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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고 싶다는 농담 - 허지웅 에세이
허지웅 지음 / 웅진지식하우스 / 2020년 8월
평점 :
살고 싶다는 농담
허지웅 에세이
예전의 허지웅이 아니었다. 뾰족했던 그가 말랑하게 바뀐 것 같았다. 그리고 살기로 결정한 사람이었다. 이 책을 쓴 목적도 확실했다.

사람들은 아프기 전과 후의 내가 다르다고 말한다. 나는 뭐가 달라졌다는 것인지 조금도 모르겠다. 하지만 글로 써서 말하고 싶은 주제가 달라진 것만큼은 사실이다. 아직 쓸 수 있을 때 옳은 이야기를 하기보다 청년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수 있는 말을 남기고 싶다.
TV프로그램에서 자주 봤던 허지웅의 글을 처음 접했다. 예전에 다른 책도 몇 권 출간된 걸 알고 있었지만 이 책이 처음이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전작 역주행을 해야 될 것 같다. 정말 괜찮은 이야기를 많이 들을 수 있었다. 진심으로 나한테 도움 되는 이야기들이 많았다.


허지웅은 한동안 투병생활로 미디어에서 보지 못했는데 이제는 항암 치료를 끝내고 건강해졌다고 한다. 책은 세개의 챕터로 이어지고 그 안에 길지 않은 여러 글들이 엮여 있다. 개인적으로는 암투병 시절 이야기와 암치료 이후에 달라진 자신의 생각들을 쓴 첫번째 장 ‘망하려면 아직 멀었다’에서 부터 너무 큰 위로와 공감을 얻었다. 그래서 그 다음 두번째 세번째 큰 챕터의 이야기들도 술술 읽혔다.
문화 평론가 답게 여러 영화들과 역사적 인물들, 자신이 특히 좋아하는 스타워즈에 대해 이야기하며 인생의 지혜와 교훈을 풀어낸다.
불행이란 설국열차 머리칸의 악당들이 아니라 열차 밖에 늘 내리고 있는 눈과 같은 것이다. 치명적이지만 언제나 함께할 수밖에 없다. 불행을 바라보는 이와 같은 태도는 낙심이나 자조, 수동적인 비관과 다르다. 오히려 삶을 주체적으로 수용하고 주도하겠다는 의지다. 이는 불행을 겪고 있는 사람으로 하여금 상황과 자신을 분리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해준다. 당장의 감정에 파묻혀 스스로를 영원한 피해자로 낙인찍는 대신 최소한의 공간적, 시간적 거리를 두고 사건을 바라볼 수 있게 한다. 요컨대 객관적으로 불행의 인과관계를 바라볼 수 있게 돕는다는 것이다.


뾰족했던 저자가 부드럽게 변했듯이 이 책을 읽는 독자들도 책을 읽으며 허지웅 처럼 변하게 된다. 책을 읽기 전과 읽은 후가 확실히 바뀌는 책이다.
개인적으로는 허지웅이 자살시도를 했다가 다시 살기로 결심한 날의 이야기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만약 당신이 살기로 결정한다면, 천장과 바닥 사이의 삶을 감당하고 살아내기로 결정한다면, 더 이상 천장에 맺힌 피해의식과 바닥에 깔린 현실이 전과 같은 무게로 당신을 짓누르거나 얼굴을 짓이기지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적어도 전처럼 속수무책으로 당하지는 않을 거라고 약속할 수 있다. 그 밤은 여지껏 많은 사람들을 삼켜왔다. 그러나 살기로 결정한 사람을 그 밤은 결코 집어삼킬 수 없다. 이건 나와 여러분 사이의 약속이다. 그러니까, 살아라.
가장 힘들었던 그날 밤을 버티지 못했다면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나는 왜 가족에게, 친구들에게 옆에 있어달라고 말하지 못했나. 말했다면 그 밤이 그렇게까지 깊고 위태로웠을까.
거창한 결론이 삶을 망친다면 사소한 결심들은 동기가 된다. 그리고 그런 사소한 결심들을 잘 지켜내어 성과가 쌓이면 삶을 꾸려나가는 중요한 아이디어가 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