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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억 수리 공장
이시이 도모히코 지음, 양지연 옮김 / 김영사 / 2020년 9월
평점 :
추억 수리 공장
저자의 이력만 보고 일단 집어든 책이다. 일본의 에니메이션 회사 스튜디오 지브리의 프로듀서 출신으로 실제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 하울의 움직이는 성에 참여하고 현재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최신작 제작에 관여하고 있다는 작가의 책이다.

스토리는 망가진 물건을 고치듯 상처 입은 추억도 아름다운 추억으로 바꿀 수 있는 추억 수리 공장에 얽힌 신비로운 이야기다. 정말 지브리 스튜디오 다운 스타일의 소설인 것이다.
판타지 소설일 수 밖에 없는 이 소설은 낡은 물건을 수리하는 카이저 슈미트의 공방에서 시작되는데 평범한 사람들이 살아가는 ‘저쪽 세계’와 어딘지 수상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 사는 ‘이쪽 세계’를 교차해가며 우리들의 놓쳐버린 소중한 기억을 더듬게 한다.
그리고 이 책은 아주 특이한 색깔이기도 한데 이쪽 세계 이야기와 저쪽 세계 이야기를 담은 페이지의 색깔이 구분되어 있어 한쪽은 흰색 다른 한 쪽은 푸른색이다.
어릴적 어떤 동화가 연상되는 익숙한 설정들이 반가웠는데 주인공 소녀 피피와 할아버지가 등장하고 공장장 즈키, 흰 수염의 지사마, 솜씨 좋은 직공들도 등장한다. 극적인 요소가 더해지는건 역시나 악역이 있어서였다. 사람들의 추억을 빼앗아 장인의 도시가 아닌, 새로운 스마트시티를 계획하려는 검은 무리가 등장하며 요즘 현대 디지털 사회에 시사하는 점도 있다.
주인공 소녀 피피의 성장드라마이기도 한데 조금씩 자신이 정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아가며 이쪽 세계에서 추억 수리 공장을 지킬 장인이 될 준비를 한다. 피피는 추억 수리 공장에서 사람들과 우정을 쌓고, 자기의 일을 한다는 것이 얼마나 멋진 일인지, 인생을 단단하게 살아가는 방법에 대해 배우며 할아버지처럼 검은 무리에 맞선다.



등장인물들의 대사 중에는 지금 우리가 사는 세상에 대한 정곡을 찌르는 대목도 찾아 볼 수 있다.
“저쪽 세계 사람들은 늘 앞일만 생각하더구나. 앞일은 절대 알 수 없는데 말이다.”
“목적지를 아는 길은 빠르다고 느끼는 법이지. 반대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에는 아주 멀게 느껴지고. 특히 괴로운 때는 더욱 그렇단다. 그럴 때에는 앞일을 생각지 말고 그저 천천히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수밖에 없단다.”
“인간은 늘 불안에 휩싸인 채 살아가는 동물입니다. 일자리가 없어진다는 말을 들으면 반대하죠. 과학기술의 발달로 새로운 일이 생겨난다고 바꿔 말했을 뿐인데 불안이 희망으로 바뀝니다.”

“다들 지름길로 가고 싶어 하죠. 하지만 그런 길은 없습니다. 이쪽으로 갔다가 잘못 왔다는 것을 깨닫고 저쪽으로 갔다가 잘못 왔다는 것을 깨닫죠. 하지만 어느 쪽이냐는 중요하지 않아요. 지금 이 순간 가장 최선이라고 생각하는 길을 가지 않으면 나중에 다시 되돌아가게 돼요. 지름길은 앞질러 가는 길이 아니랍니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서 선택한 그 순간 가장 최선이라고 여기는 길이 바로 지름길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