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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울장면 ㅣ 소설, 향
김엄지 지음 / 작가정신 / 2021년 1월
평점 :
겨울장면
이제는 믿고 보는 소설 향시리즈 신간이다. 이번엔 김엄지 작가의 작품으로 파격적인 형식이 신선했던 소설이었다. 그 어떤 기존의 소설과는 다르게 쓰겠다는 의도가 있었는지는 모르지만 작가 특유의 스타일이 돋보인다.
소설이지만 시적인 느낌과 요소들이 많았고 후반부에는 생뚱(?)맞게 에세이가 실려있다. 나는 그 에세이도 좋았다. 소설과는 별개의 글이 아닌 에세이지만 소설의 그 느낌이 그대로 이어지는 듯한 글이었다.

소설의 초반부 8개월 전 주인공 R은 5미터 밑의 바닥으로 추락하는 경험을 했고 부분기억상실 증상을 보인다. 연락처에 저장된 그 어떤 번호는 도무지 알 수 없었다. 처음 보는 사진과 메모가 곳곳에서 발견 되기도 했다. R은 모르는 R을 상상해야 했다. R은 생각보다 더 R을 모르고
생각해보면 당신은 좋은 사람은 아니었어. 저장되지 않은 번호로부터 의미를 알 수 없는 문자 메세지가 도착하기도 했다. 알고보니 그 번호는 아내의 전화번호였다는 대목에서 이 소설의 스토리 전개에 호기심이 폭발했고 기억과 망각 사이를 유영하는 주인공에 몰입된다.
하지만 이 소설은 미스테리소설이 아니다 이야기를 따라 가며 읽는 소설이 아닌 주인공의 생각과 작가의 스타일에 대한 매력을 읽는 즐거움이었다.
겨울장면 #1부터 #30까지 길지 않은 시적인 형식까지 느껴지는 글들이 이어진다. 중간중간 소설의 치명적인 문장들이 큰 글자로 한면을 꽉 채우는 편집도 특이했고 그 페이지에 한참을 머물게 했다.
R은 눈을 감고 감은 눈 안에 자기를 떠올린다. 그는 R과 같은 수많은 R을 상상한다. 그는 그와 아주 똑같은 R을 상상할 수는 없다. 언제나 R은 R에게서 이미 지나쳐 너무나 먼 것이었다.
그는 알지 못했다. 얼음호수의 끝을. 겨울의 시작과 끝을. 제인해변에서 새로운 이름을 만들고 다음 날 아침 제인호수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의 마음을. 마음을. 그 누구의 것, 자기의 것도 그는 알지 못했다.
<몇 하루>라는 라는 에세이에서는 점심부터 저녁 아침 스케줄 겨울 장면 새벽 점심 오후 여름장면 밖으로 이어지는 작가의 신비로운 일상을 읽을 수 있다.
마지막 문장이 특히 인상적이었고 개인적으로는 이 소설의 마지막 기가 막힌 반전 같기도 했다.
정말로 쓰고 싶은 말들은 단 한 글자도 쓰지 않을 것이다. 그런 결심을 하면서 혼자 재미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