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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안아주기 - 소확혐,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
최연호 지음 / 글항아리 / 2020년 12월
평점 :
기억 안아주기
아이 변비 치료부터 파푸아뉴기니 원주민의 편집증, 무사 1루에서의 강공과 번트, 코로나 19 휴지 사재기, 낙지를 먹고 배탈난 사람이 빨간 국물을 피하는 이유, 스티브 잡스와 유발 하라리가 찬사하는 명상, 베이브 루스의 예고홈런 등 기억과 회피, 개입과 소확혐, 관점, 오류, 망각, 치유에 대한 다양한 사례들을 읽는 재미가 이 책의 매력이다.

언론을 통하거나 주변에서 전해지는 이야기로 알게 되는 우리 눈에 확 띄는 트라우마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수면 아래에는 지구에 살고 있는 약 70억 명 사람들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한 각자의 소확혐이 넘쳐난다. 한 사람당 하나만 있을 리는 만무하니 개수로 따지면 상상을 뛰어넘는 수의 작지만 확실히 나쁜 기억들이 존재하는 것이다.
소확혐은 큰 트라우마가 아닌 작은 트라우마를 지칭한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일상에서 겪는 대부분의 작은 사건이 작은 트라우마의 모집합이다. 그리고 이 소확혐은 안나 카레니나의 법칙과 롱테일 현상대로 다 각자의 이유가 있고 지구상에 살고 있는 사람의 수만큼 아니 그보다 몇 배 더 많이 존재한다.
이 책은 좋은 기억은 나쁜 기억을 이기는 법이라고 알려준다. 좋은 경험과 좋은 기억으로 왜곡하기가 주는 망각의 기술을 시현한다. 저자 최연호 교수는 서울대 어린이병원 소아청소년과에서 연구중이다. 그래서 오직 관찰, 치료, 연구 사례들을 바탕으로한 과학으로만 설명한다. 두려움은 본인의 직간접적 경험에서 비롯되며 이 경험은 나쁜 기억을 이룬다. 사람마다 갖는 개개인의 나쁜 기억이 유전자형이라면 이 기억에 대한 두려움으로부터 누구나 드러나게 되는 표현형이 손실 기피이다.


나 자신이 왜 이런 나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지 그 원인과 맥락을 찾아나서는 여정이다. 나쁜 기억의 본질을 파악해야 치유가 가능하다. 나쁜 기억의 두려움에서 벗어나는 최선의 방법은 회피하지 말고 나를 내려놓으며 마음을 자각하고 부딪혀보는 것이다. 이렇게 요약해서 말하면 뻔한 얘기 같지만 관련된 내용들의 수준이 소아과, 정신과 연구논문이나 강의교재 같은 대목들도 많다.
저자는 아이들을 진료하는 의사이긴 하나 그가 늘 접하는 것은 아이와 아이 부모들의 ‘나쁜 기억’이다. 그는 기억이 어떻게 신체화장애로 나타나는지를 수천 건의 사례를 통해 파악하고 몸이 아닌 기억을 어루만졌다. 나쁜 기억은 사실 마음먹고 부딪히면 조각조각 부서지기도 하니 아주 견고한 것은 아니다. 다만 부딪히려는 적극성이 필요하고, 동시에 그걸 덮어쓸 만한 좋은 기억들도 계속 마련되어야 한다. 이렇게 자신의 기억을 하나둘 안아주다보면 우리 뇌는 삶을, 타인을, 자기 자신을 점점 더 우호적으로 받아들이게 된다.


소확혐을 가지고 있는 우리에게 매우 흥미로운 것은, 나쁜 기억은 과거에 경험했던 것인데 사실상 그 기억의 일부에는 현재의 감정이 끼어 들어가 있다는 것이다. 또한 소확혐이 두려워 다시 경험할 것을 꺼리는 우리는 잠재적인 손실을 상상하는 데 있어서도 현재의 나쁜 감정이 포함된 과거의 나쁜 기억에다 현재의 나쁜 감정이 또 포함된 미래의 나쁜 상상을 하게 되므로 나쁜 감정은 더욱 강화되어 편집증적인 집착으로 이어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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