소통이다. 이건 소통이 불가능한 세상이었다. 어쩌자고 우리 식구는 이런 끔찍한 세상에 꼼짝 못하고 묶여 있는 신세가 되고 말았을까.
또하나 흥미롭게 읽었던 특별했던 대목은 박완서 작가가 남편을 어떻게 만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였다.
이런 자전적 이야기를 하기 전 말하는 작가의 말 코너도 인상적이었다.
내가 살아온 세월은 물론 흔하디흔한 개인사에 속할 터이나 펼쳐 보면 무지막지하게 직조되어 들어온 시대의 씨줄 때문에 내가 원하는 무늬를 짤 수가 없었다. 그 부분은 개인사인 동시에 동시대를 산 누구나가 공유할 수 있는 부분이고, 현재의 잘 사는 세상의 기초가 묻힌 부분이기도 하여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펼쳐 보인다.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 대목은 이 소설이 여성소설이기도 한 것을 한 문장으로 나타낸 것으로 보였다.
“나는 마모되고 싶지 않았다.
자유롭게 기를 펴고 싶었고, 성장도 하고 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