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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 - 그냥 게임이나 하고 싶었던 한 유저의 분투기
딜루트 지음 / 동녘 / 2020년 8월
평점 :
나는 게이머입니다, 아 여자고요
요즘 시중에 기존의 편견과 세상을 보는 삐뚤어진 프레임을 바로 잡아주는 흥미로운 페미니즘 관련 책들이 많은데 이 책은 그 중에서도 돋보이는 색다른 분야의 개성있는 접근법을 보여준다.
부제는 단순히 게임이나 하고 싶었던 한 유저의 분투기라고 하지만 유쾌함과 위트 속에 신랄함과 날카로움이 어우러진 풍자, 시대진단이 어우러진 글이다.

나 역시도 게이머라고 하면 자연스럽게 남성이 연상되지만 놀랍게도 통계를 보면 모바일 게임에서 여성 게이머의 비율은 절반이고 PC 게임에서도 35%에 이른다. 그런데 왜 우리는 여성 게이머의 모습을 쉽게 그리지 못할까?란 질문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단순하게 말하자면 여성 게이머의 이야기지만 게임과 관련된 우리 사회의 차별과 고정관념, 혐오와 숭배, 이상하리만치 격렬한 게임판의 백래시에 대한 책이다. 주로 게임 회사와 익명 커뮤니티 관련 이슈들이 책에서 거론되는데 페미니스트 색출하기와 블랙리스트, 익명 커뮤니티에서 사상 검증을 일삼는 주류 게이머들, 개발자도 익명 사이트에 다니고, 운영자도 익명 사이트에 다니는 등이 그것이다.
솔직히 나도 뉴스에 가끔 나오는 게임 관련 페미니즘 이슈에 대해서는 대충 흘려 읽고 말았는데 이 책에서 좀더 자세히 알게되고 명쾌하게 그 사건들의 사회학적 의미와 해석을 읽을 수 있어서 흥미로웠다. 결국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추구할 수 밖에 없는 게임업체가 유저들의 항의를 무시할 순 없지 않냐는 생각도 했었는데 그렇다고 하기엔 지금껏 게임 회사는 ‘페미니스트 해고’ 외에도 여성 게이머 비하에 적극 동참해왔다고 한다. 공식 유튜브 동영상에서 ‘혜지’라는 단어를 쓰는가 하면, 여성 유저가 많으니 “솔로 탈출할 수 있다”는 말로 서슴없이 자사 게임을 홍보한 회사도 있다고 한다.


“익명 사이트에 “○○ 일러스트레이터 의심되는데 명단에 올려도 됨?” 같은 글이 올라오고, 몇몇이 ‘ㅇㅋ동의’, ‘평소 행실이 맘에 안 들었음’ 같은 댓글을 달면 그 글은 아무 권위가 없는데도 일종의 힘을 얻게 된다. 그때부터 ‘나무위키’ 등에 있는 ‘페미니스트’ 리스트에 해당 인물이 등재되면 그 공신력 없는 리스트에 이름이 존재한다는 이유만으로 해당 자료는 집단 내 ‘신빙성 있는 자료’로 탈바꿈하며, 순환 참조의 굴레가 형성된다.”
그 외에도 여성 캐릭터: 언제까지 여자 가슴만 볼 건가, 프린세스 메이커는 정말 소녀를 공주로 만들 뿐일까, VR 게임: 온라인 커뮤니케이션과 윤리, 전쟁 게임: 전장 속 여성들의 이야기, 영웅담: 나는 네 액세서리가 아냐, 아니타 사키시안 인터뷰: 게임은 무엇이고, 게이머는 누구인가?, 드래곤 에이지: 인생을 뒤흔든 게임을 만나다, 슈팅 게임: 나의 총 쏘는 게임 적응기 같은 게임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다채롭고 재밌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들이 넘쳐난다.


‘길드의 엄마’니 ‘길드의 천사’니 같은 소리를 들어가며 팀을 위해 온갖 궂은일들을 도맡아 하는 경우도 있었다. ‘그냥 남들이 다 해서’ 또는 ‘이렇게 하면 우리 모두한테 이득이니까’라며 별 생각 없이 ‘우리’에게 도움이 되는 일들을 하다 보면, 정작 내가 하고 싶은 일은 뒤로 밀리는 분위기에 답답해지곤 했다. 인터넷 커뮤니티에는 여자들은 원래 보조해주거나 남을 보살펴주는 캐릭터를 잘한다느니, 딜러가 되더라도 ‘딜 사이클’이 복잡하고 여자들은 싸우는 방법을 모르기 때문에 적에게 최적의 피해를 입힐 수 없다느니, 아군의 체력 게이지만 열심히 채우면 된다느니 하는 식으로 자신들이 하기 지루하거나 귀찮은 직업군들을 여자들에게 시켜야 한다는 글이 보였다.
여성 게이머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여왕벌이 되기 쉽다. 같은 게임을 하는 여성에게 일방적인 호의를 베풀어놓고, (만나자거나, 전화로 ‘진실한 얘기’를 하자거나 등) 부담스러운 요구를 한 뒤 거절당하면 받을 건 다 받고 자신을 팽했다면서 여왕벌에게 당했다고 주변에 호소하기 때문이다. ‘여왕벌’이라는 단어는 커뮤니티에서 힘을 얻으며 온갖 상황의 원인으로 불려나왔다.

한쪽에서 VR에 대한 성추행 사례들이 보고되고 있을 때, 심의를 받지 않는 음지에서는 VR을 이용한 포르노 게임들이 발매되고 있고, 심의를 받는 공개된 플랫폼에서도 성행위만 없을 뿐 각종 훔쳐보기를 시도하거나 터치할 수 있는 게임들을 발매하고 있다.