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보이지 않는 여자들 - 편향된 데이터는 어떻게 세계의 절반을 지우는가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 지음, 황가한 옮김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7월
평점 :
보이지 않는 여자들
데이터에 근거한 페미니즘의 과학적 무기 같은 책이다. 개인적으로 남성 위주로 세상이 돌아가는 불평등 문제에 전혀 의심이 없었지만 이렇게나 충격적으로 남성이 디폴트값으로 지정되어 있을 줄은 몰랐다. 각 분야별 데이터가 너무나도 명확했다. 여성을 배제하고 있다는 표현은 과장이 아닌 것이다.

영국의 여성운동가인 이 책의 저자 캐럴라인 크리아도 페레스는 이를 ‘젠더 데이터 공백’이라는 키워드로 설명한다. 여성과 관련된 정보와 지식이 제대로 수집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저자는 목차에 나와있는 각 분야들, 일상, 직장, 설계, 의료, 공공, 재난 등 16개 분야별로 통계자료와 실제사례들을 연구해서 이 책에 풀어놓는다.
그렇게 열여섯개의 챕터에 각 분야별 젠더 데이터 공백을 까발리는게 이 책이다. 페미니즘에 있어서 아주 보물 같은 자료인 것이다. 또한 어설픈 개인 수집 자료가 아닌 국제기구와 NGO, 정부에서 발표한 공식 자료와 주요 매체에 실린 기사, 논문들이 근거라서 요즘 떠도는 가짜뉴스류의 음모론은 절대 아니다.

고용과 승진에 관한 능력주의 신화에 대한 젠더 데이터 공백 문제가 인상적이었다. 사람들은 천재라는 이미지를 떠올려볼때 남자를 떠올렸을 가능성이 높다. 저자는 아인슈타인을 떠올렸다고 한다. 그가 산발을 한 채 혀를 쑥 내밀고 있는 유명한 사진 말이다. 이 편견은 현실에서 남교수가 으레 더 유식하고, 객관적이고,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다고 여겨지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강의 평가만으로 승진을 결정하는 방식은 이 점을 전혀 반영하지 않는다. 총명 편견은 대부분 데이터 공백의 결과다. 여자 천재들은 역사에서 너무 많이 지워졌기 때문에 금방 떠오르지 않는다. 그 결과 어떤 직업에 ‘총명’이 필요하다고 여겨질 때 그 말이 정말로 의미하는 바는 ‘남근’이다.


아이폰 규격과 관련된 이슈도 흥미로웠는데 6인치는 최신 스마트폰 액정의 평균 크기다. 2020년 하반기에 출시 예정인 아이폰 12 모델은 이보다 조금 작은 5.4인치라고 한다. 애플에서는 벌써부터 “한 손 조작에 문제없는 크기”라는 슬로건을 내걸며 홍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아이폰 사용자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여자들에게 이는 다른 세상의 얘기다. 여성의 평균 뼘이 18~20cm라는 걸 감안할 때 대부분의 여자들은 한 손 조작은 고사하고 스마트폰을 떨어뜨리지나 않으면 다행이다.또한 구글의 음성인식시스템은 여성의 목소리보다 남성의 목소리를 정확하게 인식할 가능성이 70%나 높고다고 한다.
마지막 챕터 제목은 <당신은 재난 때문에 죽는 게 아니다> 였다. 여자들은 재난 때문에 죽는 게 아니라 젠더 때문에, 그리고 젠더가 여성의 삶을 어떻게 제한하는지를 고려하지 않는 사회 때문에 죽는 것이다. 방글라데시에는 여자가 수영 배우는 것을 부정적으로 보는 사회적 편견이 있어서 여자가 홍수에서 살아남을 확률이 “현저하게” 낮다. 이처럼 사회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의 취약성은 남자 친족을 동반하지 않고는 집 밖에 나올 수 없다는 사실에 의해 약화된다. 그 결과 사이클론이 덮쳤을 때 여자들은 남자 친족이 와서 자기들을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주길 기다리느라 귀중한 대피 시간을 낭비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